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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손에게 가르치라(신6:1-9)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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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11-03 20:41 조회 13 댓글 0
 

                       자손에게 가르치라(신6:1-9)            2024. 11. 3

 

 

한국 기독교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란 성별, 나이,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라는 정의를 대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만약에 이런 법이 제정될 경우 성적 지향이나 종교적 신념을 지지하거나 주장하는 표현이 제한될 수 있다는 위험이 크다. 지금처럼 동성애자가 증가하는 마당에 이런 법이 제정되면 여성 전용 목욕탕에 남성이 나체로 들어가도 ‘나는 외모는 남자이지만 나는 여자다’라고 주장하면 제재할 길이 막히고 만다. 남녀 혼용 화장실이 늘어 날 것이다. 군대 안에서 동성애가 불처럼 번져 갈 것이다. 미국 LA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남학생이 수업 중에 배변을 했다. 선생님이 제지하니까 자기는 고양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별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럴 경우에 “너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고 남자야”라고 선생님이 이 학셍을 가르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미 호주에서는 가정 통신문에 엄마 아빠라는 용어 대신이 부모1, 부모 2라는 용어를 대신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7월 18일, 건강보험 관리 공단에 동성애 혼인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을 대법원에서 전원 일치로 통과시켰다. 2019년 소성욱은 김용민과 동성애 결혼을 했다. 2017년부터 동성혼 관계였던 저들은 1차 기각 후 제 2차 시도에서 대법원에서 인정 받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성혼 부부가 되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면 저수지 물이 터지듯이 세상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노아 때처럼 되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고 말 것이다. 자녀에게 뭘 먼저 가르쳐야 할까. 

 

며칠 전인 10월 말,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31부의 재판장 박준석은 여성 수십명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박씨로부터 사진을 넘겨 받아 허위 영상물을 제작한 강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졸업생들이다. 이들은 2021년 7월부터 서울대 동문 12명 등 여성 61명의 사진을 소재로 딥페이크 성착취물 2000여개를 제작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혐의를 받았다. 

 

질문해 보자. 저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공부를 않헀을까. 과목마다 거의 만점을 받은 이들이다. 요즘 지방 대학에서는 소위 스카이 대학에 전교에서 한두명 합격도 어렵다. 어쩌다가 서울대학에 입학하는 경우에는 고등학교 정문에 현수막을 내건다. 가족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가 들썩거린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저들 두 사람은 40대 초반 한창 나이에 10년씩 감옥에 들어앉아 있게 되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라고도 가르쳐야 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한다. 세상을 어떤 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은 가르침의 책이다. 십계명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 어떤 태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계명이다. 신명기는 모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남긴 세 편의 설교를 담고 있다. 주전 1407년의 일이다. 여호수아와 갈렙 이 외에는 20여세 미만의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모세는 지내 온 동안의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회고 하였다. 남아 있는 세대가 장차 살아갈 미래의 역사를 조망하였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의미를 재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신앙 생활의 규범을 유언으로 남기고자 하였다. 

 

우리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의 말씀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모세는 신명기 5장에서 다시 한번 더 십계명을 준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왜일까. 십계명의 준행으로부터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의 실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손에게 가르치는 목적은 분명하다. 그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면 무엇하나. 지켜 행할 때에 복이 되는 것이다. 신명기 6장 1절을 보라.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라고 하였다. 가르칠 뿐만 아니라 배운 것을 행해야 한다는 강조이다. 무엇을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강조하고 있는가.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敬畏)하도록 가르치라.

신앙생활의 바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이다. 그렇지 않나.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감정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아 알고 믿을때에 자연스럽게‘경외심’이 생기는 것이다. 신명기 5장 29절에도 보면, 하나님께서는“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당대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이 영원히 복 받는 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길이다. 모세는 신명기 6장 2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들과 손자들이 평생에”그렇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할 때에 너의 날이 장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 중의 하나가 예배 생활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만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 그렇지 않나. 예배란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이처럼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도 간에 문안하며 봉헌 생활을 계속한다. 이와 같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 각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서로가 확증하는 것이다.

 

주일에 단풍놀이 가고 싶은데 다 가고, 놀러 갈 때 다 가고, 친척 잔칫집에 다 찾아다니고, 아니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집안에서 빈둥빈둥할 수 있다. 아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를 요구하신다. 신명기 5장 12절을 보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15절 후반부에 보니까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기본이 안식일 즉 주일 예배 생활인 것이다. 신자가 신자와 결혼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첫째가 예배 생활이다. 물론 무교회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다. “난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고 성경 말씀도 믿지만 교회는 않다니겠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주장일 뿐 주님의 기대하시는 바가 아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가는 곳곳에서 하나님 앞에 돌 단을 쌓았다. 돌 단을 쌓았다는 말이 하나님께 예배했다는 말이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7절에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라고 하였다. 8절에도 보니까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우상을 숭배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세상 낙에 깊이 빠져서 지내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부모 거역,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거, 탐심에 빠져서 살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생활을 자기 자신이 행할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 가르쳐 행하게 하라는 강조인 것이다. 신명기 4장 10절을 보라.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 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리라 하시매”라고 하였다. 

 

하나님 경외하는 생활을 자신도 배우고 자녀에게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자의 기본 태도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예배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겠는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의 첫 찬송이 무엇인가. 찬송가 1장이 무엇인가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게 찬송 성부 성자 성령 아멘”이와 같은 찬송을 끊임이 없이 부르고 또 부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작이다. 개인과 가정의 가족이 어른, 아이 다 같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 찬송하며 높이고 또 높이며 경배하고 또 경배하며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은혜가 우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라.

3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행하라’라는 말씀이 무엇인가. “지켜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다. 가령 신명기 4장 1절을 보라.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라고 하였다. 들을 뿐만 아니라 준행하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많이 듣고 많이 알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켜 행할 때에라야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것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 신명기 4장 2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라고 하였다. 더하거나 빼지 말고 지키라고 하였다. 신명기 4장 3-4절에 보니까 그 동안 바알브올 즉 우상을 섬긴 백성들은 하나님 안에서 멸망당하였고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만 오늘까지 생존하였다고 하셨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이라는 강조를 주목해 보라.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붙어서 살아가는 생활이다. 제 맘대도, 제 멋대로, 제 하고픈대로 사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 꼭 붙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신명기 4장 6, 13, 14절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너희에게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잘 지켜 행하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우리는 얼마 전에 느헤미야서를 날마다의 묵상 분량으로 묵상하였다. 느헤미야 마지막 장인 13장에 보면 예루살렘 성곽을 중건한 총독 느헤미야의 신앙 개혁 운동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했던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이 가만히 섞여서 살아가려는 것을 알고 저들을 분리하였다.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도비야의 악하고 타락한 모습을 보고 그의 세간살이를 모두 다 내어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하였다. 례위 사람의 몫을 주지 않아서 세상에 나가서 농사하며 사는 것을 알고는 레위 사람들의 본래의 직임을 다하도록 하였다. 안식일에 장사하고 음식을 파는 모습을 보고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안식일을 안식일답게 지키도록 하였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스돗, 암몬,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솔로몬이 나중에 이방의 여인들로 인하여 타락한 것을 언급하였다. 그리고는 저들을 책망하고 저주하였다.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게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13:27)고 말하며 책망하였다. 그 앞에 25절에 보니까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 털을 뽑으며” 책망하였다. 

 

신앙생활은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일일이 지키는 것이다. 회개란 구체적으로 고치고 달라지고 변화되고 개선되고 주님이 기대하시는 말씀의 수준으로 회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그를 느헤미야 곁에서 쫓아내 버렸다. 그리고는 이방 사람을 떠날 것과 자신들을 깨끗하게 하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서 각각 자기 일을 맡게 하였다”이것이 회복이고 이것이 개혁인 것이다. 신앙 생활은 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서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할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가령 신명기 5장 32-33절을 보라.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라고 하였다. 

 

오늘 본문인 신명기 6장 3절에서도, 복을 받게 하시고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 붙어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 살아서 이런 은혜와 증거를 체험하고 간증하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유일(唯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증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보이는 내 곁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바알 숭배자들의 바알, 아세라 숭배자들의 아세라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이 역사의 범사를 주관하신다.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나의 생명, 나의 그 모든 것이 다 주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와 같은 하나님 사랑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전인격으로 사랑하는 말씀이다. 뜻을 다한다는 것은 영혼과 생명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힘을 다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심으로 몸과 마음의 힘을 다 모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되 “ 전인격적으로 생명을 다하여 힘을 쏟아서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마태복음 10장 37절의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시다. 물론 우리가 부모형제 배우자 자녀를 사랑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식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사랑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것은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아들딸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물론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는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강조이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셨다. 내 주변의 사랑하는 가족, 내게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하고 다 귀하고 다 필요하지만 하나님 사랑보다 더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시다. 여기서 나아가서 순교도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열왕기상 18장의 엘리야와 바알 숭배자 450명과 아세라 숭배자 400명이 갈멜산 정상에서의 대결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섬길 자를 택해야 한다. 사랑할 자를 택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재물을 사랑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사랑한다. 우상 숭배와 미신이 가득한 세상이다. TV를 켜면 연예인들이 무속인 복장을 하고 나와서 무속인 행세를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늘 날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실존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6절에 보니까 “오늘 내게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라고 하였다. 7절에 보니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였다. 가르칠만한 환경을 어려서부터 제공하라고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다. 

 

음악 미술 체육, 영어, 중국어, 컴퓨터, AI 교육 다 필요하지만 우리 자녀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주 안에서 잘 되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축복을 간구한다. 아멘

 

 

찬양 “아버지 사랑합니다.”를 다 같이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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