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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이니라(학2:1-9)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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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07 21:29 조회 1,993 댓글 0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1-9)            2022. 11. 6

 

미국 이민자들 중에 일본 사람들은 도착하면 스시집 문을 연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도 우리나라의 화교촌과 같은 지역에 식당 문을 연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교회를 시작한다. 그것이 어느 누구의 가정집에서이든 혹은 미국인들의 예배당을 빌려서이든 말이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출애굽의 선봉에 모세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해 주신 말씀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셔서 하나님께 제사하는 민족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셨다. 모세는 바로 왕 앞에서 제사를 위해서 애굽을 떠나게 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하였다. 출애굽한 모세와 그의 백성들이  광야에 성막을 건축한 것은 사람의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규모와 재료와 식양과 공간 구분과 용도를 자세하게 명령하여 지어지게 하셨다. 성막을 회막이라고 한다. 성막이란 거룩한 장막이란 뜻이고 회막이란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 주신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회막은 광야 생활을 끝으로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헤체되고 이동되어 재 조립되었다. 물론 이는 광야 생활의 이동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막은 언제나 열두 지파의 중심에 자리 잡고는 하였다. 사사 시대와 사울 왕 시대와 다윗 왕 시대까지 성막은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중심, 제사의 중심이었다. 성막에서 제사하던 다윗의 소원은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결국은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야 다윗 왕의 기대와 소원이 이룩되었다. 

 

열왕기상 8장에 보면 건축이 마무리 된 성전 안으로 성막에 있던 여호와의 법궤를 옮기는 장면이 나온다. 법궤는 언약궤라고도 한다. 언약궤는 제사장들의 어깨에 메어져서 옮겨졌다. 거룩하고 장엄하고 신성한 장면이었다. 성전의 지성소에 언약궤를 안치하고 제사장들이 지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였다. 열왕기상 8장 11절에 보면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솔로몬의 대 국민 연설 내용과 하나님 앞에서 드린 기도 내용이다. 그 당시의 왕이란 제정일치시대의 중심 인물이었다. 광야시대의 모세, 사사 시대의 사사의 뒤를 이어서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의 역할이 하나로 합치된 온 백성의 중심이 되는 거룩한 신분이었다. 솔로몬 왕은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 바라 보고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8:23) 짧지 않게 이어진 솔로몬의 기도 내용을 여기서 일일이 묵상할 시간은 없다. 열왕기상 8장 54절에 보면 솔로몬 왕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났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기도를 시작한 솔로몬 왕은 어느 순간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를 계속한 것이 분명하다. 

 

열왕기상 9장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을 마친 후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만일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고 경배하면 내가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다. 이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릴 것이다.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와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할 것이다.”(왕상9:4-8)라고 경고하셨다. 

 

솔로몬 왕의 사십 년 통치 기간 동안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 우리는 솔로몬 왕이 나중에 얼마나 변질되고 타락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었다. 열지파 중심의 북 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사마리아 중심으로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들었다. 솔로몬 왕은 죽었고 41살에 대를 이은 아들 르호보암이 남 왕국 유다의 초대 임금이 되었다. 르호보암은 이방 나라 암몬 사람 나아마를 통해서 솔로몬이 낳은 아들이다. 르호보암 왕 때의 남 유다는 산 위에와 푸른 나무 아래 산당을 짓고 우상을 세우고 아세라 상을 세웠다. 그 땅에 남색하는 자가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쫓아 내신 이방 백성들의 가증한 일을 유다 백성의 무리가 본 받아서 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남 유다는 제 20대 왕 시드기야의 때를 끝으로 주전 586년에 바벨론의 침략을 받고 망했다. 이 때에 솔로몬의 성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바벨론의 침략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의 금을 비롯하여 귀한 모든 것들을 모두 다 집어 가 버렸다. 심지어는 야긴과 보아스 두 놋 기둥까지 모두 다 끌어 가 버렸다. 제사에 사용하던 부젓가락 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집어 갔다. 그야말로 솔로몬의 성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경고하신 말씀 그대로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저들은 처철한 심판을 받고 말았다. 이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고 주전 722년에 멸망한 후였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내용은 바벨론 포로 생활 칠십년을 끝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예루살렘에 되돌아 올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건축되던 때의 장면이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앞장 세우셔서 이 일이 가능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주전 520년 7월 21일의 일이다. 성전 재건 공사가 시작된지 약 한달 쯤 지난 때의 일이다. 

 

성전 재건축의 외관이 드러나면서 백성들은 실망스러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솔로몬 때의 성전에 비해서 그 외관이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학개서 2장 3절의 끝에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라고 성전 재건의 중심 인물인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하셨다. 그 당시 스룹바벨은 총독 이었고 여호수아는 대 제사장이었다. 그는 모세 때의 여호수아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이다.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라고 일일이 말씀하셨다. 이는 마치도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에게 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하게 한다.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말씀 말이다. 이런 말씀은 다윗이 죽기 전에 아들 솔로몬에게 해준 역대상 28장 20절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나온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 말이다. 하나님은 바베론 포로 생활의 땅에서 꿈처럼 살아 남아 되돌아 온 백성들의 중심에 총독 스룹바벨과 대 제사장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굳세어라”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서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졌다.

 

자 그러면 스룹바벨 시대의 성전 건축이 다시 가능하도록 새 기회를 열어 주신 하나님이 포로의 땅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며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이다. 이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택함 받은 백성들 가운데 늘 함께 하신다는 임재와 동행의 약속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뜻에 담아 주신 것이다. 임마누엘의 신앙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이다. 430장 찬송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의 후렴은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라고 찬송하지 않나.

 

우리는 한 걸음 앞을 모르고 한 시간 앞을 모른다. 한 시간은커녕 일 분 혹은 일 초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해석하기 조심스러운 성경 말씀이지만 예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는 것을 예로 드시면서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라고 경고하셨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사고와 사건의 소식 앞에서 당혹스러워하며 살아 간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생로병사가 주님의 손 안에 있다. 이는 개인이나 민족의 운명이 다 마찬가지이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애굽의 노예 환경에서 태어난 히브리 사내아이가 한두명이었겠나. 바로 왕은 그 당시에 태어나는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런 때에 삼 개월을 숨겨 키우던 아기가 모세가 아닌가. 갈대 상자에 담아서 어린 아들 모세를 나일강에 띄울 때의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다. 갈대 상자 속에서 들려 오는 아기 울음 소리를 들은 것은 강가에 목욕하려고 나갔던 바로 왕의 딸 공주였다. 공주는 모세를 강물 위에 흘러 내려가는 갈대 상자 안에서 꺼내 안았다. 그리고 모세를 데리고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아는 모세의 삶은 전개되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어른이든 어린 아기이든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없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이렇게 사고와 사건이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이라도 평안하게 살아 갈 수가 없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증거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이시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하였다. 추수 감사의 달을 지내다 보면 11월 27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째 주일이다. 올해도 남아 있는 날들을 언제 어디서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은총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榮光)이 충만하게 하리라.

우리의 생활 중에 예배당이 없는 일상을 상상해 보라. 물론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는 한 반도에 예배당이 한 곳도 없었다. 처처에 성황당이 널려 있었다. 마을 입구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전봇대 만한 나무로 깎아 다듬은 수호신이 버티고 있었다. 산야마다 암자와 사찰이 넘쳐 난다. 조선 시대 500년은 철저히 유교 사상이 짓 누르고 있었다. 대개의 백성들을 천년 불교의 영향에 젖어 살고 있었다. 무속 신앙과 미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의 26대 왕 고종(高宗, 1852-1919)과 민비는 무당의 지배 아래 있었고 철저한 무속 신앙에 젖어 있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심하던 시대 상황에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이 받아 들여지고 오늘날처럼 복음이 큰 겨자나무가 자라나듯이 펴져 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강화도에는 마을마다 교회가 있다. 예배당이 없는 마을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다. 서울 장안에도 얼마나 예배당이 많은가. 눈에 띠는 예배당 말고 어떤 상가에는 한 건물에 여러 교회가 층을 달리하고 방을 달리해서 입주해 있기도 하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솔로몬 성전이 파괴 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 생활을 계속하여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새 성전을 건축할 감격스러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학2:7)

 

그렇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 즉 예배당은 그 건물이 크든 작든 혹은 독립된 예배당이든 혹은 상가 지하의 좁은 예배실이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잘 들여다 보라. 내가 스스로,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성전 봉헌 때에 구름으로 성전을 가리심과 같이 거룩하고 경건하고 신비한 여호와의 영광으로 하나님이 충만하게 채워 주셔야만 한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의 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 각 사람의 마음이 성전이다. 우리의 마음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해지려면 말씀 묵상 생활과 기도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가야만 한다. 

 

우리는 육체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운동도 하고 섭생도 골고루 하고 보건과 위생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이처럼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노력을 꾸준히 계속하여 해야만 한다.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무하려 한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하려면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길 밖에는 없다. 

 

날마다 골고루 섭취하는 영양 섭취와 종합 비타민을 비롯한 각종 건강 관리를 위해서 관심을 갖고 신경을 쓴다.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조차 제공 받기 어려운 가난한 제 삼 세계의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이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어른이든 청년이든 어린 아기이든 누구나 다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의 균형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우상 숭배와 육체의 탐욕을 벗어나서 여호와의 영광이 내 삶의 중심에 충만하게 채워지기를 계속하여 사모하여야만 한다. 

 

6-7절의 천지를 진동하며 모든 나라를 진동할 보배 그는 우리가 기다리는 재림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시다. 예수로 충만하고 복음으로 충만하고 언약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꾸준히 사모하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원한다. 

 

 

내가 이 곳에 평강(平康)을 주리라.

9절에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의 말씀이 여기에 나온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자, 그러면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점점 커질 나중 영광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더욱 구체적인 약속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평강’이다. 그렇지 않나. 평강이 얼마나 중요한가. 평강이 얼마나 소중한가. 평강이 얼마나 필요한가. 그렇지 않나. 아무리 대궐같이 넓은 집에 살고 아무리 값 비싼 자동차를 타면 뭘하나. 아무리 돈이 많고 아무리 재산이 많으면 뭘하나. 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그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내 마음에 평강이 없다면 왕이면 뭘하고 재벌의 총수이면 뭘하고 양쪽 어깨에 별을 네 개 씩 단 장군이면 뭘하고 박사 학위가 몇 개씩 되면 뭘하겠는가. 평강이 내 마음에 없다면 젊었으면 뭘하고 얼굴이 예쁘면 뭘하고 인물이 잘 났으면 뭘하고 인기가 하늘을 치솟은 들 뭘하겠는가.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이런 은혜와 기쁨과 감사와 보람과 즐거움과 소망이 우리 각 사람을 평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축복의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라는 찬양을 부르자.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11월 29일은 예수사랑교회 설립 제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추수감사 주일과 함께 교회의 탄생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예배를 드릴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예배당은 어떤 곳인가. 당신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떤 곳인가. 이곳에서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충만한 주의 영광과 더불어 풍성한 평강을 누리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우리 다 같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를 찬양하고 기도하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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