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장발장
구운 달걀 18개를 훔쳐 먹은 범인에게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 실형을 구형하였다. 물론 앞으로 법원의 최후 확정판결을 기다려 보아야 하겠지만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 하순에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범인은 고시원 입구에 놓여있던 한 개에 300원씩 받고 파는 구운 달걀 18개를 모두 훔쳐서 달아났다. 그는 석 달 전까지 그곳에 머물다가 월세를 해결하지 못해서 떠난 이였다. 그는 열흘 동안 한 끼의 음식도 먹지 못하고 물로 배를 채우며 지내 왔다고 한다. CCTV 기록 분석을 통해서 붙잡힌 그는 경찰 조사에서 “그동안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의 범행 과정을 조사하던 담당 형사는 그에게 짬뽕 한 그릇을 시켜주었다. 그는 “두 주 만에 처음 먹는 음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살던 고시원을 떠난 후에 근처의 다른 고시원 주인의 배려로 잘 곳은 구했지만 생계가 막막하여 굶고 지내 왔다고 한다. 검찰은 여러 차례 절도 행각 경력이 있고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 사실이 드러난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큰 범행이든 작은 범행이든 죄는 습관이 될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사람이 나빠서 범행한다기보다는 작은 범죄의 경험이 무감각해져서 크고 계획적인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 전문 지식이 없거나 특별히 익힌 기술이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요즘 같은 코로나 19의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염려가 많은 때에는 하루 일자리 찾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처음에 어떻게 해서 범죄에 연루되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그가 그동안 살아온 과거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검찰은 달걀 18개를 훔친 그에게 18개월을 구형하였다. 한 개에 300원씩 받던 구운 달걀이라고 하니 5,400원어치를 훔친 벌이 가혹하기 그지없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훔쳐 먹으려고 했을까”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질문하게 된다. 그러나 큰 범죄이든 작은 범죄이든 범죄는 범죄이다. 더군다나 과거에 절도 경력이 있는 그를 검찰이 순수하게 봐 줄 리가 없다. 과거에“유전 무죄 무전 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한때 유행어처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1990년 이후 대한민국 내의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은 모두 합쳐 2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러나 형이 확정된 후 평균 9개월 만에 사면을 받고 현직에 복귀했다. 이와 같은 자료들이 그런 표현이 사실임을 입증하지 않나. 그런 표현 자체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하는 사회의 부조화를 피할 길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무슨 글을 보다가,
“정의가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그렇지 않나. 어느 나라의 어느 시대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불의가 없는 시대란 없다. 더군다나 절대 권력자가 불의한 경우에는 그 불의한 권력을 견제할 제 삼의 힘이란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해서 삼권 분립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불의한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두둔하는 견제 세력과 담합하는 날에는 세상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방향을 잃고 말 것이다.
장발장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쓴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그는 프랑스 라브리 지방의 노동자로 가난과 굶주림 가운데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가엾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툴롱의 감옥에서 복역하던 그는 4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다시 붙잡혀 결국 19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죄수 번호 24601으로 냉혹한 경찰 자베르에게 20년간 추격을 받게 된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에게서 숙식을 도움받으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는 은으로 된 값비싼 물건을 훔쳐서 도망치려다가 포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는 포졸들 보는 앞에서 그에게 은촛대까지 덤으로 주며 오히려 그를 구해주었다. 그 후 장발장은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꾸었다. 그는 나중에 공장주인도 되었고 시장(市長)도 되었다. 그는 선행을 베풀며 살다가 팡틴이라는 불쌍한 여인의 부탁으로 그녀의 딸인 코제트를 구하러 가려 하였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의 뒤를 추격하던 자베르의 계략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구하고 스스로 감옥으로 간다. 하지만 곧 탈옥하여 "종달새"라 불리고 있는 불쌍한 코제트를 구해서 수녀원 등지에서 숨어 지낸다. 그는 코제트를 정성스럽게 돌보며 지내다가 코제트를 마리우스라는 젊은이와 짝지어주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소설 <레미제라블>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수많은 이들에게“공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여러 가지 화두(話頭)를 던진 바 있다.
성경은 십계명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죄의 목록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 첫째가 부모에 대한 불효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의 말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든 삶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요즘 대개의 젊은이들이 도시로만 몰려드는 때에 22살 젊디젊은 나이에 이미 결혼을 하고 귀농하여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청년 농부의 길을 걷는 주인공을 다룬 <인간 극장>의 내용을 훑어본 적이 있다. 사람이 저들 청년 농부로 사는 젊은 부부처럼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누구나 행복한 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가르침이 무엇인가. 사람이 십계명을 귀하게 여기며 부모를 공경하며 세상을 밝은 마음으로 대하며 서로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간다면 크고 작은 범죄는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동안 그가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온 사연이야 어찌하든 “오죽 배가 고팠으면 달걀 몇 개를 훔쳐 먹다가 들켜서 감옥에 가게 되었을까”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가 이번에 법원으로부터 어떤 형량의 판결을 받든지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동안에 무슨 기술이라도 배운 후에 세상에 나와서 빛의 자녀답게 세상을 밝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성경, 에베소서 4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새 삶의 기회를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모세는 40살에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그는 40년 세월 후에 동족을 출애굽시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았다. 다윗은 전쟁 중에 부하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였다. 그 후에 그는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부하 장군 우리야를 최 일선에 배치하여 전쟁 중에 적군에 의해서 죽임당하게 하였다. 다윗은 선지자 나단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 앞에 처절한 회개의 길을 걸었다. 그런 못되고 극악한 소행을 저지른 다윗이지만 하나님은 회개한 다윗의 나중을 존귀하게 쓰셨다. 나중에 하나님은 “다윗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행13:22)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구운 달걀 훔쳐 먹은 그 범인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새 삶을 ‘인생의 제 2막’으로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