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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동행하시는 예수님(마28:16-20, 눅24:50-53) 20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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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2-17 21:38 조회 6,233 댓글 0
 
               동행하시는 예수님(마28:16-20, 눅24:50-53)     2021. 1. 31


오늘 본문은 예수의 승천 장면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 사십일 동안 이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나님 곁으로 올라 가셨다.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리 스트로벨의 책 중에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라는 책도 있다. 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출신의 언론인이다. 시카고 트리뷴 신문사의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 기독교에 대하여 대단히 냉소적이었다. 교회를 적대적으로 대하던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그가 달라졌다. 복음을 받아 들이고 목사가 되었다. 시카고 윌로우 크릭 교회의 사역자가 되었다. 그가 쓴 책 중의 하나이다. 그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러 명의 각 분야의 학자들을 동원해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입증한다.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듯이 예수의 승천 또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우리는 주일 예배 시간마다 사도 신경을 통해서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예수의 생애는 인류 역사 중의 한 부분이다. 뿐 만 아니라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다녀간 역사는 기원전(Before Christ)과 기원후(Ano Domini)를 나누는 역사의 분수령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성탄일이다.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기념하는 절기도 몇몇 있다. 종려 주일, 세족 목요일, 성 금요일, 부활절이 그것이다. 예수께서는 부활 후에 40일을 이 땅에 계셨다. 40일째 되는 날 승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승천 기념일은 그 해의 부활절 이후 40일째 되는 날이다. 승천 후 열흘째 되는 날이 성령 강림절이다.

이처럼 예수는 역사 가운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시다가 다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셨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죽음, 부활, 승천까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1장은 예수의 승천 장면부터 시작되는 역사의 기록물이다. 
오늘 함께 찾아 읽지 않았지만 마가복음 마지막 부분인 16장 19-20절에도 보면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로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하였다.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승천을 지켜본 11제자와 예수의 승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이 승천하신 예수께 경배하며 큰 기쁨을 갖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령의 강림을 기다렸다. 사도행전 1장은 그 무리의 수가 약 120여명이었다고 증언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1km 정도 거리의 낮으막한 언덕에 <예수승천기념교회>가 있다. 그 작은 예배당 내부에는 순례객들이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나는 평평한 바위가 있다. 그곳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라고 전해져 온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을 다른 복음서보다 훨씬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다.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언제까지나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마가복음의 끝인 16장 20절에도 보면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는 언제나 그를 믿는 자들과 동행하신다. 함께 하신다. 성탄절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수 탄생에 대하여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도 바로 이것이다. ‘임마누엘’(마1:23)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재를 실감 나도록 체험하며 살아가는 일상이어야 한다. 

음지 식물이나 음지 벌레나 음지 동물들은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깜깜한 밤에만 밖에 나와서 활동하는 동물들도 있다. 성도는 빛의 자녀들이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14절의 산상 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어둠이 되면 안 된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금융 기업가 한 사람을 사형시켰다. 중국 공산당이 정부를 수립한 이래 최악의 부패 스캔들이었다고 한다. 31개 계열사를 거느린 화룽자산그룹의 라이샤오민 전 회장이 엊그제인 1월 29일에 사형 집행되었다. 그는 우리나라로 비교하면 산업은행이나 국민연금관리공단 격의 국영 금융기관의 최고 총수였다. 사형 선고를 받은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9일 그에 대한 형이 집행됐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10여 년 동안 뇌물만도 17억8800만 위안(약 3,000억원)을 받아 챙겼다. 100여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과 홍콩 등의 유명 배우를 비롯하여 100여명의 정부와 놀아났다. 집안에 숨겨 두었던 중국 위안화와 달러 등이 무려 444억 4000만원이 넘었다. 그 돈의 무게만도 3톤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한때 중국 정부가 알아주는 금융계의 요직은 역임한 인물이었다. 그가 2009년 이후 화륭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8년 동안에 회사의 순자산이 2조 6000억원에서 약 30조 55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그는 수뢰죄와 횡령죄, 중혼죄가 인정되어 사형 판결을 내린지 채 한달 만에 사형 집행을 당하였다. 그는 돈, 명예, 권력, 향략의 늪에서 지내다가 사형대에 오르고 말았다. 어둠을 가까이 하면 그 나중은 멸망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동행하는 생활을 말한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생활이다. 어두운 생각, 어두운 말, 어두운 출입을 떠나서 복음의 밝은 빛 가운데서 예수와 함께 하는 생활이 예수 믿는 자의 일상이어야 한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와 같이 길 가는 생활”이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 곁으로 승천하시기 전에도 마지막 남겨 주신 말씀이 세상 끝날까지 늘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어디든지 함께하시는 동행.
마태복음의 내용은 ‘선교대명령’ 혹은 ‘선교대위임령’이라고 한다. 땅끝까지 열방의 각 족속에게 찾아가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부활 복음을 가르쳐서 예수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시다.

우리는 사람 제자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내 제자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각 사람은 누구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서 예수 제자로 삼아야 한다. 이는 우리 각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든 친구이든 친척이든 직장 선후배이든 이웃에 사는 그 누구이든 우리는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서 예수 믿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함께 교회에 다녀 보겠느냐”는 정도의 전도 초청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작이 오늘 날 나를 나되게 한 것이다. 

올해는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 탄생 200주년 되는 해라고 한다. 가까이 있는 연신내 성당 마당에도 대형 현수막을 내어 걸었다. 충남 당진에 가면 솔뫼라는 곳에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 성당과 기념 공원과 기념관이 있다. 그는 증조부와 아버지가 모두 순교자이다. 그의 가정에는 김대건 신부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순교자이다. 그는 선교사의 안내를 따라 15살 때에 마카오에 유학해서 중등 과정과 철학과 신학을 마치고 25살 때에 부제 서품을 받았다. 1845년에 귀국해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 당시 조선의 법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과 천주교 포교를 한 죄로 새남터에서 순교 당하였다. 그의 포교 기간은 채 1년도 못 되었다. 그런 중에서도 그는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하였다. 영국에서 출간된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色圖化)해서 정부에 제출하였다. 김대건은 한국인 최초의 신부요, 최초의 신부 출신 순교자이다. 

순교를 거론하는 것은 오늘 날 우리의 신앙 환경은 순교자의 시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요즘과 같은 비대면의 환경에서 자기 신앙을 제대로 지켜가기가 난감할 것이다. 

맞다. 신앙생활이란 예수와 동행하는 생활이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나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생활이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것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내 영혼이 은총입어”(438장) 라는 찬송가의 3절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는 주의 명령은 어디를 가든지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렇지 않나.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셨다. 아브람의 나이 75세에 처음 겪는 일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1-3) 아브람은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출발이다. 세월 속에 우여곡절을 겪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듬고 다듬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삼으셨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 장에서는 아브라함의 그런 믿음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8-10) 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오며 이런저런 경험을 하며 살아온다. 직업도 다르고 생업의 분야도 다르고 전공도 다르다. 살아가는 여건도 다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연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과연 주님께서 나의 모든 출입과 범사에 동행해 주시고 계신가”라는 질문 앞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말하는 것은 저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려간 요셉을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는 이유는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 내용들로 그의 생애가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모세, 여호수아, 갈렙, 기드온, 드보라,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일일이 다 거론할 시간이 없다. 저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동행해 주셨고 저들 자신이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 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밤이나 낮이나 늘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출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게 하시는 동행.
예수는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오신 구주가 아니시다. 예수는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게 하시는 일을 위해서 지난 2000년 동안 세계 열방에 선교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주의 일에 매진하게 하셨다. 그 거룩한 선교의 사역은 오늘 날도 끊임 없이 계속되고 있다. 

메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 1832-1909) 선교사는 1885년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 여 선교사이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메리 벤(Mary Benton)으로 벤튼 가문은 뉴잉글랜드의 전통 있는 감리교 가문이었다. 그의 아버지(E. Benton)와 남동생과 조카도 미감리회 뉴잉글랜드연회의 목사였다. 감리교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난 메리 스크랜턴은 23살에 제조업자인 윌리엄 스크랜턴(W.T. Scranton)과 결혼하였다. 다음 해에 외아들인 윌리엄 벤튼 스크랜턴(W.B. Scranton)을 낳았다. 40세에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그 후 미감리회 해외여선교회 연회에서 근무하던 중에 한국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1884년 10월 그 당시 28살이 된 아들 내외와 두 살 된 손녀와 함께 한국 선교길에 올랐다. 헨리 아펜젤러부부와 함께 1885년 2월 3일 같은 배를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24일만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였다. 한국의 국내 사정으로 인해 잠시 일본에 머문 후 같은 해 6월 20일에 조선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그 당시의 조선 말 여성들의 현실을 보고 여성 교육의 시급함을 절감하였다. 
한국 여성의 전통적 미덕과 품성 위에 선진문화를 발전시키며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여성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우고자 기도하며 추진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지 4개월 만인 1885년 10월에 정동에 따로 부지를 마련하고 한국 최초의 여성 학교를 준비하였다. 그것이 오늘날 이화 여자고등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시작이다. 명성황후도 큰 관심을 보이고 고종이 하사한 학교 이름 ‘이화(梨花)’는 “배꽃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열매를 맺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는 이화 학당 말고도 처처에 학교가 세워지는데 앞장섰다. 그에 의해 시작된 협성여자 신학교는 오늘 날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뿌리가 되었다. 

16살 때에 아버지를 잃은 아들 윌리엄 벤턴 스크랜턴(William Benton Scranton, 1856-1922)은 의사가 되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뉴욕대 의대에서 공부한 후 의사가 되었다. 목사 안수도 받았다. 열병으로 고생하던 그는 곁에서 간호하던 어머니와 함께 조선에 와서 선교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의사인 알렌(H. N. Allen) 선교사를 만났다. 고종을 만나고 광혜원에서 사역하였다. 정동에 진료소를 열고 시병원을 설립하였다. 동대문에서 이화대학 병원의 전신인 보구병원 설립에도 크게 기여 하였다. 끊임이 없이 고아들을 돌보았다. 1895년 콜레라가 창궐할 때에 에이비슨 선교사와 손 잡고 엄청난 환자들을 돌 보았다. 상동교회, 아현 교회, 동대문 교회를 설립하였다. 성경 번역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서울, 평안 북도, 충청 남도, 중국 대련 지역에까지 의료 선교와 교회 설립에 헌신하였다.  

이런 일화를 거론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이다. 오늘 날 우리의 시대에 시작하게 하신 예수사랑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게 하시는 선교 사역의 장이라면 해를 더하면 더할수록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그렇게 역사해 가실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나를 향하신 주의 부르심과 사명을 얼마나 깨닫고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가. 교회학교 교사인가. 학생이 유치부의 어린이이든 영아부의 그 누구이든, 아니면 청소년부의 누구이든 한 명 한명에게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예수 믿어 죄 사함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명하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선교 명령 앞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다 신학교 가자는 말이 아니다. 다 선교사 되자는 말도 아니다. 우리 각 사람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나 자신을 비롯하여 내 주변의 그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복음이 전파되어 가는 일에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복음의 거침돌이 아니라 복음의 디딤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평생 뭘 먹고 뭘 마시고 뭘 입을까만 궁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자. 복음 앞에 거룩한 목마름을 갖고 선교에 빚진 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 나가자. 성도다운 성도의 믿음과 전통을 계승해 나가자. 


세례를 베풀고 주의 분부를 가르쳐 지키게 하시는 동행.
저의 두 아들은 제가 세례 하였다. 목사 안수 받기를 기다렸다가 세례 1호가 큰 아들, 세례 2호가 작은 아들이다. 그 후로 오늘까지 세례를 계속해 오고 있다. 올해도 누군가를 통해서 세례교인이 세워지길 소망한다. 물 세례는 상징적인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예수도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께서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맞다. 오늘 날 우리가 물 세례에 만족하지 말고 불 세례와 성령 세례를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 복음의 가치를 깨달아 알고 믿으며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여야만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가르쳐 지키도록 증거하여야만 할 것이다. “일대일 성경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거기에 보면,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예수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예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십시오.

구원의 확신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말씀-성경
기도
교제
전도
성령 충만한 삶
시험을 이기는 삶
순종하는 삶
사역하는 삶

을 주제로 수백 구절의 성경 말씀을 신구약에서 파노라마처럼 찾아 묵상하게 하며 도전하고 있다. 

내 주변의 가족 어떻게 할 것인가.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 내 아들딸, 내 형제 자매, 내 직장 선후배 동료들의 영혼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

올 한해 그리고 평생토록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는 거룩한 동행의 은총이 영영히 계속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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