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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하시는 예수님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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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2-17 21:46 조회 5,013 댓글 0
 

동행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는 부활 후 사십일 동안 이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나님 곁으로 올라가셨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리 스트로벨의 책 중에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라는 책도 있다. 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출신의 언론인이다. 시카고 트리뷴 신문사의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 기독교에 대하여 대단히 냉소적이었다. 교회를 적대적으로 대하던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그가 달라졌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목사가 되었다. 시카고 윌로우 크릭 교회의 사역자가 되었다. 그가 쓴 책 중의 하나이다. 그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러 명의 각 분야의 학자들을 동원해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입증한다.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듯이 예수의 승천 또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우리는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성탄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념하는 날들도 몇몇 있다. 종려 주일, 세족 목요일, 성 금요일, 부활절이 그것이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에 40일을 이 땅에 계셨다.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승천 기념일은 그 해의 부활절 이후 40일째 되는 날이다. 승천 후 열흘째 되는 날이 성령 강림절이다.

 

이처럼 예수는 역사 가운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시다가 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셨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 부활, 승천까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1장은 예수의 승천 장면부터 시작되는 역사의 기록물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승천을 지켜본 11제자와 예수의 승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승천하신 예수께 경배하며 큰 기쁨을 갖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령의 강림을 기다렸다. 사도행전 1장은 그 무리의 수가 약 120여명이었다고 증언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1km 정도 거리의 낮으막한 언덕에 <예수승천기념교회>가 있다. 그 작은 예배당 내부에는 순례객들이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나는 평평한 바위가 있다. 그곳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라고 전해져 온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을 다른 복음서보다 훨씬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820절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다.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언제까지나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마가복음의 끝인 1620절에도 보면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는 언제나 그를 믿는 자들과 동행하신다. 함께 하신다. 예수 탄생에 대하여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도 바로 이것이다. ‘임마누엘’(1:23)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재를 실감 나도록 체험하며 살아가는 일상이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동행하는 생활을 말한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생활이다.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어두운 생각, 어두운 말, 어두운 출입을 떠나서 복음의 밝은 빛 가운데서 예수와 함께 하는 생활이 예수 믿는 자의 일상이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남겨 주신 말씀도 세상 끝날까지 늘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셨다.

 

마태복음 2819-20절의 내용은 선교대명령혹은 선교대위임령이라고 한다. 땅끝까지 열방의 각 족속에게 찾아가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부활 복음을 가르쳐서 예수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시다.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함께 교회에 다녀 보겠느냐는 정도의 전도 초청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작이 오늘날 나를 나 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는 주의 명령은 어디를 가든지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렇지 않나.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셨다. 아브람의 나이 75세에 처음 겪는 일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1-3) 아브람은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12:4)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출발이다. 세월 속에 우여곡절을 겪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듬고 다듬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삼으셨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 장에서는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11:8-10) 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오며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살아온다. 직업도 다르고 생업의 분야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다. 살아가는 여건도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연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혹은 과연 주님께서 나의 모든 출입과 범사에 동행해 주시고 계신가라는 질문 앞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말하는 것은 저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려간 요셉을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는 이유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 내용들로 그의 생애가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드보라,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일일이 다 거론할 시간이 없다. 저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동행해 주셨고 저들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밤이나 낮이나 늘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출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수는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오신 구주가 아니시다. 예수는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게 하시는 일을 위해서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열방에 선교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주의 일에 매진하게 하셨다. 그 거룩한 선교의 사역은 오늘 날도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명하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선교 명령 앞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다 신학교 가자는 말이 아니다. 다 선교사 되자는 말도 아니다. 우리 각 사람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 자신을 비롯하여 내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이 전파되어 가는 일에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복음의 거침돌이 아니라 복음의 디딤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평생 뭘 먹고 뭘 마시고 뭘 입을까만 궁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자. 복음 앞에 거룩한 목마름을 갖고 선교에 빚진 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 나가자. 성도다운 성도의 믿음과 전통을 계승해 나가자.

 

물 세례는 상징적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예수도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맞다. 오늘 날 우리가 물 세례에 만족하지 말고 불 세례와 성령 세례를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 복음의 가치를 깨달아 알고 믿으며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여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르쳐 지키도록 증거하여야만 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28:19-20)

 

올 한해 그리고 평생토록 동행하시는 예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거룩한 동행의 은총이 영영히 계속되기를 서로 축복하자.

 

 

-위 내용은 2021. 1. 31. 주일 설교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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