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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집과 하나님의 집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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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2-11-18 07:20 조회 14,533 댓글 0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의 문제가 골고루 해결되어야 한다. 물론 전혀 옷을 입지 않고 살아가는 부족들도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족들일지라도 나름대로의 주거 환경은 마련되어 있다. 열대 지방의 가옥 구조와 일 년 내내 겨울만 계속되는 한 대 지방의 가옥 구조는 전혀 다르다. 열대지방에서는 나무로 얼기설기 대강 집을 짓고 살아간다. 지역에 따라서는 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집의 벽에다가 짐승의 배설물을 발라서 빈 공간을 가리고 산다. 틈틈이 그 짐승 배설물로 바른 벽을 조금씩 헐어서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다시 채워 넣기도 한다. 몹시 추운 곳에서는 얼음으로 집을 짓고 사는 곳도 있다. 평생을 물 위에 배를 띄워 놓고 선상 가옥 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배 안에서 아기가 태어나고 육지로 학교를 다니고 다시 돌아와 평생 그 배를 떠나지 않고 사는 이들도 있다. 물론 요즘과 같은 현대 문명 시대에도 집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움이 많은 구조와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필리핀 선교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강의와 집회 중에 한 나절 동안 원주민교회 몇 곳을 방문해 보았다. 그나마도 한국교회의 선교비를 후원 받아 벽돌로 지은 예배당이었다. 그 주변에 산재해 있는 마을의 가옥 구조는 참으로 열악하였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바닥에는 대나무를 얇게 켜서 깔고 계단을 올라가면 아래층에는 닭과 개와 고양이가 뒤 엉켜 지내고 그 원두막 같은 이층에서 모든 살림을 해결한다. 부엌을 들여다보아도 변변한 살림살이가 없다. 다 낡고 찌그러진 양은 냄비 몇 개와 바깥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나뭇가지로 막은 벽면에  플라스틱 빈 병 몇 개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지파 지역에 3,000여 명 쯤이 살아가는 로브스 코로와이(Loaves Korowai) 부족들은 40-50m의 높은 나무 꼭대기에 원두막 같은 집을 마련하고 그 곳에 기어올라 다니면서 살아간다. 잘 사는 집일수록  남들보다 좀 더 높은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는다. 대개는 족장이 가장 높은 집에 살면서 눈 아래 펼쳐진 부족들의 생활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워한다. 대적하는 다른 부족이나 맹수로부터 자신들의 부족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희한한 주거형태이다. 저들은 지금도 여전히 벌거벗고 살아간다. 저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초이니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제는 인도네시아의 정부가 나서서 저들 부족들에게 의료와 교육 혜택을 주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저들은 곰과 물고기와 새와 도마뱀과 벌레와 유충을 주식으로 한다. 단백질이 부족한 저들은 숲 속을 찾아 헤매며 벌레의 유충을 잡아서 산채로 먹는 방법으로 영양을 보충한다. 돌도끼를 사용해 나무를 베어 내며 사냥감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마련한 창을 던지는 솜씨와 활을 쏘는 기술이 명사수 수준이다. 

학술적으로는 집에 관한 연구서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 노버트 쉐나우어의 <집>이란 책에 보면 6,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의 주거 환경을 연구하고 시대별로 집대성한 노고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원시인의 주거 문화로부터 고대와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거 환경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부족들의 주거 환경, 마을의 형성과 성곽과 도시의 발전과 개인 주택과 성주들의 거대한 요새를 비롯해서 오늘 날의 아름다운 전원주택과 최첨단 아파트 주거 환경 등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주거 환경에는 그 지역 혹은 그 민족들이 갖고 있는 자연 환경과 기후 조건을 비롯한 풍습과 신앙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로 하면 고대로부터 풍수지리를 중요시 해 온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도 수도권에 강동구 암사동 일대에서 발견된 선사 유적지가 보존되어 오고 있다.

성경이 소개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궁금하다. 노아 시대에 방주를 지었고 그 속에 들어간 그의 여덟 식구가 홍수 심판 시대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이야기는 창세기 7장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홍수 시대에 노아의 가족들에게 있어서 그 방주란 것이 가옥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거대한 방주 안에 온갖 새와 짐승들을 쌍쌍이 들여보내서 함께 홍수 심판 시대를 연명해 나갔다. 100년 동안 지은 그 거대한 방주의 건축은 역사적인 작업이었다. 그 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대대로 이어온 주거 형태는 장막이었다. 양과 소와 약대를 비롯한 짐승의 가죽을 엮어서 만든 가죽 텐트였다. 저들은 그 짐승의 가죽과 털을 깔고 덥고 입고 살아왔다. 먹고 마시고 입고 눕는 모든 필요가 짐승들로부터 공급되었다. 요셉이야 애굽에 팔려간 후에 바로 왕의 신하인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살았으니 비록 종이긴 하지만 애굽의 화려한 권력자의 집에서 지냈을 것이다. 3,500년 전의 애굽은 화려한 고대 문명 국가였다. 그런 땅에서 노예의 후손으로 왕족의 혜택을 누리며 40년을 살던 모세가 택한 곳은 바로의 왕궁이 아닌 미디안 광야였다. 애굽 사람을 죽인 부담도 있었지만 그가 왕궁을 벗어나 도망자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에게 장가들어 소와 양떼를 치며 지낸 날이 다시 40년이었다. 그 40년 동안 모세의 잠자리는 장막이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같은 선조들이 눕고 일어나던 바로 그 장막 말이다. 그 광야의 모세를 통하여 짓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집인 성막(聖幕)이었다.

그 후손 중에 사사 시대를 거치고 가나안 땅에 번영하던 왕국의 임금이 된 다윗이 거하던 왕궁은 화려한 곳이었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궐이었다. 베들레헴 들판에서 소년기를 보낸 장막 속의 다윗이 생각하면 참으로 어린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호화로운 환경에서 왕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 다윗이 어느 날 착잡한 생각을 갖고 선지자 나단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7:2) 이 말을 들은 나단이 응수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삼하7:3) 그 밤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선지자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약속해 주셨다. 다윗은 성막 안에 모셔져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생각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백향목 궁의 화려함이 송구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선지자 나단에게 한 마디 말한 것뿐인데 하나님은 다윗의 그 생각과 그 마음에 크게 감동하셨다. 그리고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는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다. 이 같은 크나큰 축복의 말씀을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들은 다윗은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26, 29)하고 기도하였다. 이 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은 우여 곡절 많은 후손들을 통하여 계승되었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솔로몬의 성전을 짓던 마음과 포로의 땅에서 돌아온 남은 백성들이 스룹바벨을 앞장 세워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던 그 마음이 귀한 마음인 것이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기회가 몇 번이나 주어질까. 사찰이 지어지려던 은평 뉴타운의 법당 터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인 성전(聖殿)에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학개서에 보면 인생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학1:8)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고의 행위이며 인류 최고의 축복의 기회인 것이다. 다윗은 주께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던 기도의 사람이요 언약과 예배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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