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다음 날 대전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두 조카와 함께 <페이스메이커>라는 영화를 보았다. 아내는 모처럼 만난 친정의 세 자매들끼리 따로 오붓한 시간을 갖기를 원했다. 거의 평생을 페이스메이커로 살아 온 영화의 주인공은 일찍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형제가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동생은 최고의 명문 대학을 나와서 외무고시에 합격한 고급 외무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도 하였다. 무언가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동생 뒷바라지와 함께 결혼할 기회조차 놓친 형은 그 동안 페이스메이커 생활을 해 왔다.
‘페이스메이커’(pacemaker)란 마라톤과 같은 경주에서 선수와 함께 달리면서 속도와 힘의 분배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도와주는 이들을 일컫는다. 의학적으로는 심장박동조절기를 일컫기도 한다. 주인공은 그 동안 진 부채를 값아 보려고 통닭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근근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올림픽마라톤 국가대표 감독이 찾아 왔다. 다가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 주전 선수들의 기량이 신통치 않자 지난 날 페이스메이커로 명성이 있던 그를 찾아 온 것이다. 잘 되면 현재 떠안고 사는 빚도 청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다시 페이스메이커의 생활을 시작하지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다시 선수촌에서 나온 그는 통닭집에 되돌아와 배달부로 일하면서 틈틈이 동네 학교 운동장에 나가서 한 밤중에라도 달리기 연습을 계속했다.
그는 어려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에 달리기에 우승해서 삼양 라면 한 박스를 탔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운동회 날 억수같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일등을 하면 라면 한 박스를 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동생은 살이 떨어져 나간 빨간 우산을 치켜들고 형을 응원하고 있었다. 우산을 접으면 속도를 조절하고 우산을 펴 들면 맘껏 달려야 한다고 서로 약속했다. 그런데 달려가던 중간에 비에 범벅이 된 운동장에 고무신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가 다 저만치 앞으로 달려가는데 넘어진 형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동생이었다. 라면 한 박스를 탈 희망이 꺾인 것이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에서 쫄딱 젖은 모습으로 형을 응원하며 안쓰러워하던 동생은 빨간 우산을 활짝 펴서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형은 다시 용기를 내어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고 꿈처럼 일등을 했다.
세월은 지났고 우여곡절 끝에 형은 페이스메이커의 신분을 벗고 런던 올림픽에 마라톤 국가 대표 선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평소에 30,000미터 이상 완주 해 본적이 거의 없던 그가 42,195미터의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일은 페이스메이커의 꿈이며 희망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케냐의 타누이 선수는 페이스메이커 출신으로 1999년 로마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30,000미터쯤에서 넘어지고 다리에 쥐가 나고 더 이상 뛸 수 없는 형편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에서 예상도 안한 동생이 런던까지 날아가서 응원하는 모습이 그 수많은 관중들 틈바구니에서 형의 눈에 들어 왔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동생은 며칠 전에 조그만 분식점에서 삼양라면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며 형을 생각하고 런던으로 날아 간 것이다. 동생은 빨간 우산을 준비했고 그 우산을 다시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주인공은 동생의 응원 속에 어렸을 적 초등학교 운동회 날 억수 같은 장대비를 맞으며 질척거리는 진흙탕의 운동장을 달리던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형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초인적인 힘으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리의 마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달려가던 중간에 길가에서 응원하는 관객의 국기를 빼앗아서 그 국기 대롤 꺾어 오른 쪽 허벅지를 푹푹 찔러대자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샌가 나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뭉클 하는 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던 승부욕에 다시 불이 댕겨지는 화끈한 열기가 온 몸에 펴져 나갔다. 주인공은 피 범벅이 된 다리로 달리고 달려서 여러 선수들을 제치고 수만 명의 관중들이 운집한 스타디움에 세 번째로 들어섰다. 선두 주자인 두 명의 한국 동료 선수와의 거리는 70미터 정도 남았다. 그 마지막 경기에서 따라잡기를 시도한 그는 단 한 발자국 차이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사력을 다해 달린 후에 그라운드에 널브러져 정신을 잃은 듯이 누워 있는 그에게 세계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올림픽 마라톤 감독이 그의 곁에 다가가서 벌렁 누워 있는 그에게 엎드려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그 끝 장면 즈음에 배경 음악으로 "Never ever give up."이란 가사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3년 보스턴 마라톤에 나란히 출전한 세계적인 선수들이 도열하여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났다. 영화의 주인공은 그 선수들 대열에 여전히 서서 새롭게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세상에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 정도로 살다가 생을 마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그와 같은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는 이들에 의하여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안정되고 가정도 세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페이스메이커로 오래도록 살아 온 영화 주인공의 별명은 삼발이였다. 늘 마라톤의 마지막 고비인 30,000미터쯤까지 주전 선수의 페이스메이커로 역할을 하고는 뒤로 물러서는 그의 모습에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정상에 오르는 산악인의 등정 성공 기록의 배후에는 얼마나 이름 없이 제 역할을 각기 담당해 내는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셰르파들의 도움이 큰가.
갈대 상자에 떠내려가던 어린 모세의 곁을 지키던 누이 미리암은 하나님이 그의 곁에 따라 붙게 한 페이스메이커였다. 로마서 16장과 디모데 후서 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곁에서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삶을 살아갔던 존귀한 동역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거론되는 것을 본다. 사실 역사와 문명이 오늘날처럼 찬란하게 발전해 온 배후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감당해 온 페이스메이커들이 적지 않다. 제 이인자의 자리를 지키며 숨을 죽여 온 이들의 헌신이 컸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람은 30,000미터 달리기에 만족해하지 말고 나머지 12,195미터를 향하여 목표를 정하고 다시 조금 더 땀 흘리고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하고 열심을 다하다 보면 이 전에 생각해 보거나 상상해 보지도 못한 놀랍고 새로운 세계가 반겨주는 순간을 누구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가 <역사의 연구>에서 한 말처럼 역사란 어차피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 이루어져가고 발전해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 곁에는 그런 응원과 격려를 계속해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생이 펼쳐 드는 빨간 우산이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에게 있어서는 동생이 인생의 페이스메이커였던 것이다. 동생은 형의 결정적인 순간에 빨간 우산을 들고 런던 시가지에 나타나서 그 우산을 활짝 치켜 든 것이다. 마치도 성령님의 임재처럼 동생은 말 없는 말로 형을 응원하였다. “형! 그래도 좀 더 뛰어 봐.”라는 내면의 함성으로 말이다.
깜깜한 극장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제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가 귓가에 맴돌았다. "Never ever give up. Never ever give up. Never ever give up." 나의 양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며 가슴 깊은 곳에 누워 있던 승부욕이 불끈 달아오르는 열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곁에 앉아 있던 조카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느껴졌다. 요즘처럼 살벌한 경쟁사회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페이스메이커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는 초청의 말씀으로 페이스메이커의 넉넉한 동행을 선언해 주셨다. 그와 함께 걷고 뛰는 인생들마다 밝고 맑고 희망이 넘치는 내일이 다가 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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