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
로드아일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이다. 뉴욕에서 보스턴을 향해 북쪽으로 달려가다 보면 커네디컷 주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곳이다. 로드아일랜드의 주도(州都)는 '프로비던스'(PROVIDENCE)이다. 아마도 영어 지명들 중에서 이처럼 성경적인 이름도 없을 것이다. 그 뜻이 “섭리”(攝理)라는 의미이니 말이다. 월요일 저녁에 뉴욕 시내에서 출발해서 네 시간이 넘도록 운전하여 아주 깊은 밤중에 이곳에 도착하였다. 대서양 바닷가에 인접한 아름답고 깨끗하고 조용한 도시이다. 어제는 종일토록 겨울을 재촉하는 적지 않은 비가 내렸다. 큰 아들과 우리 내외는 시내에 있는 박물관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오늘 날 보다 과거의 생활이 더 화려했던 것만 같다. 해 아래 새것이란 없다.(전1:9) 아무리 최첨단 과학이 발전한 시대에 살아도 그렇다. 전도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에 다 때가 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고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3:1, 11) 하나님은 “오직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3:11)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을 향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것이 구원이다. 오늘 날 우리의 일상적인 삶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과거라는 시간 속에 묻히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면 세상의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나라도 130년 전에 누군가가 낯 설은 땅에 와서 복음의 씨앗을 심었고 누군가는 물주기를 계속하였다. 저들은 모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조선인들에게 심어 준 고마운 분들이다. 세상에 성장과 공적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는 이와 물주는 이의 열심과 수고가 있을지라도 자라나게 하시는 분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도 바울 시대에 바울과 쌍벽을 이루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아볼로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서로 편을 갈랐다.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하며 나뉘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라고 편지하였다. 그렇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고전3:7) 교회 설립 칠 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내 놓고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일뿐이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고전3:10)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말이다.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를 건설한 주인공은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1603-1683)목사이다. 그는 영국 국교회의 신부였다. 1630년대의 영국은 종교와 정치면에서 큰 박해가 있었다. 당시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이주한 15,000여 명 중의 한 사람이 로저 윌리엄스이다. 그는 보스턴에 정착하는 동안에 여전히 영국 교회에 종속해서 지내려는 정책에 저항하고 ‘영혼의 자유’(Soul Liberty)를 추구하며 동료들과 갈 길을 달리 하였다. 또한 영국 국왕이 북 아메리카의 땅을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에게서 사들이지도 않고 빼앗아서 이주(移住) 정착민들에게 분할해 주는 것이 거짓이며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며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는 식민지의 지도층에 의해 배척을 받게 되었고 영국으로 되돌아가라는 강제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는 1636년 2월에 보스턴 의 눈길을 헤쳐 가며 5명의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남쪽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왐파노아그(Wampanoages) 인디언 부족을 만나 저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울을 지냈다. 봄이 오자 ‘Seekonk'강줄기를 중심으로 바닷가의 ‘내러건셋’(Narragansetts)만(灣) 지역을 인디언 추장으로 부터 매입하였다. 그리고 그 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God's merciful providence)라는 뜻을 담은 ‘프로비던스’라고 정하였다. 목사였던 그는 자기 거처에서 동료들과 예배를 시작했고 이는 미국 최초의 침례교회로 자리 잡았다. 380년 전인 1636년의 일이다. 지금은 도시의 한 가운데 언덕 자락에 1775년에 지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이 온 도시를 품고 있는 듯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예배당 내부 중앙의 뒷벽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졸업식을 하기 위하여”라는 건축 당시의 현액이 걸려 있다. 이와 같은 건축 이념에 따라 오늘날까지도 브라운 대학교의 졸업식을 그 곳 예배당에서 하고 있다. 예배당 중앙 천장에는 고풍스러운 대형 상들리에가 달려 있다. 이는 브라운 대학교 발전과 교회 건축에 공헌한 니콜라스 브라운(Nocholas Brown,1729-1791)을 기념하여 홉 브라운(Hope Brown)이 영국에서 제작해 왔고 자신의 결혼식 날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처음에는 촛불로 밝히는 것이었으나 나중에 가스를 사용했고 더 나중에는 전기를 사용하여 화려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의 프로비던스 인구는 4321명에 불과하였다. 로저 윌리엄스는 교회 안에 갇혀서 지내는 신앙생활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세상 속에 펼치는 안식처를 꿈꾸었다. 그는 80세까지 로드아일랜드의 총독으로 지내며 신앙과 삶이 하나로 자리 잡은 세상을 꿈꾸며 그런 세상을 가꾸다가 주님 품에 안겼다. 90여년 후인 1775년에 침례교 협회에서 파송 받은 제임스 매닝(James Manning)목사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겼다. 1764년에 워렌에서 시작된 로드아일랜드 대학은 6년 후에 프로비던스로 옮겨서 자리 잡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고 1804년 이 대학의 대표적인 후원자인 니콜라스 브라운을 기념하여 학교 이름을 브라운대학교로 바꾸었다. 누구나 선한 일을 시작하고 꾸준히 하면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해 주신다. 배척을 받아 추방 위기에 몰려 생사의 기로에 섰던 로저 윌리엄스에 의하여 오늘 날의 로드아일랜드 주와 프로비던스 같은 역사적인 도시가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브라운 대학교가 처음에는 미약하였으나 오늘 날은 각 분야에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교로 발전하였듯이 말이다. 이른 아침 햇빛을 받은 프로비던스의 맞은 편 언덕에 자리 잡은 하얀색의 예배당 건물이 하나님의 섭리를 세상에 환하게 비추이는 것만 같았다. “주여! 우리에게도 저들처럼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풍성히 덧입혀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