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21
히스기야 터널 속을 걸으며
귀국 전날에 히스기야 터널 속을 걷는 체험을 하였다. 히스기야 터널은 BC 740년에 바위를 뚫어 만든 것으로 길이가 약 525m에 이른다. 히스기야 임금 때에 이룩된 일이라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 곳은 2750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 여전히 적지 않은 량의 물이 흐른다. 예루살렘 성 밖에서 지하 수로를 연결하여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의 실로암 못까지 연결시킨 대 공사였다. 기혼 샘을 중심으로 그 곁에 예루살렘 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기혼 샘의 역사는 다윗 시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중 강수량이 많지 않은 예루살렘 주변 지역에서는 물이 너무나도 귀하였다. 그런 자연 환경과 지리적인 악 조건 가운데 기혼 샘물은 모든 이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생수의 공급원이었다. 다윗도 왕이 된 후에 기혼 샘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다. 나중에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울 때에도 기혼 샘에서 의식을 가질 정도였다. ‘기혼’(Gihon)이란 히브리어로 ‘처녀의 샘’ 혹은 ‘물을 내 뿜다’는 뜻이다. 수량이 많을 때에는 기드론 골짜기로 시내를 이루며 흘러내리고는 하였다. BC 701년 봄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남 유다를 쳐들어 왔다. 다급해진 히스기야 왕은 방백들과 용사들을 불러서 의논하였다. 성 밖에 있는 모든 물 근원을 막기로 하였다. 기술을 가진 백성들은 모여 들었고 모든 물 근원을 막고 땅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를 막았다. 앗수르의 왕들이 물을 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역대하 3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히스기야 왕의 명령을 받은 백성들은 기혼 샘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 성 안으로 연결하는 수로를 파기 시작하였다. 완전히 포위당하더라도 성 밖에 있는 기혼 샘물을 성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대 토목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공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성 안의 실로암 연못까지 잇는 수로 공사를 마치게 되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하는 일을 형통하게 도우셨다.(대하32:30) 이 공사에 동원된 석공들은 2,500여명에 이른다. 암반을 꿇는 공사는 만만치 않았다. 장정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폭과 2m정도의 높이로 파 들어갔다. 양쪽에서 뚫고 들어가기 시작한 공사는 마주 치는 곳에서 30cm정도의 고도오차로 만날 수 있었다고 하니 기적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S'자 형태로 파들어 가다 보니 533m의 길이를 뚫어야 했다. 직선거리로 하면 315m인데 왜 그렇게 길게 파야 했을까. 당시의 공법으로 어떻게 지하에서 방향을 찾아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을까. 1978년에 지질학자 단 길(Dan Gill)의 연구에 의하여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그 곳에는 사만 년 전부터 형성된 바위 틈 새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석공들은 그 바위 틈 새의 물줄기를 따라서 파들어 가다 보니 직선거리보다 길게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위 틈 사이의 물줄기를 따라 팠기에 성공적으로 파들어 갈 수 있었다는 해석이다. 오늘 날도 기혼 샘물의 맑고 차가운 물이 히스기야 터널을 거쳐서 예루살렘 성 안의 실로암 못까지 흘러들어 간다. 우리 일행은 40분 정도 깜깜한 지하 수로를 걸어서 기혼 샘에서 실로암 못에 이르는 히스기야 터널 전체를 통과하는 체험을 하였다. 깜깜한 지하 바위 틈 새를 걸으며 지난 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룩한 기적의 현장을 보았다. 우리 일행은 무릎 높이의 차가운 물길 속을 걸으며 어디 즈음에선가부터 다 같이 찬송을 연 이어 부르기 시작하였다. 기가 막힌 공명과 함께 감동적인 찬송을 부르며 한 걸음씩 앞 사람의 뒤를 연이어 걷다 보니 실로암 못가의 화창한 봄볕을 만날 수 있었다. 전쟁 발발의 위기 앞에서 사투를 벌이던 놀라운 생명력과 투지와 적극적인 신앙인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는 그 곳은 감동 그 자체였다. 공사에 참여 했던 석공들은 그 역사적인 현장의 체험을 비문으로 새겨서 실로암 못가 쪽의 터널 내부 벽에 설치해 두었다. 그런데 1890년 어느 날, 예루살렘에 살던 그리스 사람이 그 비문을 도굴하여 골동품상을 통하여 팔아 버렸다. 오늘 날은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 비문이 터어키 ‘이스탐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현장에는 나중에 모형을 제작되어 보수하게 되었다. 오늘 날 이와 같은 현장 탐험이 가능해 진 것은 영국의 고고학자 찰스 워렌(Charles Warren)덕분이다. 그래서 시혼 샘 쪽의 히스기야 터널 입구를 연결하는 갱도 이름을 ‘워렌 통로’(Warren Shaft)라고 이름 하였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앞 못 보는 맹인을 만나신 적이 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서 그의 눈에 발라 주셨다.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9:7)고 말씀하셨다. ‘실로암’(siloam)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다. 그 순간에 두 눈이 밝아졌다. 그는 예수님께 돌아 왔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눈을 뜬 것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맹인을 처음 보았던 제자들은 앞을 못 보는 그의 장애와 ‘죄’를 연결하여 질문한 적이 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9:5)는 말씀도 해 주셨다. ‘빛’과 ‘물’ 이 모두는 하나님이 인생에게 허락하신 생명의 공급원이다. 빛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듯이 물이 없이는 생명을 연장 할 수 없다. 기혼 샘물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연결하도록 지하수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룩하게 하신 히스기야 시대의 하나님은 오늘 날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물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