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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고전12:1-13)202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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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5-28 12:04 조회 649 댓글 0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고전12:1-13)          2023. 5. 28 성령강림주일


하나님 혹은 예수님에 대한 설명과 이해에 비해서 ‘성령’에 관한 말씀을 전하면 초반부터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도 ‘하나님. 예수, 성령’즉 삼위일체의 각 표현이 골고루 등장한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령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받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이시다. 3절에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그 뒤에 나오는 ‘성령’을 일컫는 말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이 삼위일체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의 강림을 기념하는 주일이 오늘이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그의 승천 현장까지 동행한 열 한 제자에게“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씀하신 ‘약속하신 것’이란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미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가서 피밭이라고 이름하는 아겔다마에서 불행한 선택을 하였다. 그 외의 남아 있는 저들 11제자는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기 전에 세례 요한에게 물 세례를 받은 이들이다. 예수께서는 저들에게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며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던 120여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였다. 예수께서 승천하신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인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불길처럼 부흥이 계속되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고린도 교회에 편지한 고린도전서와 후서의 기록자인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9장의 변화 받은 주인공이다. 그는 일곱 집사 중의 하나인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일을 마땅한 일로 여길 정도의 유대주의자였다. 사도행전 9장 1절에 보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자였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성에 피해서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예수 믿는 신자들을 색출하여 핍박하기 위해서 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삼일 간 앞을 못 보게 된 상태에서 직가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머물렀다. 주님은 그 곳의 선지자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 만나서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라고 말씀하셨다. 사울을 만난 아나니아는 그에게 안수하면서“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라고 말했다. 그 날 그 현장에서 사울은 아나니아에게 안수도 받고 세례도 받았다. 그리고 삼일 만에 음식을 먹고 강건해졌다. 그 즉시 다메섹 성 안의 길거리에 나가서 곳곳에 회당을 찾아 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뿐만 아니라 “예수는 그리스도라”(행9:22)라고 증언하며 다녔다. 이것에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의 시작이다. 악명 높던 사울이 누군지를 익히 잘 알던 다메섹에 살던 유대인들은 몹시 당혹스러워했다. 

그렇게 변화 받고 성령 받고 출발한 사도 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다. 그 첫 편지인 고린도전서 12장의 본문에 보면 성령에 관하여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게 하는 성령.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성령의 힘이다. 성령의 도우심이다. 내 지식, 내 경험, 내 판단, 내 분별력, 내 종교적 관심에 의한 것이 아니다.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방 도시인 고린도에 살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저들에게 “여러분이 이방인으로서 과거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다닌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라고 편지한 것이다. 

사도행전 9장 22절에 사울이“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한 것은 놀라운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늘 본문 3절의 내용이 그것이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이다. 예수를 저주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예수를 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이 세상의 그 누구라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예수를 주라고,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가 없다. 

1973년 5월 30일, 12만평에 이르는 여의도 광장에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가 열렸다. 첫날에 51만명에서 시작해서 닷새째 되는 주일 오후에는 110만명이 모였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설교 후에 예수를 주로 영접하는 이들을 앞으로 초대하였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하게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부흥 운동이 지난 50년 동안 한국 교회를 세계적인 교회로 부흥되게 하는 불씨가 되었다.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자가 성도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가 성도이다. 우리는 세례 문답할 때에 이런 질문에 각각 대답하고 성도가 되었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성령의 도우심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아란 말이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한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기름 부음을 받는 자들이다. 예수는 왕 중의 왕이시다. 제사장 중의 대제사장이시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시다. 그러므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나의 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는 것은 놀랍고 은혜로운 신앙 생활의 시작이다. 

288장 찬송가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라는 찬송가의 1절을 보라.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 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O what a foretaste of glory divine!
Heir of salvation, purchase of God,
born of his Spirit, washed in his blood.

This is my story this is my song
Praising my Saver all the day long(X2)

마음을 담아서 이런 찬송을 부른다면 그가 바로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성령의 사람인 것이다. 

<침묵(Silent)>이란 제목의 일본 선교 역사의 핍박기를 다룬 다큐물 영화가 있다. ‘후미에’라고 해서 예수 형상의 동판이나 목판을 발로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망설이기만 해도 따로 세워서 처형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처형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도 있었다. 6. 25 때에 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썼다고 하지 않나.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은 감상적인 선택이 아니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각 사람의 일생의 선택이다. 요즘처럼 평안안 시대에 예수를 믿으며 사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복음 전파의 위기이기도 하다.

예수가 나의 삶에 구주이시며 나의 모든 가족 각 사람의 구주로 고백되는 가족 구원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하자. 


서로를 유익하게 하는 성령.
우리의 신앙생활 현장에서 대하는 대로 서로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서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7절에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다. 맞다. 그렇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는 서로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이루어 가신다. 

고린도전서 12장 본문에는 여러 가지 은사 중에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 분별의 은사, 각종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등 직능의 은사를 언급한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의 “사도, 선지자, 교사의 은사”는 직분 은사이다. 그곳의 “서로 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는 직능 은사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성령으로 인한 은사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깨달을 수가 있다. 

로마서 12장 6-8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하였다. 

성령 받은 증거는 은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가정과 세상과 교회에서 은사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령 받은 믿음의 사람의 증거이다. 

에베소서 4장 12절은 은사의 유익에 대하여 분명하게 교훈하고 있다.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다. 

본문인 고린도 전서 12장 4- 11절을 정리해 보면 은사의 유익은,

첫째, 각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진다.
둘째, 각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셋째,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골고루 각양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은사를 따라 서로를 섬기지 않고 자기 기분, 자기 의지, 자기 취향, 자기 열심, 자기 만족, 자기 인기, 자기 중심의 열심을 갖고 교회를 대하고 성도들을 대하다가 자기 당착에 빠져서 넘어지거나 병드는 이들을 본다. 왜 그럴까. 은사 중심으로 서로를 섬기지 않으면 그 나중은 다 불행해 지고 만다. 시작도 성령의 은사  과정도 성령의 은사 마무리도 성령의 은사 중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보람이 있고 상대방도 기쁘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건강해 진다. 

전방 보병 소대의 소대장 시절에 휴전선 최전방 일반 전초기지인GOP(General Outpost)에서 일년을 지냈다. 삼십명의 소대원들이 휴전선 철책 가까이 언덕 넘어 격오지 벙커 내무반에서 햇빛이 없는 공간에서 일년을 지냈다. 트럭으로 식량과 생필품을 가져다 주어야 해결할 수 있었다. 그 전방에 소초라고 불리는 GP(Guard Post)가 있다. 그런데 그 삼십명이 팔방미인이다. 서로 은사와 재주와 실력과 능력이 다 다르다. 그 서로 다른 것이 합하여 지면 별의 별 문제들이 다 해결된다. 교회란 그런 곳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부으셔서 각 사람이 각양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서로 잘 섬겨 가도록 역사하신다. 이것이 지난 이천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이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유익이 되는 은사 중심의 충성된 청지기 들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한 몸을 이루게 하시는 한 성령.
사도 바울은 몸과 그 몸을 이루는 각 지체의 연합의 원리를 통해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체를 이루는 온몸의 제 각각의 기능의 연합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러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성도의 화합과 화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성령이다.

 

우리의 몸을 말할 때에 사지백체(四肢百體)란 표현을 쓴다. 오장육부(五臟六腑)와 혈관과 신경세포와 뼈마디를 통해서 신비하게 형성된 것이 인간의 몸이다. 백과사전에 찾아보면, “세포는 인체를 비롯한 모든 생물의 살아 있는 기본단위이다.”라는 설명이 첫 줄에 나온다. 세상에는 단 세포 동물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인 인체는 75조 개 이상의 세포로 되어 있다. 각 세포는 성장·대사·자극에 대한 반응을 할 수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증식할 수 있다. 몸에는 200가지 정도의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가 있다. 그것을 4가지로 구분한다. 4가지 세포형은 세포 외 물질과 함께 인체의 기본 조직을 이룬다. 인체에는 하나의 기능 단위를 형성하면서 함께 일하는 여러 기관과 조직으로 이루어진 9개의 주요 기관계가 있다.

 

이런 내용을 자세하게 접하는 것이 골치 아픈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순간을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복잡하고 신묘막측한 인체의 신비 속에 담겨 있다. 이 모든 신체가 각기 정상적인 기능을 잘해 가야 병을 이기면서 70-80년 혹은 장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본문 12절에 보면 몸은 하나다라고 했다. 맞다. 한 몸 안에 많은 지체가 있다. 그 다양한 지체가 결합해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성령 받은 우리 각 사람으로 구성된 몸된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된 한 몸 공동체의 일원이다. 몸 안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206개의 뼈로 연결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이 각기 다 소중하고 다 필요하다. 이것이 은사란 것이다. 필요 없는 은사란 없다. 오늘 성령 강림 주일을 새로운 시작으로 올해도 벌써 다섯 달이 거의 다 지나가고 일곱 달만 남아 있다. 자신의 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가정과 직장과 사업의 현장과 교회와 성도들 간에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한 몸 공동체를 든든하게 이루어 나가야만 할 것이다.

 

13절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라는 것은 인종 구분이다. “종이나 자유인이나라는 것은 신분 구분이다. 성령은 인종, 피부색, 언어, 문화, 의식주, 기후, 신분, 외모, 건강 상태, 능력의 차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골고루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환영하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따라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이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성령 공동체이다. 성찬 공동체이다. 예수의 피와 살을 받아 나누는 성찬 공동체이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라는 교훈이 늘 우리 각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은혜의 말씀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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