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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양과 목자의 비유(요10:1-10) 2023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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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4-30 13:52 조회 843 댓글 0
 

양과 목자의 비유(요10:1-10)             2023. 4. 30     

     

예수께서는 모든 말씀을 비유로 하셨다. 오늘 본문인 양과 목자의 비유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비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교훈을 담아서 전달하는 특별한 화법이다. 우리는 농경 문화 중심이었지만 오래도록 목축 중심의 유목민으로 살아 온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양과 목자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누가 들어도 알아듣기 쉬운 이야기이다.

     

동물 중에서 양은 사람의 손길이 없이는 야생할 수 없는 유일한 동물이다. 양은 반드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양을 돌보는 이들을 목자라고 한다. 어린이의 경우에 목동이라고 한다. 낮에는 목자가 양 떼를 풀밭으로 인도하고 물가로 인도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맹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일정한 우리 안에 가두어 둔다. 이는 어느 들판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연결한 돌담이나 흙담을 쌓기도 한다. 아니면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서 울타리를 만들기도 한다. 울타리 위에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을 올려 두어서 도둑이나 맹수가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1절의 ‘우리’라는 것은 ‘너와 나’를 일컫는 ‘우리’가 아니라 짐승을 가두어 두는 울타리를 말한다. 양과 목자의 비유를 통해서 은혜를 깨닫는 아침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의 특징은 ‘나는 ∼ 나다’라는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의 화법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양의 목자’혹은 ‘문지기’라고 표현하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11절과 14절에서‘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특징이 무엇인가.

     

자기 양을 일일이 알 뿐만 아니라 이름을 불러준다.(3절)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고 안다.(3절)

목자는 양을 일일이 불러서 인도한다.(3절)

목자는 언제나 양들보다 앞서서 간다.(4절) 목자는 절대로 뒤에서 양을 뒤따라가지 않는다. 우리 밖에 나선 양들은 앞서가는 자기의 목자를 따라서 간다.

선한 목자는 언제나 양들을 풍성하게 먹인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선한 목자는 양들을 품에 안는다.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사40:11)라고 하였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에게 영생을 준다. 그리고 끝까지 보호하고 지켜 준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선한 목자는 양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요10:9)라고 했다. 

선한 목자는 양으로 하여금 우리의 안과 밖으로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게 한다.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라고 하였다. 

선한 목자는 잃어 버린 양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눅15:4-6)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

실로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과 영생을 선물해 주셨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목자로 삼고 따르는 생활이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는 이들을 헐뜯어 말하고는 한다. “아니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면 그만이지 무슨 종교, 무슨 신의 존재 운운하며 살아가느냐”고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혹은 “나는 무종교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면 되지 무슨 신의 존재를 운운하며 신의 도움을 청하려고 하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당신은 어떤가. 왜 하나님을 믿는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가. 누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소개하였는가. 물론 누가 내게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해 주고 소개한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을 쉽게 믿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양과 같은 연약한 인생에게 찾아오신 주님이 나를 택하여 자녀 삼으시고 나의 목자가 되어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것은 놀라운 은혜요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시편 23편 1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랬던 다윗이 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내용대로 타락하고 말았다. 전쟁 중에 부하 장군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 들였다. 잠자리를 같이 하였다. 한 번의 잠자리로 밧세바는 임금 다윗의 아기를 임신하였다. 다윗은 전쟁의 일선에 있는 우리야 장군을 소환해서 특박을 제공하였다. 우리아 장군은 집에 가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랬다. 우리아는 헷 사람이지만 다윗왕과 달랐다. 그는 다윗 왕 앞에서 분명한 입장을 취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삼하11:11) 그날 다윗은 우리아 장군에게 술을 마시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야는 다윗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전쟁의 최 일선에 배치되었던 우리아 장군은 전사하고 말았다. 

     

다윗이 평소의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고 살아갔다면 그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매 순간 나의 삶의 목자 삼는 것이다. 목자이신 주님이 나보다 앞서가시는 그 뒤를 겸손히 따라 가는 것이 양과 같은 믿음의 사람의 삶의 모습이어야 한다. 시편 95편은 누가 언제 쓴 시편인지 알 수 없다. 시편 95편 6-7절에 보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목자 삼고 살아가는 양과 같은 백성의 고백을 만나보게 된다. 이사야 40장 11절에 보면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예레미야 31장 10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의 양떼에게 행함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라고 하였다. 

     

이사야 63장에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과거에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학정에서 구출하는데 앞장서도록 쓰임 받았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로 묘사하신 바 있다.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사63:11)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양과 같은 내 인생의 목자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각 사람은 이 땅에서 때로 내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목자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며 주께 쓰임 받는 믿음의 준비된 그릇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은혜가 각 사람에게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나는 양의 문이라.

7절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양을 목축하는 목자들은 양의 우리를 지을 때에 따로 문을 만들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양의 우리에 양을 일일이 이름 불러 가며 들어가게 한다. 그 후에 목자는 우리의 문에 들어 누워서 밤을 지낸다. 우리에 문이 따로 없고 목자 자신이 우리의 문 역할을 하였다. 양의 우리의 구조와 문의 구조를 아시는 예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983년 10월에 결혼하고 그 다음 해인 1984년에 ‘양문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였다. 상가 2층의 신축 건물에 30평을 벽을 막아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10평을 막아서 방 하나, 서재 하나, 부엌 공간 그리고 화장실은 바깥 계단으로 내려 가면 1층에 별도 건물로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그 때 아내와 단 둘이 시작한 개척 교회 이름을 ‘양의 문’을 줄여서 ‘양문교회’라고 지었다. 4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0만원으로 시작했다. 6년 반 이후에 오늘날까지 목회를 이어서 해온 임제택 목사는 나중에 교회 이름을 ‘열방 교회’라고 고쳐 불렀다. 지금은 대전에서 손 꼽는 큰 교회가 되었다. 연회를 열 정도의 큰 예배당을 건축한 교회로 부흥하였다. 그 교회를 개척할 당시의 고백이 그러하였다. 예수께서 목자가 되시고 예수께서 양 떼의 문이 되시는 교회로 세워지고 자라나기를 기도하고 기도하였다. 그 상가 교회에서 받은 말씀인 갈라디아서 6장 9절의 말씀이 나의 목회 좌우명이 되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 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라는 말씀이다. 예수를 내 인생의 문으로 삼고 예수를 통해서만 우리를 들고 나는 양과 같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잘못될 인생이 이 세상에 그 누가 있겠는가. 예수는 양 우리의 문이 되셔서 양을 지키고 보호하고 밤과 낮의 모든 형편을 돌아보시며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시다. 

     

절도와 강도를 주의하라.

양이 선한 목자의 보살핌과 인도하심 가운데 잘 살아가려면 절도와 강도를 주의해야 한다. 요한복음 10장의 시작인 1절의 경고가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경고하셨다. 8절에서는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는 절도와 강도는 요한복음 9장에서 언급하신 바리새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구약 중간사 시대에 출몰을 계속했던 거짓 선지자들을 지적한 말씀이기도 하다. 그 때나 오늘 날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진리를 왜곡하며 성경을 곡해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의 미혹을 분별하고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라고 하였다. 실제로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산헤드린의 공회원들 중에 사탄의 지배를 받으며 예수를 죽이려 하고 하나님의 시대적인 뜻에 역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예수는 결국 저들의 음모와 결탁에 의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처형당해 돌아가셨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라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악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벧전5:8)라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9절에서 이어서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라고 교훈하였다. 

생각하여 보라. 예수를 나의 목자 삼고 예수를 나의 삶의 모든 출입의 양의 우리의 문으로 모시고 살아간 믿음의 사람들 중에 잘못된 이들이 있었는가. 우리가 왜 예수를 나의 선한 목자 삼고 따라야 하는가. 우리가 왜 예수를 나의 선한 목자 삼고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하는가. 나의 날마다의 출입에 예수를 양의 문 삼았을 때에 도둑에게 빼앗기고 강도에게 위협을 당할 리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목자 삼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목자 삼고 살아가며 사탄의 궤계를 분별하고 절도와 강도의 출입을 경계하며 살아가면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의 삶을 점점 복되게 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복되게 하실 것이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고백하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교훈해 주셨다. 

     

“내가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선한 목자이신 주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므로 믿음의 삶이 풍성해지고 주 안에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이 모두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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