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20
부활이 없다면
우리 일행은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성묘교회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머물렀다. 많은 수의 성지순례 인파가 그 현장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몰려들었다. 지난 이천 년 간의 교회 역사는 골고다 언덕에 인간의 지혜나 예술적인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장식들을 발전시켜 왔다. 성묘교회의 규모와 구조와 식양 그리고 그 섬세한 부조와 장식으로부터 곳곳에 매어 달고 부착한 형형색색의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몇 줄의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그 곳이다. 왜일까. 그 만큼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경배와 흠모의 마음을 담아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복음전파는 허구이며 기독교인의 성지순례도 무의미하게 되고 말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는 사도 바울의 증언을 더욱 힘이 있게 한다. 마태나 마가나 누가나 요한과 같은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한 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날 그 현장에서 목격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령 마태복음의 기록은 이렇다. 안식일 후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장례된 무덤을 보려고 찾아 갔다. 큰 지진이 났고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무덤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다. 그 형상은 번개와 같았고 그 옷은 눈같이 희었다.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자 같이 되고 말았다. 정신을 잃었다. 그 때 천사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말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28:6)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 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 나셨다. 그는 부활하셨다. 예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무서움과 기쁨을 갖고 달려가던 그 여자들의 앞을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아 서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평안하냐” 깜짝 놀란 여자들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28:10)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의 부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였다. 그래서는 무덤을 지키던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고 설득하려 하였다.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하라고 부탁하였다. 군인들은 저들이 시킨 대로 헛소문을 내기 시작하였다. “예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 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가기 시작했다. 성경은 그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마28:15) 거짓된 소문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시키려는 악마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거짓이 진실을 막을 수는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신학자인 김세윤 박사는 그의 책, <복음이란 무엇인가>에서 “부활은 하나님의 행위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깨달아 알고 믿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고 전파하면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이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강조하는가. 복음(福音)을 믿는 자는 구원(救援)을 받게 된다. 이 사실을 부인하고 거부하던 유대주의자 사울이 다메섹 체험 이후에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스스로 복음을 받아 들였고 전파하는데 앞장서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믿게 된 복음이란 무엇일까. 바울은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3-4, 8)고 증언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박해하던 앞잡이였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하는 이방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도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고전15:14-15)고 증언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7-19)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렇다. 만약에 인생이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고 전파하는 기독교인들처럼 불쌍한 자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만일 부활이 없다면 신자들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15:32)고 말하며 세상 욕망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약속도 때가 되면 이루어질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이 순교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은 부활의 복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권면은 옳다. 바울은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