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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을 지키라(출23:14-17, 신1616-17) 202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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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7-27 22:05 조회 4,993 댓글 0
 

                  맥추절을 지키라(출23:14-17, 신1616-17)      2021. 6. 27



이튼 칼리지(Eton College, 1440-)는 영국의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알려져 있다. 영국 버크셔 주 이튼에 위치하고 있다. 

이 학교는 600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지금까지 총 19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했다. 영국 왕실의 황태자인 챨스와 그의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도 이튼 칼리지 출신이다. <동물 농장>의 작가인 조지 오웰, 웰링턴 장군도 이튼 칼리지 출신이다. 


이 학교는 자신만 위하는 이기적인 엘리트는 원하지 않는다. 교과목 중 제일 중요한 과목은 체육이다. 하루에 꼭 한 번 함께 축구를 해야 한다. 공휴일이면 두 번씩 축구 경기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한다. 그 어느 과목의 공부보다 체육을 통해 서로 더불어 함께 하는 생활 태도를 강조한다. 한겨울이면 진흙탕 속에서 레슬링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한다. 어느 해 졸업식 송별사에서 어떤 교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학교는 자신이 출세 하거나 자신만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원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을 위하고 사회나 나라가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선두에 설 줄 아는 그런 사람을 원합니다.”


영국 BBC방송은 “이튼 칼리지 학생들은 입학할 때부터 자신들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이라는 구별된 의식을 갖고 있다.” 라고 소개한 바 있다. 실제 이 학교 학생들은 1, 2차 세계대전에 자원 입대하여 무려 2,000여명이나 전사하였다. 이튼 칼리지를 시작한 헨리 6세의 동상 앞에 그들의 기념비가 있는데 어느 해에는 전교생의 70%가 전쟁에 참전해서 돌아 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공부를 먼저 강조하지 않는데도 이 학교는 졸업생이 거의 모두 대학에 진학한다. 그 중 삼분의 일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진학한다. 공부를 강조하는 대신에 자긍심과 국가관과 사명감을 강조한다. 그것이 학생들에게 엄청난 학습유발 효과를 가져다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튼 칼리지는 다음 교훈이 전통으로 내려온다.


1. 남의 약점을 이용하지 마라.

2. 비굴한 사람이 되지 마라.

3. 약자를 깔보지 마라.

4.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라.

5. 잘 난 척하지 마라.

6. 공적인 일에는 용기 있게 나서라. 


이튼 칼리지 학생들이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세 가지는,

 

“약자를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이다. 


무엇이 이튼 칼리지 출신들을 남들과 다르게 만드는가 반복하여 질문하게 된다. 오늘날도 1,300여 명의 10대 소년들이 이튼 칼리지의 재학생으로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절기 중심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을 하며 핍박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셨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바로 왕에게 그렇게 요구하도록 명령하셨다. 광야에 나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는 민족을 삼으시려고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출애굽기 3장 18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이제는 노예 생활에서 풀어 놓아 달라고 요구하라고 명령하셨다. 출애굽기 5장 8절과 17절에도 보면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한다는 소문을 듣고 바로가 크게 노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애굽기 10장에 보면 메꾸기 재앙이 나온다. 그 때에 바로 왕이 모세와 아론에게 묻는다.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 누구냐”그 때에 모세가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출10:9)라고 대답하였다.


맞다. 출애굽의 목적은 제사와 절기 지키기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제사하는 민족으로 삼으시려고 출애굽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성막 건설을 명령하셨다. 성막은 하나님이 그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시려는 장소로 구별하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내가 그 곳에서 너희를 만나리라”하고 약속해 주셨다. 그래서 성막을 회막이라고도 한다. 


세월이 가면서 성막이 성전으로 바뀌었다. 오늘 날의 예배당은 성전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예배당을 광야의 성막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집으로 구별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예배하고, 이곳에서 기도하고, 이곳에서 찬송하고, 이곳에서 말씀을 공부하고, 이 곳에서 말씀의 은혜를 나눈다. 이곳에서 성도들 간에 사귐을 갖는다. 이 곳에서 세례를 행하고, 이곳에서 성찬을 행한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절기를 맞이한다. 성경이 말하는 절기는 무교절인 유월절과 칠칠절인 맥추절과 초막절 혹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 추수감사절이다. 이 세 절기를 반드시 지키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출애굽기 23장 17절에 보면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라고 명하셨다. ‘보이라’는 말씀은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이시다. ‘모든 남자’라는 말씀은 대표성을 말한다. 가족들이 모두 매년 세 번씩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명령하신 것이다. 


자 그러면 절기 신앙의 교훈이 무엇인가. 칠월 첫 주일인 다음 주일은 맥추절이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말씀에 보면 무엇을 교훈하고 있나. 



반드시 절기를 지키라.

무교절인 유월절과 칠칠절인 맥추절과 수장절인 추수감사절이 하나님이 지키라고 명령하신 세 절기이다. 이 절기를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다. 


중국이나 대만이나 한국과 같은 동아시아의 나라들은 구정과 추석을 지킨다. 중국의 경우는 구정인 춘절을 맞이하면 며칠씩이 걸려서라도 기차를 타고 고향에 찾아간다. 가고 오는 길만도 여러 날이 걸린다. 기차 안에서 먹고 잔다. 그래도 고향을 찾고 구정을 기다리고 추석을 기다린다. 이것이 절기 지키기라는 것이다.


지난 해 코로나19의 영향은 추석에도 고향을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올해 초 구정을 맞았어도 고향을 찾는 일은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사회 분위기였다. 노인 요양원에 부모나 가정의 어르신들이 장기 요양 생활을 하시는 경우에는 면회 조차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 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지내고 있다. 인재라고 하지만 지구와 인류가 맞은 대 재앙 앞에서는 구정이나 추석 같은 절기를 지키는 일도 불가능해 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고 계신가. 절기를 매년 반드시 지키라는 것이다. 왜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을까. 때를 따라서 절기를 지키므로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보다 영적 생활에 매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이시다. 백성들은 절기를 지키므로 과거에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았고, 현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 임을 깨닫고 시인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실제로 이런 절기들은 안식년 규례와 더불어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 포로 시대를 겪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착하여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거치는 동안 점점 절기 신앙이 해이해져 갔다. 결국 솔로몬 시대를 끝으로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졌다. 그 이후에도 절기 신앙은 쉽게 회복되지 못하였다. 


역대하 30장 5절에 보면 남유다 13대 임금이었던 히스기야 왕이 전국에 공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브엘세바에서 단 까지 전국민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하였다. 왕은 보발꾼을 전국에 보내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보발꾼이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 각 성읍을 두루 다녀서 스블론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 곳 사람들이 보발꾼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역대하 30장 10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이들이 단 한 사람도 없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반면에 “스스로 겸손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월절을 지키는 이들이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자 왕과 방백들에 의해서 전해진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히스기야 왕의 대를 이은 아들 므낫세 왕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가지 못하였다. 이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나. 신앙 생활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섬겨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신앙이 우리의 아들딸, 손자 손녀 대에 계승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그래서 우리는 신앙 교육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코로나19 여건에서 12차 헐몬산 기도회를 맞게 된다. 새벽마다 깨어 일어나 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기도 운동의 회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열왕기하 23장 22절에 보면 그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고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다음 절인 열왕기하 23장 23절에 보면 남유다의 제 16대 왕이었던 요시야 임금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는 역사적인 내용을 접하게 된다. 요시야 임금은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삽십 일년을 왕으로 지냈다. 그런 중에 왕이 된 지 열여덟 해이니까 왕의 나이 스물여섯 살 때에 역사적인 유월절 지키기 회복 운동을 국가적으로 이룩하였다.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일인가. 


느헤미야 8장에도 보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성곽 건설의 대업을 완성한 느헤미야는 수문 앞 광장에 학사 에스라를 앞장세워서 말씀 회복 운동을 시작하였다. 절기 신앙도 회복하였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이처럼 절기 신앙을 회복하고 말씀 운동과 기도 운동을 회복해 가는 것이다. 올해도 절기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겨가는 은총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절기나 월삭 예배나 안식일 예배인 오늘 날의 주일 예배를 드리는 생활로 인해서 누군가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였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형식에 매여서 예배와 절기의 근본 신앙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의 말씀이 아닌가. 히브리서 8장이나 10장 말씀을 묵상해 보면 이 모든 절기 신앙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누릴 영원한 장래의 영광에 비하면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군대에 간 아들이 보고 싶으면 핸드폰에 저장된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열어 볼 수 있다. 요즘은 화상 통화가 허용되는 군대 생활이니까 영상 통화하면 된다. 그런데 아들이 휴가를 와서 곁에 있는데도 아들이 보고 싶다고 핸드폰에 담겨 있는 아들 사진을 찾아 보고 있다면 치매 증상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절기 즉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인 초막절을 모두 합한 절기의 완성이시며 “더 아름 다운 직분을 얻으시고,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시다”(히8:6) 히브리서 7장 22절에는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도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절기를 지키며 주님과 더불어 영생할 장래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매년 첫 열매에 대하여 감사하라.

포도나무 비유인 요한복음 15장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그런 내용을 묵상하고는 하였다. 사실 포도나무 뿐만 아니라 모든 과실 나무의 열매가 그 해의 햇 가지에서 열리는 것이다. 묵은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경우란 없다. 뿌리에서 줄기를 타고 올라온 생명력이 해마다 햇순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는 쌀과 보리와 밀과 콩과 같은 곡식도 마찬가지이다. 농부는 해마다 다음해에 심을 종자를 구별한다. 씨를 구별한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로 보관한 씨를 먹어 치우는 어리석은 농부는 없다. 왜냐하면 농부는 그 다음해 봄이 찾아 오면 따로 구별해 두었던 종자인 씨앗을 심어 가꾸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장사하는 이들은 매일 첫 손님을 맞는다. 식당하는 분들도 매일 첫 손님을 맞는다. 그 매일이란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하루인가. 내가 병들면 장사하러 가지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갈 수도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매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대단한 시간이며 은혜로운 시간이며 축복의 시간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나. 올해 맥추절을 지킨다고 해서 내년에도 맥추절을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 우리는 매 순간을 살아서 하루를 살고, 하루 하루를 살아서 한 해를 산다. 그러므로 절기를 지키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신앙이다. 


부자라고 천년 사나. 권력자라고 만년 사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요즘 주중에 교회 입구 화분이나 옥상 정원에 물주기를 한다. 새벽 기도 마치고 물을 줄 때가 있다. 요즘은 하루만 제대로 물 주기를 하지 않으면 땡볕에 식물이 타들어 간다. 화분에 심겨진 화초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맞다. 우리는 날마다 해와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 가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쌀과 보리와 밀을 농사하는 농부는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매달 받는 월급, 매일 벌어들이는 사업과 상업의 현장에서의 수입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것이다. IMF를 맞던 때처럼 나라 경제가 흔들리면 모든 분야의 경제 활동이 모두 다 불안해 지고 만다. 


그러므로 해마다 유월절을 지키고 해마다 맥추절과 초막절인 수장절을 지키는 것이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신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9절을 보라.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와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였다. 이것이 십일조 신앙이고 이것이 절기를 지키는 신앙이고 이것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다. 


그렇지 않나. 내가 내 삶의 주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그 모든 활동이 멈추고 만다. 교회 가까이에도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싣고 힘겹게 지내는 30대 젊은이를 만나게 된다. 아마 20대 후반쯤인지 모른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생명을 유지한다.


살아 있다는 것, 이만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이처럼 공부도 하고 사회 생활도 하고 경제 활동도 하고 가정 살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해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며 날마다 해마다 절기를 맞을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하는 감사의 조건, 감사의 이유이다. 


하박국 3장의 말씀처럼 외양간에 송아지가 저절로 번성하는 것이 아니다. 밭에 먹을거리가 저절로 자라나서 풍년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에 풍성한 열매가 저절로 맺히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로 말미암는 즐거움과 여호와로 말미암는 구원의 기쁨이 감사로 이어지는 것이 절기 신앙인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3:19)


올해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맥추절 맞이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받은 복을 따라 힘대로 드리라.

절기 헌금을 드릴 때에 마지 못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나마도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드려야 한다. 신명기 16장 17절에 보면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라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다. 출애굽기 23장 15절 마지막 부분에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라”고 하셨다. 다시 출애굽기 23장 19절을 보자.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라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나 자신도 절기를 제대로 잘 지킬 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에게도 절기를 가르쳐야 한다. 절기를 지키게 하여야 한다. 자녀들이 유월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해 주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맥추절이 무엇이냐 초막절이 무엇이냐 왜 좋은 집 두고 초막에서 잠을 자야 하느냐 수장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설명해 주어야 한다. 자자 손손 이 교훈을 가르치고 지켜 나가게 하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따르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집이 많다. 점점 늘어난ㄷ. 길 고양이를 챙기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교회 나무 울타리 한 귀퉁이에도 길고양이 집을 마련하고 저녁마다 먹을 사료를 갖다 주는 모녀가 있다. 정성이 대단하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개는 평소에 잘못해 주다가도 한번 잘해 주면 꼬리를 흔든다. 한 번만 맛있는 먹을거리를 주면 반가워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고양이는 늘 잘해 주다가 한 번만 맘에 들지 않으면 주인이라도 할퀴고 물려고 달려든다. 차이가 무엇인가. 좋은 것을 먼저 기억하는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주인을 좋아하고 주인을 따른다. 그러나 나쁜 기억을 먼저 하는 습관을 가진 고양이는 맘에 들지 않으면 주인이라도 할퀴고 물려고 달려든다.


나는 어떤가.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일 만가지 공급 앞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절기를 지키는 자신과 후손들이 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올해도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지키는 맥추절이 아니라 받은 복을 따라 힘대로 준비하여 드리는 풍성한 맥추절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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