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22
통곡의 벽 앞에서
늘 사진에서만 대하던 ‘통곡의 벽’을 방문하였다. 통곡의 벽이란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면의 일부를 말한다. 예루살렘의 첫 성전은 BC 957년에 솔로몬 왕의 때에 세워졌다. 그 첫 성전은 느브갓네살 왕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낭실의 두 놋 기둥까지 쓰러트려 끌어가는 수모를 당하였다. BC 586년 남 왕국 유다가 망할 때의 일이다. 성전은 폐허가 되었고 성전의 크고 작은 기물들과 보물들은 모조리 다 바벨론으로 집어 가 버렸다. 성전은 불 태워 졌고 성벽은 헐려 나갔다. 모든 궁실들은 불에 탔고 왕과 귀족들이 사용하던 모든 귀한 그릇들은 가져가거나 부수어 버렸다. 이 사건을 성경은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대하36:17)라고 해석해 주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씀이다. 그 당시 유대의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였다. 21살에 왕위에 올라 11년 동안 왕위를 이어 갔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다.”(대하36:12) 역대하 36장은 남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시드기야 왕 뿐만 아니라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들이 다 같이 크게 범죄하였다. 이방의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혔다. 조상 때부터 여호와께서 보내신 사신들을 통한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사신들을 비웃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욕하였다. 그 정도가 심각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36:16)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다. 수많은 이들이 갈대아 사람들의 칼에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하나님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예언이 모두 다 이루어졌다. 예루살렘 주변의 땅들은 안식년을 누리는 땅같이 황폐한 상태로 칠십년 세월이 흘러갔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하셨다.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라고 명령하였다. BC 538년에 고레스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고레스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대하36:23)며 축복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BC 515년에 스룹바벨이 앞장섰고 포로의 땅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 두 번째 성전을 BC 20년경에 헤롯 왕이 증축하고 개축하였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보면 46년 동안 지었다고 한다. 지금 볼 수 있는 남아 있는 성전의 서쪽 벽의 하부 7단은 헤롯 왕 때 개축된 것이다. 그 헤롯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티토(Titus) 장군과 그 침략군에 의해서 거의 다 무너졌다. 그 중에서 일부 남아 있던 성전의 서쪽 벽면을 후대에 연이어 수축한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티토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의 서쪽 벽면 일부를 남긴 이유는 그렇게 거대한 성전도 모두 다 무너트렸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후대에 조금씩 보수하다 보니 돌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남아 있던 하부 7단의 위 4단은 AD 7세기 때의 우마야드(Umayyads) 왕조 때에 쌓아졌다고 한다. 그 상단에 쌓아 올려진 14단의 비교적 작은 크기의 성벽은 오스만(Ottoman) 터어키 시대 때인 19세기 말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 대체로 점령국의 군주들은 나름대로 유대인들의 성전 중심 신앙을 존중해 주었다. 그러나 헬라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는 BC 168년에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서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렸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유대인 하스모니아가의 반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은 유다 마카베오가 나서서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하는데 이르렀다. 티토 장군의 침략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후 250년 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길이 막혀 있었다. 그 후로 일 년에 단 하루 성전이 파괴된 날을 기념하여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방문 기회를 허락하였다. 우리의 7-8월인 아브 월 9일인 그 날은 솔로몬 성전이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침략당한 날이며 티토 장군에 의해 점령당한 우연히 같은 날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서쪽 성벽’(Western Wall)을 가까이에 가서 대하는 유대인들은 그 날 다 같이 모여 슬프게 울며 통곡하고는 하였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AD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에도 그 지역은 요르단 관할 지역이었다. 그러나 1967년에 6일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의 서쪽 벽에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날 세계의 순례객들이 찾는 그 곳의 널따란 광장 전면을 가리고 있는 서쪽 성벽은 길이가 50m이고 높이가 18m가량 된다. 경사진 산자락에 수평을 맞추어 건축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지면 아래로 17단의 성전 벽면돌이 더 묻혀 있다고 한다. 헤롯왕이 증축하고 개축한 예루살렘 성전은 동쪽 벽이 460m, 서쪽 벽이 485m, 남쪽이 280m, 북쪽 벽이 315m이니 그 크기를 상상하여 보라. 그렇게 거대하게 건축했던 헤롯의 성전을 티토 장군의 침략군이 초토화 시킨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터의 흔적을 방문하는 유대인들의 감격은 다른 이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계에서 그 곳을 찾아 가는 유대인들은 그 벽 앞에서 슬피 울며 통곡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오래도록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돌벽의 틈바구니에 빼곡하게 접어서 꽂아 놓은 기도 제목을 적은 흰색 종이들은 항상 넘쳐 난다. 그 기도 종이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수거해서 일정한 장소에 매장하는 일을 맡아 하는 이들이 따로 세워져 있다고 한다. 통곡의 벽은 AD 691년에 이슬람교도들이 건축한 ‘바위 돔 사원’(Dome of the Rock)과 ‘알 아크사 모스크’(al-Aqsa Mosque)를 둘러싸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바위 돔 사원’ 가까이 까지 방문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예레미야의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애2:11-12)라는 애가(哀歌)가 기억나는 현장이 바로 그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