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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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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1-12-10 22:46 조회 15,964 댓글 0
 
 1941년 12월 7일은 일요일이었다. 일요일을 기독교인들은 주일날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구별시켜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 주일 날 이른 아침에 일본 군대가 태평양을 건너가서 진주만을 공습했다. 그 당시에 미군과 민간인 2,400여 명이 희생되었다. 또한 20여 척의 함정과 164대의 항공기가 파손됐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이던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과 더불어 미국의 본토를 향한 선전 포고를 한 것이다. 당시 일본군의 소위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란 뜻의 신풍(神風)이라 불리는 가미카제식 자폭 비행 공격은 잘 알려진 바이다. 

여러 해 전에 하와이 진주만을 방문해 본 적이 있다. 당시의 전쟁 상황과 그 피해 현장의 역사를 사료로 보존한 진주만 기념관의 흔적들을 자세하게 둘러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부랴부랴 미국이 동아시아의 크지 않은 섬나라 일본을 연구하기 위해서 낸 인류학 서적이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1887-1948)의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다. 

1946년에 발간된 이 책은 광화문 교보 문고에도 여전히 눈에 잘 띄는 곳에 쌓여 있을 정도로 일본 연구에 관한 명저 중의 하나이다. 육, 해, 공군 다 마찬가지이지만 멀고 먼 망망대해에 나아가서 오대양 육대주를 누벼야 하는 해군과 수병들의 수고와 헌신은 참으로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0년에, 천안함 폭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공습 사건으로 인해서 해병대와 해군의 어려움과 아픔에 대하여 역사적인 비운을 함께 나누는 슬픈 경험을 안고 있다.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희생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까운 아들들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 깜깜하고 차가운 바다 물속에 수장(水葬)되고 만 것이다.

한주호 준위는 46명의 아까운 젊은 병사들의 목숨을 잃은 그 사건 현장에서 한 명의 시신이라도 더 건져 내 보겠다고 그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만 살아 돌아오지 못한 그의 희생에 대하여 온 국민들이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십 여 년 전, 미국에서 생활 할 때에 동네 큰 길 가에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나란히 있었다. 두 가게의 거리가 불과 이백 미터도 되지 않았다. 듣기로는 두 업체는 언제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런 방법으로 시장 조사를 마치고 그런 경쟁상대로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개업하고는 한다고 들었다. 어느 하루는 그 버거킹의 정문에 큰 구인광고문이 나붙은 것을 보았다. 그 표현이 눈길을 끌어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WANT TO CREW'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사용하는 ‘crew’란 배나 비행기의 승무원을 말한다. 승무원이란 누구인가. 며칠 하는 척하다가 피곤하다고 지각하고 힘들다고 사표 쓰는 직원은 ‘crew'의 자격이 부족한 것 아닌가. 최근에 진주만 공습 70주년 기념식이 현지에서 있었다. 생존자들 중에서 120여명이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현장에 참석하여 당시에 앞서간 젊은 시절의 동료들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때를 같이 하여 최근에 숨진 당시 유타 호에서 살아남았던 리 소우시(Lee Soucy)씨와 아리조나 호에서 생존했던 버넌 올센씨의 유해가 자신들이 70년 전의 역사의 현장에 근무하던 그 배 속에 안장되는 특별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소우시씨의 딸인 마가렛 소우시는 “아버지는 평소에 수병이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늘 당시의 전우들을 형제처럼 생각해 왔다.”고 추억했다.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어 온 역사 속에 한 나라가 국권을 수호하고 그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배후에는 이와 같은 수많은 희생자들의 거룩한 피가 뿌려져 있는 것이다. 

구한말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와 수많은 세계열강들이 넘보는 풍전등화와 같던 불안정한 역사를 뒤로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동족간의 전쟁인 6. 25를 겪은 우리나라의 오늘 날의 이만한 안정과 발전의 배후에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의 헌신이 있었는가.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3-15)고 했다. 요즘처럼 상식적인 관계의 균열과 파괴현상이 극심한 때에 가족 구성원이든 교회의 구성원이든 이와 같은 끈끈한 운명 공동체의 사랑과 유대감이 아쉬운 때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 전해지는 슬픈 이야기들을 보라. 그렇게 사이좋기로 소문났던 유명한 병원의 원장과 이사장 부부가 남편의 불륜으로 인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 있다. 별 달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육군 준장이 불륜의 현장인 자동차 안에서 발각되어 양 쪽 가정이 다 무너지고 상대방 여성은 얼마 후에 한강으로 가서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변호사나 검사는 아무나 되는 직업이 아닌데 국민의 1%의 상위 계층에서 지도자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불륜으로 인하여 두 집안이 모두 다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배우자도 배우자이지만 그 자녀들이 당하는 충격과 상처를 그 무엇으로 싸매 줄 수 있단 말인가. 일순간에 평온했던 가정사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CEO 형제가 역술인의 안내를 따라서 그 많은 기업 자금을 꼭두각시처럼 투자하며 끌려 다녔었다는 사건도 우리를 참으로 우울하게 한다. 

바라기는 늘 가까이에서 대하는 가정들과 교회의 성도들에게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의 ‘crew' 정신이 건강하게 보존되기를 중심으로 기도한다. 개혁도 필요하고 변화도 있어야 하지만 성경이 교훈하는 소중한 정신 중의 하나가 ’보존‘(保存)이라는 것이다. 늘 무엇인가를 원하기만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엇인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공헌하려는 이들에 의하여 가정과 기업과 나라와 주의 몸된 교회는 발전하고 왕성해져 가는 것이다. J.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미국 제 35대 대통령의 그 유명한 연설이 바로 그러하지 않나.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으라.”(Ask not what your count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군 복무 중이었다. 그가 정장(艇長)으로 근무하던 PT-109 어뢰정이 일본군의 구축함 아마기리의 공격으로 격침되었을 때에 목숨을 걸고 부하들을 잘 구출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젊어서부터 전쟁의 영웅으로 추대 받기도 했다. 그가 1957년에 쓴 <용기 있는 사람들>이란 책은 퓰리처상을 탈 정도의 명저로 오늘 날까지도 읽혀지고 있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비겁한 정치인들을 질타하던 청년 정치가 케네디의 패기 넘치던 그 사상은 오늘 날도 그를 아는 이들의 손에 잠잠히 들려 읽히는 책으로 통한다. 가정이나 회사나 나라나 교회는 이와 같은 건강한 정신과 믿음을 가진 신실한 이들에 의하여 안정되고 발전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배를 탄 승무원과 같은 그런 운명 공동체의 그런 정신 말이다.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에도 마침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保存)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여기서 말씀하는 ’보존‘하시는 속성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시다. 가정과 나라와 교회는 그런 주의 속성을 닮은 이들에 의해서 보존되고 번영해 나가는 것이다. 교회의 새 출발한 역사 이태 동안 이미 함께 출발했던 성도들 중에서 들며 난 이들이 있다. 이것이 역사다. 과연 누가 광야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서 나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아이성 전투에도 넉넉히 참가하고 나중에 헤브론 산지를 공략하는데 까지 함께 할 것인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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