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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의롭다 하심을 받은 믿음(롬5:1-11)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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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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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3-13 13:01 조회 1,162 댓글 0
 

                       의롭다 하심을 받은 믿음(롬5:1-11)             2023. 3. 12

 

 

종교통합론자들은 사람이 아무 종교나 가지면 되고 아무 신이나 믿으면 된다는 주장을 한다. 기독교의 복음 즉 구원에 이르는 절대 진리가 불교 유교 이슬람교 등 타 종교의 구원관과 차이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려 한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 바로 뒤에 이어 나은 말씀은 이것이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요14:7)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2:25-26)라고 질문하셨다. 이 말씀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과 장례 이후에 나사로의 마을인 베다니에 가셔서 하신 말씀이시다. 나사로가 무덤에 뉘인지 이미 나흘이 지났다.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텐데요.”라고 말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런 일이 있겠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믿음이다. “믿음의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받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은 그런 말 전하는 베드로를 싫어하고 미워해서 붙잡아 하룻밤을 옥에 가두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베드로는 그 다음 날 자신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유대의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의 문중이 모두 다 모여 있는 앞에서“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로마서 5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앞의 내용인 로마서 4장의 내용에 근거한 말씀이다. 믿음과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상관 관계에 대하여 교훈하는 내용이 로마서 4장 전체에 담겨 있다. 사도 바울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을 예로 든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이지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루종일 일하고 일당으로 받은 것은 보수이지 은혜가 아니다. 그러나 일한 것도 없고 경건하지도 않은데 의롭다고 여기시는 분을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라고 하였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다.”(롬4:17)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 21-22절에서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이 주로 살던 로마에 복음 전파를 위해서 편지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하며 초대하고 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롬4:23-24)

 

자. 그러면 오늘 날 우리 각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며 어떤 혜택과 특권 속에 살아가는 자인가에 대한 본문의 교훈을 좀 더 자세히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가 되는 주일 아침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和平).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 중의 첫째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화평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 화평이란 ‘에이레네’ 는 구약의 ‘샬롬’이다. 이 화평의 상태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일상의 모습을 말씀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아담, 하나님과 하와의 관계에 화평이 깨어진 이유는 죄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불순종으로 인한 죄 때문에 무너졌던 관계가 원래의 상태로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

 

생각하여 보라. 이 세상에 ‘화평’이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화평, 평화, 화목, 평강, 평안 이것이 없다면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성경이 말씀하는 ‘화평’이란 그냥 술 한 잔 마시고 알콜 기운에 기분이 아리딸딸해져서 좋은 그런 정도를 화평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마약류의 심각성이 사회 문제인데 마약에 손을 대서 느끼고 경험하는 몽롱한 그런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그런 정도의 세계와 천분의 일, 만분의 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적 감격의 세계이다. 

 

천하를 얻는다 해도 내 마음 속에 화평의 상태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냔 말이다. 사람이 황금잔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온갖 산해진미를 은쟁반에 담아서 먹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더라고 매 순간 내 마음에 찾아 드는 평화, 평강, 화평이 없다면 그 모든 좋은 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71억짜리라고 한다. 영국 디자이너 스튜어트 휴즈(40)가 진두지휴해서 3개월만에 만든 침대다. 단 2대만 만들었다. 다이아몬드와 금 등으로 장식돼 400만 파운드(약 71억원)이다. 발다치노 서프림 침대는 24k 금 107kg을 사용해 잎사귀 모양의 장식들이 100% 수공예 세공됐다. 밤나무로 틀을 만든 이 침대는 최고급 물푸레 나무로 조각 장식됐으며, 체리나무로 캐노피 부분을 제작했다. 침대보는 최고급 이탈리안 실크와 면으로 만들어졌으며, 헤드보드는 다이아몬드나 다양한 보석들로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제품을 소개한 신문 뉴스라이트는 “불행히도 금과 다이아몬드가 배우자의 코골이를 고쳐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남 현대 백화점에서는 5억짜리 침대가 팔린다. 해스텐스는 170년 역사를 가진 매트리스 브랜드로, 스웨덴 왕실에서 사용하는 침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성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마음의 화평, 영혼의 화평이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 비해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부자도 많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침대, 좋은 소파, 좋은 옷, 좋은 악세서리 등등등등을 소유하고 장식하고 지니고 살아도 내 영혼에 구원받은 자의 감격으로 주어지는 화평의 상태란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이다. 물론 그런 세상적인 것을 남달리 누리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인 지나친 부를 추구하다 보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상충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화평’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선물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4절에 보면,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가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라고 찬송하고 있다. 이런 찬송은 체험이 있는 자의 마음이 담긴 찬송이 아니고 주변 사람 따라 부르는 정도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세계이다. 이런 은혜와 평화를 매 순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가는 주인공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恩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또 하나의 복은 ‘은혜’를 깨달아 아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도 생활 중에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한다. “이 은혜를 어찌 다 값을 수가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이 교훈하는 ‘은혜’란 그런 정도 차원의 세계가 아니다. 로마서 4장 16절에 보면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안다. 아버지의 유산을 일찍 받아 들도 타국에 갔던 둘째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그 내용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모두 다 깨달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은혜, 아버지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 비유의 대화 중에 아버지가 큰 아들을 설득하는 내용에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1-32)

 

이번 봄 학기에 한동대학교 복지학과 교수에서 모교인 이화여자 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이지선(1978-) 교수의 라디오 인터뷰 내용을 들어 보았다. 올해 45살이다. 이화여대 졸업반 대에 연대에 다니던 오빠와 만나서 오빠가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음주 운전자가 사고를 내고 도망갔다. 자동차에는 불이 났고 전신 55%가 불에 탔다. 수 십차례의 피부 이식 수술을 했다. 살아 남을 확률은 10%도 않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살아 남아서 미국 UCLA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도 한동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얼굴과 온 몸이 불에 타고 일그려졌다. 성한 손가락이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밝고 맑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행복의 아이콘이다. 

 

누구나 그렇게 굳굳하게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니다. 그러나 이지선 교수는 다르다. 그 다르게 살아갈 수 있게하는 힘이 은혜이다. 은혜를 알고 나면, 은혜를 받고 나면, 은혜를 깨닫고 나면,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은혜를 누리게 되면 그 은혜의 삶이란 설명으로는 불가능한 놀라운 영적 세계 속에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이다. 손경민의 <은혜>의 찬양이 그런 고백이 아닌가.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이런 은혜와 평강이 늘 마음에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바라고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영광(榮光).

신구약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은헤를 깨달아 알고 그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이들이다. 그 반대는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하나님을 떠나 버린 인생들의 불행한 이야기이다. 

 

그 모든 것은 선택이다. 요즘 사무엘상에서 대하는 사울과 다윗을 보라. 사울도 왕이고 다윗도 왕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무엇인가. 다윗은 점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누리는 주인공으로 살아갔고 반대로 사울왕은 점점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서 떠나 버리는 불행한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베드로와 가롯 유다를 보라. 둘 다 예수의 제자이다. 둘 다 예수를 부인하고 배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뉘우치고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는 사도행전 초대 교회의 역사적인 사도의 길을 걸어갔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믿음의 선진이 되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팔아 버리고 예수의 곁에서 떠나간 후에 불행한 죽음을 맞는 아겔다마 즉 피밭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사도행전 1장을 읽다가 보면 괄호 안에 담겨 있는 18-19절의 가롯 유다의 마지막 죽음에 대한 비참한 장면을 대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이다. 성령과 악령도 선택이다. 선과 악도 선택이다. 정의와 불의도 선택이다. 진리와 거짓도 선택이다. “이 길로 갈까 아니면 저쪽 길로 갈까”도 선택이다. 그렇지 않나. 에덴동산에는 하나님도 계셨고 뱀 즉 사탄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현존,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동행을 의식하지 못하고 뱀의 꼬임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최근에 온 나라 언론을 시끄럽게 달구는 JMS(Jesus Morning Star-예수님의 새벽별/ 기독교 복음선교회)정명석 사건을 보라. 김도형 단국대 수학과 교수는 반JMS운동에 몸 바쳐 왔다. 김도형 교수는 자신이 카이스트 대학생일 때에 그 집단에 갔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오늘 날까지 반JMS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JMS쪽 행동 대원들에게 테러를 당해 죽음 직전 까지 갔었다. 쇠 

 

 살아 남았으나 고통과 고난 속에 살다가 눈을 감았다. 이단과 사이비의 횡포가 사악하기 그지없다. 그야말로 사탄적이다. 마귀적이다. 극악무도 하다. JMS조직은 키 170cm이상의 미모를 가진 명문 여대상을 사냥하듯 해서 정명석에게 성 상납해 왔다. 일만명 성 상납이 목표였다고 한다. 김도형 교수는 KBS 여성 PD, KBS방송 동시 통역사 중에도 정명석에서 매수된 이들이 있다고 공개하였다. 

 

이단과 사이비의 폐해는 알려진 것 이상이다. 불 조심, 물 조심 그 이상으로  이단과 사이비를 조심하고 경계하여야 한다. 나만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망하고 만다. 이단과 사이비는 악령의 집단이다. 악령의 지배를 받는 집단이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분별력을 갖고 믿음 생활해야 한다.

 

환난, 인내, 연단, 소망이 무엇인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안다면 주님이 주신 참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라고 하였다. 예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 피의 권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감격이고 기쁨이고 소망이고 복인 것이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이런 은혜와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복된 나날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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