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그 역사의 현장-6
아사 왕 때에 구스 사람 세라가 앞장 선 군대 백만 명이 유다를 쳐들어 왔다. 병거만도 삼백 대였다. 병거란 오늘 날로 하면 탱크와 같은 것이다. 역대하 14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아사 왕은 남 왕국 유다의 제 3대 왕(BC910-869)이다. 아사 왕은 구스의 군대가 쳐들어 온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나가서 싸웠다. 그 곳, 스바다 골짜기에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아사 왕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던 왕이었다. 전쟁 중에 아사 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스의 군대를 치셨다. 드디어 구스의 군대가 도망하기 시작하였다. 아사 왕의 군대가 추격을 시작하자 구스의 군대는 패망하기 시작했고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대하14:13) 아사 왕의 유다 군대는 많은 전리품들을 얻었다. 전쟁이 끝나자 노략한 물건들과 짐승 지키는 천막과 양과 낙타 등 오히려 얻은 것이 적지 않았다. 아사 왕은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 그는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트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자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누렸다. 아사 왕 당시에 나라가 평안했던 이유를 성경은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대하14:6)고 했다. 아사 왕은 앞장서서 견고한 성급들을 유다 땅에 건축하였다. 성곽도 쌓고 망대도 세웠다. 아사 왕은 백성들에게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대상14:7)고 말했다. “아사 왕은 어떤 기도를 드리며 살았을까?” 궁금하지 않나. 역대하 14장 11절에 보면 구스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소식을 들은 아사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내용이 있다. “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와 같은 기도의 내용 후에 전쟁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유다가 아사 왕의 때에 백만 명의 구스 군대를 이긴 힘은 “아사 왕의 기도” 때문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물론 기도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이들은 “아니 기도한다고 뭐가 다 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상황을 통해서 기도의 힘과 기도의 필요성과 기도의 전략과 믿는 자의 간절한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개입에 대하여 방대한 분량의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사 왕은 41년 동안 유다의 왕이었다. 그의 어머니 마아가는 아비살롬의 딸이다. 아사의 믿음은 다윗과 같았다. 다윗은 아사의 고조부이다. 다윗과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대를 이어 왕이 된 아비얌의 아들이 아사이다. 아비야라고도 이름 부르는 아사 왕의 부친은 3년 동안 왕이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은 아사 왕은 유다 땅에서 남색하는 자들을 쫓아내었다. 조상들 때의 우상을 없앴다.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자 태후의 위를 폐하고 어머니가 섬기던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산당마저 완전히 없애지 못한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성경은 아사 왕의 신앙을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왕상15:14)라고 높이 칭찬하고 있다. 또 하나의 골짜기가 ‘라기스 골짜기’이다. 그곳은 이번에 둘러 본 이스라엘의 다섯 군데의 골짜기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라기스에는 이스라엘의 남서쪽 지역을 통제하는 군사적, 행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규모가 큰 성이 있었다. 라기스는 남 유다의 마지막 보루였으며 히스기야 왕과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사이의 전쟁이 있었던 곳이다. (왕하18장) 또한 라기스는 남 유다가 바벨론에 패망하던 BC 586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과 유다의 왕 시드기야 사이에 전쟁이 있었던 곳이다. 더 남쪽으로 달려가서 도착한 곳은 브엘세바이다. ‘일곱 우물’이른 뜻을 가진 브엘세바(Beer Sheva)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계약이 있던 곳이라서 ‘맹세의 우물’이란 뜻도 있다.(창21:22-34) 오늘 날의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에서 네 번째로 큰 교통의 중심이 되는 도시이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12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네게브(Negev)사막이 있고 그 중심 도시가 브엘세바이다. 종종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최북단에서 최남단을 표현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표현하였다.(삿20:1, 삼상3:20, 삼하3:10, 왕상 5:5, 대상 21:2, 대하 30:5) 해발 300m의 언덕으로서 북쪽 둑(bank)을 따라가다가 헤브론 강과 만나는 곳과 가까운 곳인 드넓은 계곡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1969년부터 7년간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 발굴 팀은 브엘세바 유적지에서 BC 4,000년경인 청동기 시대부터 AD16 세기까지의 유적을 발굴해 내었다. 그 곳이 그렇게 오랜 기간 주거지로 선호된 이유는 풍성한 량의 지하수 덕분인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미 아브라함 때에도 깊게 우물을 파들어 가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고 그런 우물의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고대로부터 도로들은 바둑판 모양으로 설계 되었고 행정, 군사, 상업 지구와 거주 지역이 잘 구분되어 있었다. 그 곳의 두드러진 유적 중의 하나는 정교하고 거대하게 지하 암반을 잘 쪼아서 엄청난 규모의 물 저장 시설을 만들었다. 그 곳은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곳이기도 하다.(창21:33) 텔아비브 대학의 고고학 발굴 팀은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제단 사면에 뿔이 달린 돌을 깎아서 만든 제단도 발견하였다. 발굴 팀들은 흩어져 있던 제단 돌을 다시 쌓아서 사방과 높이가 1.6 m인 정육면체 제단을 복원할 수 있었다. 제단의 돌들은 잘 다듬어진 돌들을 사용 하고 그 중 하나에는 뱀이 새겨져 있었고 윗부분의 돌들은 검게 그을려져 제물을 바쳤던 제단이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뱀의 형상을 새긴 돌 제단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시 남 유대에도 혼합종교의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이다. 이 제단은 BC 8 세기경에 남 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의 종교 개혁시기에 파괴된 것으로 여겨지는 돌 제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