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후손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350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 노예 상태에서 자유의 몸이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하여 거의 이백만에 가까운 히브리 노예들이 애굽의 통치자였던 바로 왕의 압제에서 벗어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애굽의 바로 왕은 번성해가는 히브리 가정의 사내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처럼 점점 극악하게 핍박이 심해져 가던 때에도 히브리 백성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져 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브리 산파들의 가정에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들의 집안이 흥왕하게 하셨다. 그러나 바로의 학정은 계속되었다. 바로는 “히브리인의 가정에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1:22)고 엄명하였다. 그런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히브리 사내아이가 모세이다. 그 당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노예 감독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날마다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고 괴로움은 점점 더하여만 갔다. 바로 왕을 위한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건축 현장에 끌려 나간 히브리 노예들의 고생은 참담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히브리인의 수자는 점점 번성하여 퍼져 나갔다.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 일등 노동은 점점 중하고 엄하여졌다.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지내던 레위 지파의 한 남자가 같은 레위 지파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 가정에 잘 생긴 아들이 태어났다. 아기의 부모는 바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삼개월간 숨겨서 키웠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더 이상 숨겨 키울 여건이 못 되었다. 아기의 부모는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에 어린 아기를 담아다가 나일 강가의 갈대숲에 가져다 두었다. 마침 그 날 그 곳에 바로 임금의 딸 공주가 시녀들과 목욕을 하려고 그 강가로 나아갔다. 아기가 담긴 갈대 상자가 공주의 눈에 띠었고 그녀는 시녀들을 통해서 그 갈대 상자를 가져 오게 하였다. 열어 보니 그 안에 히브리 사내 아기가 울고 있었다. 그 아기의 누이는 어린 동생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고 불쌍하여 나일 강가에서 갈대 상자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서서 어린 동생이 담긴 갈대 상자를 주어 가자 그들의 곁으로 용감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히브리 여인을 자기가 불러 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공주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했고 아기의 누이는 아기의 어머니인 자기 어머니를 공주 곁으로 안내하였다. 공주는 갈대 상자의 아기에게 젖을 먹여 키우도록 허락해 주었다. 꿈만 같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나일 강에서 악어 밥이 될 줄 알았던 어린 아들을 다시 품에 안은 엄마는 정성으로 젖을 먹여 키웠다. 공주는 얼마 후에 이 아기를 자기의 아들로 삼았고 그의 이름을 ‘모세’(Moses)라고 지어 불렀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이다. 죽을 운명에서 일순간에 왕자가 된 어린 모세는 그 날 이후로 애굽의 왕궁 교육을 받고 컸다. 세월은 지나 모세의 나이 사십 살이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왕궁 밖으로 나간 모세는 동족인 히브리 백성들의 고된 노동현장을 보았다. 하필 그 날 그는 한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모세는 거기서 애굽인을 쳐 죽였고 그 즉시 그의 시체을 모래 속에 감추어 버렸다. 모세는 다음 날 또 다시 왕궁 밖에 나갔다가 동족끼리 싸우는 현장을 말리려고 끼어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모세가 어저께 살인한 사건을 언급하였다. 사건이 이미 소문 난 것을 알게 된 모세의 마음속에 큰 두려움이 찾아 왔다. 바로 왕도 모세가 사람을 죽인 사실을 알게 되자 모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 순간 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다. 그렇게 시작된 모세의 광야 생활은 무려 사십년이나 계속되었다.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 르우엘의 딸과 결혼하여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다. 모세는 장인의 양떼를 치며 광야의 사람으로 늙어 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바로 왕은 죽었고 새로운 왕이 등장하였다. 모세의 동족들은 여전히 고된 노동 현장에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모세를 앞장세우셔서 저들을 돌보시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호렙 산자락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에게 찾아 가셨다. 하나님은 천사를 동원하셔서 광야 떨기나무에 사라지지 않고 불이 붙는 환상을 보게 하셨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고 대답하였다. 모세의 나이 팔십 살 때의 일이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의 발에서 신을 벗게 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모세는 그 곳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서 발의 신을 벗었다. 그리고 사십년간 존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으며 살아갔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언약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 했고 상 주심을 바라보며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한 하나님의 사람다운 생을 살다가 갔다.(히11:23-28) 그렇다.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살려면 역사의 중심에서 분야마다 그 분을 두려워하며 그 분 앞에서 스스로 신을 벗는 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하나님은 척박한 역사의 중심에 정의와 공의의 강물이 흐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자기가 판 웅덩이에 스스로 빠지게 하시며 악인들에게 그물을 던지시는 심판의 주님이시다. 이 세상에 영원히 숨길 수 있는 불의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게 살고 부당하게 처신하면 결국 만민이 보는 앞에서 부끄럽게 신 벗겨지는 후회스러운 순간이 찾아오고 만다. 오늘 날 우리가 겪는 나랏일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역사는 살아있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언제나 인생을 공의의 눈으로 감찰하시는 전능자이시다. 다윗은 고백하였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