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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작전 2017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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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7-05 00:10 조회 13,011 댓글 0
 

흥남 철수 작전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도착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하였다. 장진호 전투가 무엇인가. 1950625, 북한군의 남침으로 사흘 만에 서울을 빼앗겼다. 급하게 낙동강 어구까지 후퇴했던 국군은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평양을 내어주고 밀려가던 북한군은 중공군의 도움을 받고 다시 반격을 개시하였다. 1127일에 중공군이 청천강 전투와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를 일으켰다. 중공군에 포위된 미군은 수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7,000명 이상의 미군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흥남 철수 작전은 19501215일부터 열흘간 함경남도 흥남 항에서 진행된 철수 작전을 말한다. 국군 100,000여명과 차량 17,000, 피난민 약 100,000명을 철수 시켰다.

 

1군단장 김백일(1917-1951) 장군과 10군단 소속의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은 미군 10군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결국 군대와 함께 피난민까지 철수시키는 데 성공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 철수 작전 마지막에 남은 상선이고 온양호는 가장 마지막에 흥남부두를 떠난 배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선적했던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 14,000여명을 태워 철수를 감행하였다. 항해 도중에 한 명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복잡한 환경에서 사내 아이 다섯 명이 탄생하였다. 거제도에 도착한 때는 그 해 성탄절 이브였다.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2001)선장은 1954년부터 뉴저지주 뉴턴시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성 바오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그 곳에서 87세에 숨질 때까지 늘 주님과 동행하며 묵상과 노동을 계속하며 지냈다. 그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상황을 나는 쌍안경으로 비참한 광경을 봤다. 피난민들은 이거나 지거나 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항구로 몰려들었다. 그들 옆에는 병아리처럼 겁에 질린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서 베네딕토회 수사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도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그 배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31월에 거제도에서 태어났다. 성공적인 흥남 철수 작전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산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서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시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셨다면 모세와 아론은 출애굽을 이루지 못하고 애굽의 바로 왕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으셨다면 다윗은 왕이 되기는커녕 이미 사울 왕의 창과 그가 모집하여 추격하게 했던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사도행전 27장에는 사도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결박되어 로마로 호송되는 장면이 상세하게 나온다. 그를 호송하는 책임자는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뵈닉스에 가서 월동하려는 무리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레데 해변을 출발한지 얼마 되지 못하여 북동풍인 유라 굴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다음 날에는 사공들이 배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다. 사흘째에는 배의 기구들조차 내버렸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질 않았다. 큰 풍랑은 계속되었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밤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셔서바울과 항해하는 자들의 생명을 한명도 잃지 않도록 모두 다 바울에게 맡기셨다.”고 말해 주셨다. 여러 날 째 잠도 잘 수 없고 서로 다 굶고 토해서 기진맥진해 있던 일행들에게 사도 바울이 말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25) 그런 고난의 날들이 무려 열나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아드리아 바다에 이르렀을 때에 물이 낮은 것을 알게 된 사공들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렸다. 일행들은 열나흘 만에야 겨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 숫자는 276명이었다. 사경을 헤매며 허기졌던 일행들은 배가 부르도록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밀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했다. 날이 새자 천신만고 끝에 멜리데 섬에 도착하였다. 섬이지만 육지에 오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고 키를 풀어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에 맞추어서 해안을 향해 들어갔다. 이미 고물은 깨어져 나간 후였고 이물은 두 물이 만나는 곳에 부딪쳐서 움직이질 않았다.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할까봐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백부장이 나서서 바울을 보호하였다. 저들은 모두 다 안전하게 멜리데 섬에 올랐다. 비가 오고 날을 찼다. 원주민들은 낯선 사람들을 위해서 불을 지펴 주었다. 불에 나무 한 묶음을 넣던 바울의 손을 독사가 물었다. 사람이 죽을 만큼 독한 뱀이었다. 죽을 줄 알았던 바울이 여전히 살아남자 원주민들은 그를 신이라고 말했다.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로 고생하고 있었다. 바울 사도가 그에게 안수하며 기도하자 깨끗하게 나았다. 섬 주민들 중에 적지 않은 병자들이 바울에게 와서 고침을 받았다. 바울과 일행은 석 달을 그 곳에서 머문 후에 로마를 향해 항해를 계속하였다. 바울은 말했다.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느니라.(28:20) 로마 감옥에 이태동안 갇혀 지낸 사도 바울은 순교의 순간을 준비하며 그 곳에서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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