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칠년 동안에 태어나서 자라나고 있는 귀여운 어린 아이들을 보라. 그들의 탄생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아빠와 엄마가 되고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그 동안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여 보라. 늘 대하던 사랑하는 이들을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하는 ‘별리’(別離)의 경험 말이다. 시간과 세월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단 하루를 살아도 별의 별 일들을 다 겪는다. 마태복음 첫 장에 실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읽다보면 그 속에 기록된 각 사람의 인생사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게 된다. 모세는 인생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칠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다. 야곱은 양떼를 몰고 다니던 들판의 낮과 밤이 결코 지루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야곱이 칠년 그리고 다시 칠년을 그렇게 보낼 수 있었던 힘은 라헬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랑 때문이었다. 야곱의 라헬을 향한 사랑은 성경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 중에서 백미(白眉)가 아닌가. 물론 아가서의 주인공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풋풋한 내용도 빼어 놓을 수 없지만 말이다. 야곱이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는 사랑 이야기는 아버지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는 결혼 이야기와 또 다른 차원의 러브스토리이다. 이 세상에 사랑의 힘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수한 사랑이라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가.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의 사랑을 내 안에 채우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교훈은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혼(靈魂)의 합일(合一)상태를 말한다. 야곱이 보낸 칠년 그리고 다시 또 칠년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확증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가는 언약 자손의 삶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장가들어 레아와 라헬 그리고 빌하와 실바를 통하여 12명의 아들과 딸 디나를 낳기까지 험난한 인생을 살아 왔다. 야곱이 끔찍이 사랑하던 라헬을 통한 요셉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가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언약 성취의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일점일획도 오차가 없으시다. 요셉이 17살에 애굽의 노예시장에 팔려 간지 20여년 후에 가나안에는 대 기근이 있었다. 그 당시의 흉년과 기근은 가나안뿐만 아니라 애굽도 마찬가지였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던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을 애굽에 고센 땅에 정착시킨 것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있던 요셉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야곱은 태어나면서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쌍둥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결혼 생활 20년 만에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응답으로 쌍둥이를 낳았다. 외모와 역량이 뛰어나게 태어난 큰 아들 에서는 활발한 사냥꾼으로 지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었다. 형이 산과 들로 사냥을 하러 다니는 동안 동생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 곁에서 지내며 장막 안에 머물러 있기를 즐겼다. 어머니는 쌍둥이를 잉태하였던 이야기와 하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신 임신기간의 경험들을 두 아들들에게 이야기 해주고는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임신 중인 리브가에게 어느 날 나타나셔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25:23)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동생 야곱은 항상 형에게 빼앗긴 ‘장자의 명분’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하루는 형 에서가 배고프고 지친 상태로 사냥을 마치고 돌아 왔다. 형은 동생이 차려주는 떡과 붉은 팥죽 한 그릇을 받아먹고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버렸다.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 이삭의 연세가 많아지던 어느 날 이삭은 들짐승 고기를 잡수시고 싶어 하였다. 사냥에 익숙한 에서가 들짐승을 잡으러 나간 사이에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곱을 시켜서 어린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끌어 오게 하였다. 리브가는 염소 고기의 연하고 좋은 부위로 요리한 음식을 야곱의 손에 들려서 이삭의 장막에 들어가게 하였다. 형 에서는 몸에 털이 많았다. 어머니는 염소 새끼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매게 하였다. 야곱은 “네가 누구냐”하고 묻는 아버지의 질문 앞에 “나는 아버지의 큰 아들 에서로소이다.”하고 거짓말로 대답하였다. 그 당시에 아버지 이삭은 연세가 많고 눈이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었다. 이삭은 마음껏 야곱을 축복해 주었다. 여기에 그 전문을 싣도록 한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7-29) 그러나 문제는 잠시 후에 벌어졌다. 늦게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형 에서는 집안에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야곱은 부모의 곁을 도망치듯이 떠나야 했다. 그리고 20년 동안 돌아가지 못하였다. 야곱은 피신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장가들었고 아들딸을 낳으며 장인의 목축을 맡아하는 데릴사위의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 긴긴 세월 동안 체험한 야곱의 사랑 이야기가 칠년 그리고 다시 칠년이란 세월 속에 배어 있다. “다시 칠년”이란 야곱의 생애에 라헬을 향한 이 같은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 예수사랑교회도 시작된 지 칠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칠년을” 향해 출발하는 우리들 가운데 식지 않는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금번에 방문한 브라운 대학교의 기념탑의 대리석에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LOVE IS AS STRONG AS DEATH)라는 아가서 8장 6절의 말씀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 사랑처럼 강한 것은 없다. 사랑이 최고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