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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히9:11-15)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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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11-02 17:55 조회 3,964 댓글 0
 

오직 그리스도(히9:11-15)           2021. 10. 31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봄이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도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온다. 젊음도 가고 아름다움도 가고 인기와 명예와 권력과 권세도 간다. 그 좋던 기억력도 흐릿해지고 그 곧던 허리도 휘어 버린다. 


총과 칼과 그 많은 군대와 재물과 권력의 힘으로 이 땅에서 영원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따른다. 이 세상에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히로히토, 카다피,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이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가. 이사야 40장 8절에 보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인생이 영원히 사는 길과 인생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양이나 염소나 송아지를 제사하는데 있지 못했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잡아 제사하는 일은 첫 언약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첫 언약으로 다 이룩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새 언약을 제정하셔서 완성하셨다. 히브리서 8장 마지막 절인 13절에 보면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9장의 앞부분에서는 ‘첫 언약’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9장 1절의 ‘첫 언약’이란 내용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광야 생활 중의 시내산 언약으로 첫 언약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광야 생활의 중심에 ‘성막’을 건설하게 하셨다. 


첫 언약을 바탕으로 하는 번제와 속죄제로 다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새 언약의 중보자로 보냄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것이다.


매년 피 흘림을 통해서 대 제사장이 둘째 장막인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 행하던 속죄의 예식으로 온전히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이 죄 사함의 문제였다.


하나님은 이것을 개혁(改革)하시기 위해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 읽은 11절에 보면“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 제사장으로 오사”라고 하였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 제사장으로 오셔서 장래에 좋은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신 내용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바탕이다. 믿음의 전부이다. 


오늘은 우리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내 붙였던 “95개 조항의 종교 개혁을 위한 반박문”의 내용을 기화선으로 해서 불 붙기 시작한 종교 개혁 504주년 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다. 물론 그 훨씬 이전부터 그 당시 종교 개혁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기 저기에서 있어 왔다. 마틴 루터(Martin Ruther, 1483-1546)는 누구인가. 그는 그 당시 독일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에 속한 34살 된 젊은 신부였다. 그는 성직자요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언어학자요 후대에 라틴 말 성경을 최초로 독일말로 번역한 성경 번역가요 오늘날 개신교회를 탄생시킨 종교 개혁가의 삶을 살았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는 찬송가를 작사하고 작곡하기도 하였다. 오늘 마지막 찬송으로 부를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도 그가 46살 때에 만든 작품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쇠퇴(衰退)하게 마련이다. 16세기의 교회가 그러하였다. 기독교가 개혁되기 전의 ‘교회’란 하나였다. 물론 동방 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누어 연구할 수 있으나 <종교 개혁 5대 강령>은 이것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히브리서 9장 10절에 ‘개혁’이란 단어가 나온다. 개혁이란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창세기 1장의 하나님의 원 창조의 상태로의 회복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믿는 믿음 생활의 바탕은 화려한 성당 건물 중심이 아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황금으로 도금한 높은 첨탑과 원형 돔과, 화려한 의복으로 차려입은 교황 중심이 아니다. 

오직 우리의 신앙은 “성경 중심, 믿음 중심, 은혜 중심,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그 최종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리는 삶이어야 한다. 로마서 13장 36절의 말씀 중심이어야 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이 전부다. 이 말씀 그대로여야 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단과 사이비로 빠지게 되고 여기서 멀어지면 언제라도 개혁되어야만 한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 가운데 보면 영원한 것 세 가지에 대하여 교훈한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선물이다. 

 


영원한 속죄(贖罪).

속죄 즉 죄사함의 문제는 성경 전체에 깔려 있는 숙제요 질문이다. 죄의 문제의 시작은 에덴동산으로 부터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부터  인간에게 죄가 들어 왔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된 원인은 불순종이다. 그러므로 불순종이 죄의 시작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차근차근 읽어 보라. 그 모든 말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제사를 제정하셨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드리는 번제와 비둘기와 심지어는 곡물로 드리는 소제와 포도주로 드리는 전제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제사의 목적은 ‘죄 사함과 용서와 화목’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마다 드리는 유월절 희생 제사로도 다 해결 할 수 없었던 것이 속제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 죄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 단번 희생 제물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시다.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뿐이다. 


이 영원한 속죄의 은총을 깨닫고 나면 읽는 성경 말씀의 내용이 달리 보이고, 부르는 찬송의 가사가 다르게 전달된다. 

가령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라는 찬송의 가사를 보라. 


“1.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당하셨네


2.십자가를 지심은 무슨 죄가 있나

저 무지한 사람들 메시아 죽였네


3.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4.아름답다 예수여 나의 좋은 친구

예수 공로 아니면 영원 형벌받네

예수여 예수여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받으소서


이걸 깨닫고 나면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 바쳐 충성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 오후에 충남 공주시에 있는 공주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을 둘러 보았다. 부관장으로 통해서 두 시간 정도 자세히 역사 해설을 받았다. 공주제일교회는 스웨어러(W. C. Swearer) 선교사가 1898년 서울 이남 전담선교사로 임명받은 후 설립하였다. 미국 감리교회는 1902년 공주관찰부 앞에 있는 집을 구입하여 김동현 전도사를 파송해서 전도 활동을 하였다. 1903년 7월 1일, 미국감리회의 맥길(William B. McGill) 선교사가 공주에 도착하여 이용주 전도사와 함께 공주읍내 하리동(현 앵산공원 서쪽 부근)에 초가 두 채를 구입하여 공주제일교회의 모태가 되게 하였다.


공주제일교회 초가 예배당 건물은 1930년에 지어졌다. 1941년 전시에 적산으로 분류되어 교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한국전쟁 때 공산당이 점령하고 무기를 쌓아 두었다. 이를 알게 된 UN군 폭격으로 파괴되어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벽체만 남았었다. 전쟁 휴전이 지난 몇 해 후 1956년에 재건됐다. 이 건물이 세워지기 전에는 협산자 교회 건물을 이용하였다. 미국의 어느 교회 신도가 무명으로 8,000원을 헌금하고 비가 오는데 옆구리에 우산을 끼고 사라졌다 해서 협산자(脇傘者) 교회이다. 이처럼 그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영명학교를 둘러 보고 로버트 샤프(Robert Arthur Sharp, 1872-1906) 선교사와 그의 아내 엘리스 샤프(Alice Hammond Sharp, 1871 ~ 1972) 선교사의 선교 흔적을 둘러 보았다. 엘리스 샤프는 한국에서 나중에 온 선교사 남편 로버트 샤프와 결혼 3년 만에 남편을 장티프스로 잃었다. 캐나다에서 나고 미국에서 자라 난 엘리스 샤프 선교사는 그 후 자녀 없이 홀로 38년이 넘도록 이 땅에 선교하였다. 유관순을 양녀 삼았다. 공주 영명 여학교에서 이년 가르친 후에 이화 학당으로 유학 시켰다. 그 유관순이 우리가 아는 유관순이다. 인물은 낳는 것이 아니라 길러내는 것이다. 


엄마 아빠들이 정신 차리고 어린 아들 딸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는 은혜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영원하신 대속의 은혜를 충만하게 덧입고 찬송하고 경배하며 충성하고 헌신하는 주의 백성들이 모두 다 되기를 축원한다. 



영원하신 성령(聖靈).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오직 성령만이 영원한 것이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한다. 그러나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스가랴 4장 6절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says the LORD Almighty.)


그렇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하신 성령의 하신 일을 무어라고 교훈하고 있나. 히브리서 9장 14절을 보라.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에스겔 37장에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권능으로 임재하셨다. 하나님의 영으로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셨다. 거기에는 마른 빠가 가득하였다. 하나님은 물으셨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주 여호와의 주께서 아시나이다.”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였다.


그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었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혔지만 그 속에 생기는 없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인자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갔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다.


광야 200여만 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배가 부르도록 메추라기를 먹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철새인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진영에 떨어지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한 다. 밤낮 기도 생활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로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일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엘리야가 조롱했던 죽은 신인 우상 바알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영원히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충만함을 항상 사모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외쳐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지속적으로 사모하는 은혜가 넘치길 축원한다. 




영원한 기업(企業)의 약속(約束).

15절에서 말씀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려고 즉 속량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다. 맞다. 예수는 영원하신 기업이시다. 이 땅에 영원한 기업이란 없다. 구한말 이후 우리나라에 생긴 기업 중에 가장 오래 된 기업은 1896년에 시작된 <두산>과 1897년 활명수 개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동화제약>이라고 한다. 그 외의 기업들은 평균 수명이 30년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새로 문을 열면 통닭집, 그만두려고 문 닫으면 통닭집이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기업이란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기업의 보증이며 약속이시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면 크고 놀라운 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28:1-6)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예수를 제대로 잘 믿어서 존귀하게 남을 섬기며 예수처럼 세상을 섬기며 이웃을 돌보며 사는 것이 복되게 사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기업을 약속으로 누리는 천국 백성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부터 다르다. 


435장 찬송 <나의 영원하신 기업>의 1절 가사를 보라.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시네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의 갈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이런 은혜가 우리 각 사람과 각 가정에 골고루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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