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러면 못써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라는 긴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는 꽤 여러 해가 지났다. 저자인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은 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에서 태어났다. 1937년생이니까 올해 80이다. 그는 미남부침례교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서 자라났다. 그는 그런 환경에 환멸을 느끼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기만의 온전히 순수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IBM세일즈맨, 카우보이, 아마추어 로데오선수, 화가, 조각가, 음악가, 카운슬러, 바텐더 등의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목사인 그는 심지어 동양 종교에 관심을 갖고 선불교 수도사 생활까지도 해 보았다. 그가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른과 아이를 막론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이야기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게 공부도 잘하고 출세를 해서 나라의 구석구석의 요직을 차지한 것이 사실인데 저들로 인해서 온 나라가 삐꺼덕거리고 있다. 새해가 밝았지만 심각한 미세먼지와 같은 거짓으로 뒤 덥혀 있다. 이번 주에 묵상한 디모데전서 말씀에 보면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2)는 내용이 나온다. 사도 바울의 논리를 빌리면 거짓말하는 자들의 양심은 화인 맞은 상태라는 것이다. ‘화인’(火印)이 무엇인가. 거짓말이란 양심이 불에 지져져서 무감각해져 버린 악이다. 앞에 인용한 책에서 저자는 “무엇이든지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아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라. 밥 먹기 전에 손을 꼭 씻어라. 화장실을 쓰고 난 다음에는 물을 꼭 내려라. 따뜻한 쿠키와 찬 우유가 몸에 좋다. 균형 잡힌 생활을 하라. 배우고 생각하고 날마다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놀기도 하고 일도 하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경이로운 일에 눈떠라. 컵에 든 작은 씨앗을 기억하라. 뿌리가 나고 새싹이 나서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금붕어와 애완용 쥐와 흰 쥐 그리고 심지어 일회용 컵 안에 심어놓은 작은 씨앗조차도 모두 다 죽는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밖에 나가서는 차 조심하고 손을 꼭 잡고 서로 의지하라.”는 등의 내용들을 언급한다. 그렇지 않나. 어려서 엄마의 무릎 위에서 배운 생활의 일상적인 교훈들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에서 벗어나면 ‘탈선’(脫線)이 되지 않는가. 올해는 정유년(丁酉年)이다. 1597년이 정유년이었다. 1592년에 있었던 임진왜란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다시 왜군이 조선 땅에 쳐들어 왔던 전쟁이 “정유재란”이다. 임진왜란 후에 왜군은 14만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1597년에 조선을 다시 침략하여 전라도를 점령한 후에 충청도로 북진을 시작했다. 그해 9월에 권율과 이시언의 조명(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은 충청도 직산에서 일본군의 북상을 막았다.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은 12척의 함선으로 300여 척의 일본수군을 명량해전에서 대파하였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이 일어난 그 같은 해의 음력 9월 16일에 있었던 역사적인 전쟁을 말한다. 다음 해인 1598년 8월 마침내 도요토미가 죽자 일본군은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조선군은 명나라의 군대와 함께 육상에서 일본군을 추격하였다. 그러나 명군의 유정이 일본의 고니시로부터 뇌물을 받고 명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일본군을 섬멸하지 못했다. 한편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진린(陳璘) 지휘하의 명 수군과 함께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전쟁을 벌였다. 그해 11월 노량에서 일본전선 300여 척과 해전을 벌였다. 그 결과 조선과 명이 일본의 함선을 200여 척이나 격침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전사하고 말았다. 이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일본과의 7년에 걸친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해전사연구가(海戰史硏究家)이며 이순신을 자세하게 연구한 영국의 발라드(G. A. Ballard) 제독은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로 하여금 넉넉히 위대한 해군사령관 가운데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그는 싸움이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 있어서는 넬슨(Nelson)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영국 사람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어렵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 번도 패배한 일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순신도 그의 부모 슬하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草溪卞氏)는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 중의 셋째가 이순신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냥 변 씨로만 알려졌을 뿐 자신의 이름조차 갖고 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초계 변씨의 자녀교육과 아들 이순신의 효심은 익히 잘 알려진 바이다. 국민시인으로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인 김용택(1948- )시인은 올해 69살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그 시대의 어머니들 중의 한 분이었다. 아들 김용택은 섬진강 변에서 자라나던 시절 그의 어머니가 늘 해 주시던 말, “사람이 그러면 못써”라는 가르침의 가치를 자신의 서재에 꽂혀 있는 수천 권의 인문학 책의 내용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렇다. 기저귀를 벗기 전에 집안에서 배우고 품 안에 안겨 가르침을 받던 어른들의 가르침이 평생을 좌우한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다. 알면서도 거짓말하는 것은 더 큰 죄다. 예수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요즘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만 같다.“사람이 그러면 못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