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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슬픔’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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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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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3-02-23 22:10 조회 16,782 댓글 0
 
올해도 어김없이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었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고 불리는 ‘참회의 수요일’ 부터 시작된다. 부활절은 춘분이 지나고 첫 만월이 지난 첫째 주일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태음력에 기준한 유월절 계산법을 따라서 산정하는 것이다. 사순절은 처음 1세기에는 단 40시간으로 지켰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서 40시간동안 있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aea)에서 처음으로 사십일로 정하게 되었다. 사순절 기간의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순절 기간에는 물고기와 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다.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이나 무용 관람 혹은 연애 소설을 읽는 행위 등이 금지 되었다.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거나 너무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의 생활도 자제되어 왔다. 대신에 가난하거나 병든 이들을 돌보는 자선 활동과 예배 참석과 기도의 열심을 권장하여 왔다.

1517년의 종교 개혁 이후에도 금식과 경건한 예배와 말씀 묵상과 기도 운동은 계속되어 왔다. 올해 창세기와 더불어 특별히 묵상해 가는 주제가 있는 사순절 묵상 중의 첫째는 ‘슬픔’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 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 조차도 엄청난 슬픔과 비애를 몸소 겪으신 고난의 주님이시다. 이사야 53장 5절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는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실 주인공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한 몸에 인간의 온갖 슬픔을 다 짊어지신 구세주이시다. 인간의 역사에 슬픔이 찾아 들어 온지는 오래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돕는 배필인 하와를 만드셨을 당시의 그 곳은 완전한 하나님의 동산이었다. 하나님과 함께 거닐고 대화하고 동행하는 낙원이었다. 그런 에덴동산에 뱀의 유혹에 무너진 하와와 아담은 그 좋고 완전한 동산에서 내어 쫓기는 슬픔을 겪어야만 하였다. 아담의 장남인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난 후에 동생 아벨을 죽이는 형제 살해 사건은 아담의 가정을 크나큰 충격과 슬픔에 빠트리고 말았다. 이 같은 인간의 슬픔은 방주 건설을 마치고 노아가 그의 일곱 식구와 함께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40일간의 홍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지 못할 때에도 찾아 왔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홍수의 기간을 지내며 홍수가 끝나고 땅에 물이 말라서 다시 세상에 나아가서 살기 까지 마음이 허망하고 자신의 가족 이외의 모든 인생들이 홍수의 심판을 받아 죽은 세상의 폐허 앞에 절절한 슬픔을 곱씹으며 재활의 날들을 살아가야만 하였다.

이런 슬픔은 아브라함에게도 있었고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아내 사라의 요청을 받아 들여 아내의 몸종인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임신하게 한 후에 하갈이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하면서 예기치 못한 가정불화를 겪어야만 하였다. 결국은 임신 중에 있는 몸종 하갈을 여주인 사라가 학대하였고 하갈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광야로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창세기 16장에 그 자세한 기록이 나온다. 그 날 이후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집안은 먹구름이 덮쳤다. 하나님은 광야에 내쳐진 불쌍한 하갈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위로하셨다. 그리고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셨다. 우여곡절 가운데 아들이 태어났고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 외롭던 아브라함에게 씨가 태어나서 자라나는 것은 일단 기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탄생을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아브라함의 욕망의 씨앗이라고 평가하신 것이다. 그런대로 살아가던 아브라함의 가정에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여주인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태어났다. 소년기를 보내던 이스마엘은 어린 이삭을 놀리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였다. 평온하던 가정에 다시 불화가 일어났다. 결국 사라의 요청에 의하여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광야로 쫓아내야만 했다. 창세기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조상으로 살아가긴 했지만 그의 175년 생애 동안에 이 같은 근심과 슬픔의 날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슬픔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을 보시고 이삭을 살려 주시기는 하였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 경험하는 충격적인 사건들과 슬픔이 삶의 저변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의 인생이 다 그러하지 않는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열두 아들과 외동딸 디나를 낳았다. 두 부인과 그들의 몸종들을 통하여 네 아내에게서 서로 배 다른 형제 열둘이 자라났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이 낳은 요셉을 편애하고 총애하였다. 요셉은 꿈을 꾸는 소년기를 보내던 중에 들판에서 양떼를 치던 형들에게 면회를 갔다가 아버지 야곱 곁으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형들에게 붙들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이복형제들 간에 담합하여 요셉을 국제 인신 매매 범들에게 팔아 버린 것이다. 요셉을 발가벗겨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팔아 버린 열 명의 형제들은 숫염소 한 마리를 잡아서 요셉의 옷에 그 피를 발랐다. 그리고는 찢어낸 요셉의 피 범벅이 된 채색 옷을 아버지 야곱에게 갖다 건네며 거짓말을 하였다.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창37:32) 인간의 비정함과 범죄의 극악함을 보게 하는 타락의 단면이다. 아버지 야곱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여러 날을 애통하고 슬퍼하고 울며 지냈다.(창37:34-36) 그러는 동안에 요셉은 애굽의 노예 시장을 거쳐서 바로 왕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갔다. 이십 여 년 후에 가나안의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이주한 그의 노년기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던 출세한 아들 요셉을 다시 만나면서 지난날의 야곱의 슬픔과 충격은 기쁨과 감사로 보상되었다.

인간에게 슬픔은 언제나 있고 누구에게나 있다. 이 같은 슬픔은 다윗에게도 있었고 이사야나 엘리야나 엘리사에게도 있었다. 슬픔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물론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천국인 그곳에는 슬픔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세상에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붙잡혀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처절한 죽음을 죽기까지의 장면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하는 슬픔의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 ‘피에타’(Pieta)라고 이름 붙여진 예수님의 시체를 품에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통하여 성경의 장면을 사실화한 조각품은 언제 대하여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지 않는가.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신 외로움과 슬픔 가운데 처절한 고통과 죽음의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시던 그 모든 걸음은 슬픔의 내리막길이셨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슬픔과 배신과 외로움과 고통을 이기는 승리의 능력과 기쁨의 주인공이 되셨다. 그렇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사야 61장 3절의 예언처럼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신 전능하신 구세주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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