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이상해져 가고 있다
필자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강화도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어려서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가 이른 아침 학교에 가기 전에 소를 풀 먹이는 일이었다. 이슬에 젖은 뒷동산 숲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고무신이 발과 따로 논다. 고무신 안에 물기가 배어들어 가서 질적질적한 그 기분이 너무 찜찜했다. 지금 생각해도 찜찜하다.
강화도는 휴전선에 가까워서 북한에서 고무풍선에 달아 내려보낸 삐라가 온 산에 널려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얇은 종이 한 장일 때도 있지만 수십페이지짜리 두께의 소책자도 있었다. 그 겉에는 김일성의 컬러 사진도 있었다. 그 때 그 소책자를 뒤적이며 익숙하게 접한 용어 중의 하나가 “위대한 수령이시며 영원히 빛나는 영도자이신 김일성 동지”라는 식의 표현이었다. 그걸 잔뜩 주워서 학교에 가져다가 제출하면 선생님들로부터 공책, 연필, 지우개 등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기에 초등학교 여름 방학 혹은 겨울 방학 숙제 중에 반공 포스터 그리기가 있었다. “무찌르자 공산당 때려잡자 공산괴뢰” 이런 내용의 포스터가 전봇대마다 나 붙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우리는 북한 공산당을 그림 그릴 때면 머리에 뿔이 달린 괴물을 그리고는 하였다. 어린 생각에 그렇게 나쁘다고 하는 북한 공산당은 우주인 ET같이 기괴하게 생겼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한에 살포된 삐라 책자의 김일성 사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시아인치고는 시원한 인상의 잘생긴 외모였다. 어린 생각에 “왜 저렇게 잘생긴 아저씨가 무장 공비를 남한에 내려보내서 조용한 남한 사회를 어지럽힐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승복(1959-1968)은 강원도 평창에서 우리 또래로 태어났다. 그는 우리보다 한 학년이 어렸다. 그가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의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 3학년 때인 1968년 11월 2일에 울진과 삼척지역으로 북한 무장 공비가 침투하였다. 이승복의 가족들은 삼척시의 바닷가를 통해서 무단 침입한 북한의 무장간첩에 의해서 12월 9일 밤, 10살이던 이승복은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과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의 형과 아버지는 크게 다쳤으나 겨우 목숨은 건졌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1968년 12월 11일 <조선일보>는 3면에 이 사건을 <“共産黨(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抗拒(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으로 자세하게 실었다. 이 기사는 현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남은 이승복의 형의 증언을 인용하였다. "무장공비가 가족을 몰아넣고 북괴의 선전을 하자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하여 공비들이 이승복의 입을 찢고 가족들을 몰살시켰다.”고 보도했다. 12월 13일에 제작된 대한뉴스 제705호 〈남침공비를 무찌른다 - 제3신〉 편에서는 이 사건을 “공산당이 싫다고 해서 어린 젖먹이를 돌로 때리고 입을 찢어 죽인 이들의 만행”이라고 보도하면서 일가족의 시신을 공개했다. 이후 이 사건 내용은 지금의 초등학교인 그 당시 국민학교의 도덕 교과서에도 실리고, 국민학교마다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반공정신의 상징처럼 되었던 적이 있었다.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영관장교연합회’ 회원들은 1999년 이후 20년이 넘도록 매년 이승복의 기일마다 기념관과 그의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고 한다. 20년 전에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이었던 김주언은 이승복 사건을 조작된 허위라고 주장하다가 실형을 받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교과서에서도 그 내용이 사라지고 초등학교 정원에 세워졌던 그의 동상도 하나씩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점점 이상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올해는 6.25 전쟁이 벌어진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이들은 6. 25는 북침 전쟁이지 남침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 19보다 더 긴장되는 사실은 이 땅에 번져 가고 있는 좌우의 편향적인 극단 현상이다. 정당과 이념에 따라 줄서기 하는 이들의 맹목적인 정치행태는 국가의 근간(根幹)을 흔들리게 하며 국가의 나아갈 향방을 혼돈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보수냐 진보냐 혹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아니면 좌냐 우냐 보다 더 우선되어야할 것은 진리의 편에 서는 일이다. 역사를 지켜 가는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아니라 진리이다. 로마가 무기나 군대가 없어서 망했는가. 애굽이 바로 임금의 마병이 없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막지 못했는가. 동서독 통일을 한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여기는가. 해군 장병 40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된 천안함 피격 사건이나 연평도 폭격 사건 등을 비롯해서 북한 주민이 겪고 있는 인권 문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남북의 평화적 접근을 꿈꾸어 온 그 동안의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언제나 궁금한 의구심을 수없이 품게 하여 왔다.
통일전문가나 외교 전문가도 아니며 국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중의 한 사람도 아닌 필자는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우려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진리와 공의와 선의 편에 서서 살아가려 한 이들에 의해서 이어져 왔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인 헤롯은 그 다음 차례로 베드로를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옥에 갇혀 죽임 당할 순간을 기다려야 했던 베드로를 구출해 내셨다. 기도하는 성도들의 간구를 들으신 것이다. 헤롯의 권세는 하늘로 치솟는 듯했다. 백성들은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로다”라고 말하며 헤롯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자 주의 사자가 그를 치니 벌레에 먹혀 죽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사건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이 땅에 천년은커녕 백 년 살 인생도 별로 없다. 오래 사는 장수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에 잠언 말씀이 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22:1)는 말씀이다. 그렇다. 많은 재물, 높은 지위, 대단해 보이는 명예, 남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 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기 이런 것보다 명예롭게 살아가고 그분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길을 택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복음적이고 평화적인 남북통일을 원한다. 동서독이 그런 날을 맞이한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남측에서 원하는 통일과 북측에서 원하는 통일이 다르다는 점이다. 남한 땅에도 통일관이 서로 다른 이들이 뒤섞여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말조심해야 할 때이다. 최근에 탈북자들이 북한을 향하여 풍선에 이것저것을 담아 날려 보내는 일이 남북 간에 큰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북한은 연일 입에 담기 어려운 별의별 표현들을 총동원해서 남한과 남한의 지도부를 맹비난하며 위협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는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한미 동맹을 약화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에 미국이 선호하지 않을 일을 진행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데 있어 현 시점을 중요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미동맹 균열을 위해 과거에 비해 정교한 노력과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외교는 줄다리기가 맞을 터인데 언제까지나 저자세로 우롱당하고 끌려다니지만 말고 힘 있는 전략을 통해서 지혜롭게 접근하는 대한민국의 지도부가 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