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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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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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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2-12-01 22:17 조회 17,068 댓글 0
 
“인간이 하늘을 새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까”이 같은 질문은 인류 역사에 무척 오래된 궁금증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두 번쯤은 꿈에 하늘을 훨훨 날아다닌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사람이 참새처럼 혹은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을까”하는 과학적인 대 명제를 해결한 것은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의 과학 발전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모나리자’같은 작품의 신비를 이룬 역사적인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도 평생 동안 비행 물체 연구에 골똘하였던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과학’이란 용어조차 낯설던 시대에 이미 수학, 광학, 지질학, 물리학, 해부학, 공기 역학 등에 있어서 남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관찰과 실험과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1903년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제작하는 일을 성공하기 450년 전에 이미 다양한 형태의 비행 물체를 설계하기 시작하였다. 관성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톤보다 200년 앞선 인물인 그는“물체에 움직임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대 명제를 갖고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때로 산꼭대기에서 발견되는 조개껍데기를 보며“이 곳이 과거에는 바다였다.”는 관찰을 기록하며 지구의 침식과 퇴적 작용에 대한 지층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과학을 모르며 살아가는 사람은 키나 나침판이 없이 흘러가는 배 위에 있는 항해사와 같다.”고 말했다. 1492년에 그린 그의“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라는 신체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바이다. 그는 끝없이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 증기 기관차, 습도계 등의 연구에 몰두하며 그 궁금증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탈리아 빈치라는 마을에서 공증인의 서자(庶子)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되지 못하는 신세로 자라나야 했다. 농사꾼의 딸이었던 그의 어머니 카타리나는 결국 신분적인 차이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버지와 결혼 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적자(嫡子)가 아니라는 신분적인 제약 속에 자라나면서 음악적인 소양과 더불어 미술에 뛰어난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5살 때에 그는 아버지에 의해서 피렌체의 화가 공방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바닥 청소와 허드렛일을 하며 스승의 붓을 빨고 안료를 빻는 작업을 도우며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점점 스승에게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스승이었던 베로키오나 보티첼리를 능가하는 주인공이 되기 시작하였다. 훗날 그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의 식당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그의 미술 작업을 지켜 본 많은 이들 중의 한 사람인 마태오 반델로는“그는 어떤 날은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먹고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종일 붓질을 쉬지 않고 작업하는가 하면 어떤 날은 며칠 씩 팔짱만 끼고 작품 앞에서 단 한 번의 붓 칠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고는 했다.”고 전해 주었다. 심지어 그는 인체 해부도 연구를 위해서 나이에 상관없는 남녀의 시체 30여구 이상을 상세하게 해부하고 도식화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처럼 냉동 기법이나 방부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당시에 시체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상태에서 장기를 일일이 해부하여 관찰하며 스케치 하고는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와 같은 남다른 노력 가운데 자기를 계발해 나갔던 그가 인간의 안면 근육의 섬세한 조직 하나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노력에 의하여 완성한 작품이 <모나리자>인 것이다. 그와 같은 천재적인 인물들의 염원의 결실로 오늘 날은 우주공학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우주공학을 비롯한 항공 산업은 단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 인류 역사상 최첨단의 완벽한 과학 기술을 요구한다. 물론 그 모든 기술의 발달은 어느 개인 한 사람의 수고나 노력이 아닌 수많은 우주항공과학자들의 연구의 종합 작품인 것이다. 우주과학 분야의 발전은 수많은 우주 공학자들의 외롭고 긴긴 연구와 노력을 통하여 오늘 날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우주공학 발전에 있어서 힘겨루기를 한 것은 소련과 미국이었다. 우주선을 성공적으로 최초로 쏘아 올린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우주에 쏘아 올렸다. 이는 지구의 일정 궤도를 도는 최초의 인공위성이었다. 이로 충격과 도전을 받은 미국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에 미우주항공국(NASA)을 발족시켰고 4개월 후에 익스플로어 1호 발사에 성공하였다. 1961년 4월 12일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소련이 유인 우주선에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 발사에 성공하여 지구의 궤도를 돌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데 성공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미국은 그 다음해인 1962년 2월 20일에 존 글랜이 프랜드십 7호를 타고 지구 궤도를 3바퀴 돈 후에 성공적으로 귀환하였다. 올 2012년은 지난 1969년 6월 21일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하여 최초로 첫 발을 디뎠던 닐 암스트롱이 세상을 떠난 해이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한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이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은 디디면서 남긴 말로 유명하다.
 
최근 나로호 발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우리나라 우주과학자들의 노력이 계속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와 같은 발사에 성공하려면 600단계의 점검에 전혀 이상이 없어야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완벽한 준비가 없이는 발사에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인격적으로 그러하고 인간됨이 그러하다. 그러나 과학이나 공학은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다. 특히나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우주공학은 단 한 부분의 오차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벽을 향한 도전인 것이다. 지난 2012년 11월 15일에 발생한 블랙이글 항공기(T-50B) 추락 사고의 원인이 밝혀졌다. 정비 과정에서 담당자인 정비사가 실수로‘상승 하강 조종 장치’의 차단선을 뽑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조종을 맡았던 김완희 대위의 목숨을 앗아간 이 같은 사고의 책임을 통감한 해당 정비과의 상관인 모 준위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고는 1999년 9월 항공유 대신 맹물을 연료로 주입하는 실수로 말미암아 발생한 F-5F 전투기 추락사고 이후의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실수로 인한 사고로 기록되게 되었다.
 
성경, 야고보서는“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3:2)고 하였다. 어찌 인간이 말에만 실수가 있으랴.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과 발로 실수(失手)하고 실족(失足)하고 실패(失敗)하고 스스로 실망(失望)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다. 그래서 죄와 악이 인간 안에 들어 온 것이다. 유혹과 시험 앞에서 지혜롭고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부족과 나약함으로 말미암아 찾아드는 죄와 악이 얼마나 많은가. 월스트리트 저널의 유명 기고가이며 풀리쳐상 수상 작가인 조지프 핼리넌(Joseph T. Hallinan)은 그의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라는 책에서“자신이 바라는 것만 보는 편향성,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자기 과신, 대충 보고 간과하는 익숙해져 버린 습관, 이것저것을 다 하려다가 집중력을 잃고 마는 경향”등을 실수의 원인으로 꼽았다. 모든 분야는 반복되는 실수나 실패에 대하여 결코 너그럽지 않다.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인간성의 회복(回復)과 구원(救援)의 완성이란 무엇일까.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그 어둠의 속성을 분별하여 진실하심과 선하심과 아름다움과 의로움의 근본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화목(和睦)과 일치(一致)여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며 거듭남이며 구원의 체험과 더불어 요구되는 거룩한 삶인 성화(聖化)와 그리스도의 완전(完全)을 향한 영화(榮化)로운 삶으로의 초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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