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말과 말 타는 자 20170129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1-27 21:25 조회 15,608 댓글 0
 

말과 말 타는 자

 

 

말은 힘과 부와 권력과 군사력의 상징이다. 전쟁 목적의 말의 사용 아니고라도 운동으로 발전한 승마 역시 가난한 자들의 스포츠가 아니다. 요즘 말 타는 승마 선수에 관련한 사건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대기업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우리나라 여자 대학의 자존심과 같던 한 여자대학교의 총장과 교수들과 관련자들이 큰 곤혹을 치르고 있다. 상상해 보라. 잘 차려 입고 준마를 타는 장면은 얼마나 그럴싸한가. 목축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몽골 사람들이 말을 다루는 솜씨는 일품이다. 십대 초반의 어린이가 말을 타고 수 백 마리의 양떼를 이끌어 가는 그림과 같은 장면을 몽골 선교 현장에서 본 적이 있다. 두 아들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미국 필라델피아 시내의 실내 체육관 안에서 몽골 사람들이 벌이는 마상 쇼를 함께 구경한 적이 있다. 어른과 젊은이와 어린아이들이 말 잔등에서 온갖 위험한 마상 쇼를 펼치는 장관을 보았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 탄성을 지르게 하는 별의별 묘기가 끊임없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졌다. 몽골의 칭기즈칸(AD 1155?-1227)은 말을 타고 주변나라들을 파죽지세로 쳐들어가던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도 백마를 타고 구라파 전역과 영국과 러시아 지역까지 점령하려하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수련장의 뒤표지에는 앞 다리를 번쩍 들고 산을 넘는 말의 잔등에 타고 있는 멋진 나폴레옹 장군의 그림이 실렸던 적이 있다. 차양이 넓은 멋진 모자를 쓰고 바람에 휘날리는 망토를 걸치고 긴 가죽 장화를 신은 나폴레옹의 모습은 정말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The word impossible is not in my dictionary)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런가!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것인가. 말과 그 말 탄 자의 권세는 영원한 것인가. 물론 그는 불가능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난관을 극복하고 계속하여 도전해 나가려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려고 했었을 것이다. 60만 명의 군사를 이끌던 나폴레옹은 1812, 러시아 원정에서 크게 실패한 후로 프랑스의 운세도 기울어져 갔다. 이태 뒤에는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군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하고 그는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다. 18153, 나폴레옹은 다시 파리로 들어가 황제에 즉위하여 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몇 달 뒤인 6월의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에 패배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그도 52살에 초라한 모습으로 고통 가운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였다.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147:10) 시편 33편에는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33:16-18)라는 말씀도 있다. 맞다. 나라이든 개인이든 주께서 살펴 주셔야 한다. 그 분이 심판하시면 살아남을 자가 없다. 그 분이 심판하시면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르는 것처럼 눌리고 말 것이다.(2:13) 그 분이 심판하시면 빨리 도망쳐 봐야 소용이 없다. 그 분이 힘을 공급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자라도 힘을 쓸 수 없다. 그 분이 보호하시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용사라도 스스로 자기 목숨을 구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 초대 임금 사울의 죽음을 보라. 사울 자신이 그런 마지막 순간을 원했겠는가.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중상을 입었고 스스로 전쟁터에서 자결하고 말았다. 하나님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셨다.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15-16) 모세 때에 애굽의 바로 왕의 휘하에 있던 말과 병거와 마병이 부족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그것이 신명기이다. 하나님은 왕들에게 세 가지를 금하셨다. “왕 된 자는 말과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쌓아 두지 말 것이니라.”(17:16-17) 이 세 명령을 골고루 어긴 대표적인 왕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곳곳에 병거와 마병을 두었다. 병거성을 따로 두었고 예루살렘에도 두었다. 병거가 천사백대요 마병이 만이천명이었다. 처첩도 많이 두었다. 이방에서 데려온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었다. 성경은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왕상11:3)고 지적하였다. 솔로몬은 금과 은도 넘쳐났다. 이백 개의 큰 금 방패와 삼 백 개의 작은 금 방패를 만들어 레바논 나무 궁 안에 보관하였다. 그런 솔로몬 왕이 나이 육십에 죽고 말았다.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고 아들 르호보암이 남 유다의 첫 왕이 되었다. 다섯째 해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예루살렘에 쳐들어 왔다.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빼앗아갔다. 그 때 솔로몬이 만들어 두었던 금 방패들도 모조리 다 빼앗기고 말았다. 방패는 놋으로 만드는 것이지 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데 솔로몬은 그렇게 치부하고 그렇게 교만을 떨었었다. 사실 우리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당시의 모습을 통해서 은혜도 받고 교훈도 얻는다. 그러나 솔로몬의 나중은 점점 형편없이 패역해져 가는 내리막길 인생을 걸어갔다. 다윗은 솔로몬과 달랐다. 다윗은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20:7-8)라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20:9) 다시 시편 12710절의 말씀을 주목하자.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 않나. 그것도 어미가 아닌 새끼 나귀를 타시고...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영원한 왕이신 예수..최고관리자
"내가 천사의 말을 ..최고관리자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너 축복 하시려고"최고관리자
"꿈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내 주 예수 주신 ..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