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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여호와와 연합하면(사65:1, 6-8) 2020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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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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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8-17 23:45 조회 8,405 댓글 0
 
                    여호와와 연합하면(사65:1, 6-8)       2020. 8. 16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는 명령은 가까이 임하여 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는 백성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는 말씀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례 요한이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시작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는 말씀이었다. 그처럼 입을 열자마자 회개를 촉구한 이유는 그것이 천국 백성이 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사십일 금식을 마치신 후에 복음 전파를 시작하신 첫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는 말씀이셨다. 말라기 4장 5-6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마음을 돌이키라”고 재촉하신 말씀으로 구약 성경이 마무리 된다. 

시편 1절의 끝이 복이 아니라 화와 멸망에 대한 경고인 것처럼 구약 성경의 맨 끝인 말라기 4장 6절은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하노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막 말씀으로 담고 있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시내의 도로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제한하는 내용의 교통 표식이 대개이다. 속도를 제한한다. 급커브 길을 조심하라 한다. 동절기에는 바닥의 결빙을 조심하라 한다. 산속을 달리다 보면 갑자기 출몰할지 모르는 산 짐승을 주위하라고 한다. 학교 앞에서는 속도를 시속 30km 이하로 절대 재한한다. 이렇게 하라는 것보다는 어쩌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제한 표식이 훨씬 많다. 왜 그런가. 그래야 안전 운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는 강조는 하도 불의와 패역한 일이 넘쳐 나니까 안타깝게 촉구하신 말씀이시다. 읽지 않은 2-5절에 보면 안식일을 제대로 철저히 잘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왜 안식일이 중요한가. 오늘 날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모여 예배한다. 주일에 병원에 누워 있어 보면 건강한 모습으로 주일에 교회에 와서 가족과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이 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나라에 전쟁이 나면 안식일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온 마을과 마을 안의 예배당이 물바다가 되면 어떻게 평안한 마음으로 주일날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68년 역사를 가진 충주 가흥교회는 이번 폭우로 토사가 덮쳤다. 에배당 지반이 내려 앉았다.  순식간에 예배 처소를 잃고 말았다. 

이사야서 56장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주권을 빼앗기고 예루살렘에 돌아 갈 수 없는 참담한 날이 되었을 때에 ‘안식일’은 얼마나 소중한 날일까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여호와와 연합하면’이라고 정했다. 3절에 ‘여호와와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이라는 표현이 있다. 6절에는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 연합한다는 ‘라와’라는 뜻은 레위지파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준비하여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법궤를 메게 하고 여호와의 성막에 서서 하나님을 섬기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는 일을 언제나 계속하게 하셨다.(신10:8) 이것이 레위인이 사명이듯이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그런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가 레위기를 안다. 얼마나 제사 준비가 복잡하고 제사 진행에 정성이 필요한가. 떡상의 떡, 등잔의 불, 바다에 물을 채우고, 번제단의 재를 치우고, 양과 송아지를 잡아 번제하고 분문(糞門) 밖으로 배설물을 내어다 버려야 한다. 그런 제사의 태로를 말씀하는 것이 ‘연합’이란 것이다.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의 제사이며 예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말씀하신 예배의 태도이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고 하였다. 

자, 그려면 여호와와 연합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 어떤 자세, 어떤 믿음의 태도를 말씀하는 것일까. 6절에 보니까

하나님을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여호와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자

를 말씀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셔서 종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므로 성취하게 될 구속 사역을 말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통하여 구원 받은 성도들이 서로 지체를 이룬 교회가 하나님의 종의 사명을 꾸준히 감당하여야 할 것을 의미한다. 

자, 그러면 ‘여호와와 연합하면’ 어떤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시나.


내가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리라.
7절에서 말씀하는 ‘나의 성산’이란 물론 예루살렘을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이 땅의 모든 예배의 처소를 일컫는 말씀이다. 그곳이 대리석으로 지은 화려한 예배당이든 아니면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의 카타콤이든 그 어디나 다 한 결같이 여호와의 성산이 되는 것이다. 벤살렘교회 건축 후에 소방 점검이 늦어져서 예배당 사용을 못하고 교회 마당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서 주일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이사야 2장 2절에 보면 말일이 되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높고 낮은 산 위에 굳고 뛰어 나게 설 것이라고 하였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예배당이 지어진 후에 여러 가정이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 간혹 교우들 중에 “목사님 교회가 너무 멀어요.”라고 말씀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교회는 그 어디에 위치해 있든지 멀 수밖에 없다. 내게 가까우면 저이에게서 멀고 저이에 가까우면 나에게서 멀 수 밖에 없다. 방법은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내 스스로 예배당 중심의 삶을 선택하는 길 밖에는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간 후에야 깨달아 알게 되었다. 안식일을 맞아 하나님께 예배드린 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절절이 깨닫게 되었다. 늘 이야기 하고는 하지만 나는 신학교 졸업하고 소위 임관 한 후에 최전방의 철책선을 지키는 GOP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 9개월 동안 주일을 맞아도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주일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햇빛이 들지 않는 벙커 내무반에서 예닐곱명이 둘러앉아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매주일 이렇게 예배당에 와서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나의 여건, 나의 믿음, 나의 자세, 나의 신앙 태도가 나의 선택인 것 같지만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 주신 은혜이다. 생각해 보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주일 날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리게 되었는가를.

예레미야 3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은 요시야 임금의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배역한 이스라엘이 행한 바를 보았느냐 그가 모든 높은 산에 오르며 모든 푸른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서 행음하였도다” 그 뒤이 이어지는 말씀을 읽다보면 입으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겠다고 하고는 “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고 경고하신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은 그 후에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고 촉구하셨다. 그 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보내셔서 지식과 명철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양육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예레미야 3장 17절에 보면 “그 때에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백성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예언해 주셨다. 

여호와의 성산으로 인도함 받는 것이 복이다. 이렇게 주일날마다 예배당에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크나큰 복이다. 여호와의 성산으로 인도함을 받고 예배당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가 복된 자이다. 오늘 읽은 이사야 56장 2절 끝에 보면 “이와 같이 굳게 잡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고 하셨다. 여기 굳게 잡는 다는 것이 ‘여호와께 연합하는 것’이며 주의 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런 은혜, 이런 복이 자자 손손 계속되길 축원한다.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기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사야 57장 21절에 보면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와 희생을 하나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으신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나. 누가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기도할 수 있나. 이사야 56장 7절 끝에 보면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맞다. 하나님의 집은 천하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성막,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하나님의 집이 결코 아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집은 천하의 만백성이 구원 받아야 하는 집이다. 열왕기상 8장 41절부터 보면 솔로몬은 그런 기도를 드렸다.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게 부르짖는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왕상8: 41-43)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이방 백성들이라도 하나님의 성산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집에서 기도하게 하시며 저들로 하여금 기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요즘, 오늘, 지금 아무 기쁨이 없이 영혼이 떠난 자의 표정으로 이곳에 와서 예배하는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의 소원과 기도와 염려와 걱정과 근심하는 바를 헤아려 주시는 아버지이시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고 하셨다. 이사야 61장 3절에 보면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시고”라고 약속하셨다.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1945년의 국민 개인 소득은 45달러였다. 문맹율이 78%였다. 열 명 중에 여덟 명은 자기 이름도 못 썼다. 오늘 날은 3만 불 시대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내 집 없이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하튼 우리나라는 30-50 클럽에 속하는 경제 대국이다. 30-50클럽이란 인구 5000만 명 이상이고 국민 소득 3만 불 이상인 나라들을 말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이탈리아 그리고 대한민국이 일곱 번째 나라이다. 75년 전 해방 당시 45불 국민 소득이던 가난뱅이 나라가 세계 경제 대국이 되었다. 삼성은 베트남 공장이 세워진지 12년 만에 핸드폰을 7억 개 이상 생산하였다. 

여전히 어려운 이웃들도 많지만 가난한 나라들을 다녀 보면 우리나라처럼 잘 사는 나라가 없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누리는 참 기쁨을 회복하여야 한다. 

부자라고 저절로 기쁜 것 아니다. 권력자라고 언제나 기쁜 것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최고 권력자들이 극단적인 최후를 맞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왜 그럴까. 권력, 명예, 출세, 인기, 지위, 부, 풍요 그런 것이 기쁨의 대답이 아니다. 미국은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피택 과정에서 약물 검사를 한다. 왜 그럴까. 그렇지 않나.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들이 모르는 상태의 약물 중독 상태라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기쁨이 약물로 해결되나. 기쁨이 권력으로 채워지나. 기쁨이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더러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참 기쁨, 영원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370장 찬송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인간은 그 누구이든지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으로 모시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예배자의 기쁨, 기도하는 자녀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 1절을 부르자.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내가 모으고 또 모으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겠다고 하셨다. 맞다. 하나님은 흩으시기도 하시고 모으시기도 하시는 여호와이시다. 하나님은 지키기도 하시며 버리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찢기도 하시고 꿰매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헐기도 하시고 세우기도 하신다. 안기도 하시고 멀리 하기도 하신다. 

그러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사56:8) 그렇다.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늘의 별과 같은 언약의 후손이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처럼 천하 만국의 만민들을 일일이 부르시고 불러 모으셔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는 구원 받은 백성 삼기를 원하신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방 세계는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는 특권을 동일하게 받게 된다는 약속이다. 이스라엘과 타민족 사이에  가로 막혔던 두터운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어느 민족도 그 어느 누구도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놀라운 구원 계획과 하나님의 경륜 아래서 이제 모든 성도는 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는 에베소서 2장 19절의 말씀처럼 “이제부터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할 때에 선포한 말씀 그대로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다”(행17:26)

그렇다. 하나님은 사람을 피부색이나 인종이나 언어나 문화나 음식이나 풍습이나 키나 외모나 생김새로 차별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 안에서 각 사람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은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무한하신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패역한 일이다. 오늘 8절까지 읽었지만 그 다음 9절 이하에 그런 경고의 말씀이 나온다. 9-12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나 그 부르심과 사명을 제대로 깨닫고 그 직임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자들을 경고하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다 무지한 벙어리 개라고 책망하셨다.
짖어야 할 때에 짖지 못하고
꿈만 꾸고 누워 잠만 자기를 즐겨하는 탐욕스러운 개라고 비유하셨다.
저들은 족한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며 몰지각한 자들이라고 경고하셨다.
저들은 각기 다 제 길로 돌아가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포도주와 독주를 잔뜩 마셔 대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회개하여야 한다. 변화되어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길 알아가기를 즐거워하여야 한다.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여야 한다.”(사58:2)오늘 말씀대로 ‘여호와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 은혜가 각 사람에게 항상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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