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으로 도망하라
바다는 늘 위험하지만 산(山)은 그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선조들은 알려지지 않은 대륙을 탐험하기 위하여 두려움을 무릎 쓰고 먼 바다로 나아갔고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리고 해상 무역을 위하여 바다 넘어 낯 설은 세계를 향한 항해를 계속해 왔다. 그에 비하면 실은 산이 안전하다. 1896년에 일본, 요시하마(吉浜)의 산리쿠(三陸)지역에 대지진이 있었다. 1,000여명이 살던 마을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큰 슬픔과 재난이 임하였다. 24m 높이의 쓰나미가 평온하던 해변 마을에 덮치자 주민 200여 명이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37년 후인 1933년의 대지진 때는 9m 높이의 쓰나미에 17명의 마을 사람들이 휩쓸려갔다. 같은 지역에서 한 세대 만에 이런 재난을 반복적으로 겪게 된 것이다. 그 후 그 마을 촌장 우시타로(柏崎丑太郞)씨가 온 마을 사람들에게 높은 산언덕으로 이주하자고 주장하였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던 어부들이 대 부분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바다가 멀어지면 물고기 잡이가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우시타로 촌장은 일정한 지역에 비석을 세웠고 “이 보다 낮은 곳에는 집을 짓지 말라.”고 홍보하였다. 그 후 78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3월 11일에 다시 쓰나미가 일본 동부 지역의 해변을 강타하였다. 그로 인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14,000명 이상의 정든 이웃들이 순식간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 때 그 쓰나미의 속도는 시속 500㎞ 였다고 한다. 17m 높이의 쓰나미가 해변에서 내륙으로 1㎞까지 할퀴고 지나갔다. 해변의 마을들마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요시하마의 산리쿠(三陸)마을 주민들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요시하마는 도쿄에서 태평양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230㎞ 거리에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지나 다시 300㎞ 북쪽으로 더 달려야 만나는 해변 마을이다. 그 곳은 조상 대대로 전복(全鰒)이 유명한 평온한 어촌 마을이다. 주변의 다른 마을들은 건물이 수십 채씩 부서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 마을은 집 두 채 부서진 게 전부였고 인명 피해도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 높은 산지로 이주해야 한다고 고집하던 우시타로 촌장의 판단을 따라 산언덕에서 살면서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며 지내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 세월이 지나며 설마라는 생각을 갖고 서서히 바다가 가까운 마을로 다시 내려가 살던 이들은 쓰나미의 엄청난 피해를 이길 수 없었다.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는 진도 1.0 이상의 지진이 매년 평균 600여 차례 이상 일어난다고 한다. 대지진 직후에는 일 년 동안에 8,112차례의 여진(餘震)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 지진조사위원회는 “앞으로 30년 안에 도쿄 인근에서 직하형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70%다.”라고 발표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16)는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셔서 하신 종말에 관한 교훈들 중의 일부이다. 상식적으로 산이란 재난이나 전쟁의 때에 피신하여 자신을 보호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주후 68년에 베스파시안(Vespasian)장군이 앞장선 로마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포위망이 뚫린 틈을 이용해서 유대인들 중의 그리스도인들이 요단강 계곡의 베레아 지역인 펠라(Pella)라는 산악 지역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하였다. 왜 산으로 피신하라고 하셨을까.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산이란 에덴동산을 생각할 수 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이 거니시던 완전한 평화와 행복이 보장된 동산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동산에서 불순종하여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세상 중에서 유리방황하는 인생살이를 살게 되었다. 산이란 종말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사야 2장 2-3절에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는 말씀이 있다. 어느 민족이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산이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산을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의 근원지로 생각하였다. 다윗은 시편 11편 1절에서,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라고 고백하였다. 노아 시대 때에 홍수 심판이 있었다. 일곱 달이 지나자 땅의 물이 감하기 시작하였고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다. 모세는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것과 같은 환상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세월이 흐르고 하나님은 그 호렙산 꼭대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전해 주셨다. 하나님은 느보산에서 모세의 생을 마감하셨다. 다윗의 소원을 따라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한 곳도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정상이었다. 아합 왕 때에 엘리야가 하나님의 불의 임재를 체험한 곳은 갈멜산 꼭대기였다. 예수께서 우리가 아는 팔복을 비롯한 산상 수훈을 선포하신 곳도 산이었다. 예수는 저녁마다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고 아침이면 산에서 내려 오셔서 천국의 복음을 비유로 전하시며 각색 병자들을 고치셨다.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 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신 적이 있으셨다. 그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는 신비를 보이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기도하기 위하여 찾으시던 곳은 감람산이었다. 예수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곳도 예루살렘 성 밖의 해골이란 뜻을 가진 골고다산언덕이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배하였다. 하나님은 헐몬 산의 이슬이 시온의 온 들판에 내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 헐몬 산의 이슬로 하여금 들판에서 자라나는 풍성한 풀들을 양과 소떼가 뜯어 먹게 하셨고 각종 열매들이 넘쳐 나게 하셨다. 이처럼 산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특별한 장소요 축복의 발원지였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에 주께 부름 받고 쓰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도 대개가 산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조용한 산에서 기도하고 산에서 주의 임재와 부르심을 체험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의 삼각산, 서울과 과천과 의왕과 성남의 네 경계를 잇는 청계산, 강화도의 마니산, 충남 공주와 대전 사이의 계룡산, 경상북도 김천의 용문산 등은 오래도록 성령 체험과 기도의 응답을 원하던 이들이 즐겨 찾던 “기도(祈禱)의 산”이었다. 경상남도 마산의 무학산에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무릎 꿇고 기도하던 넓쩍한 기도 바위가 있다. 그 바위는 십자형으로 금이 가 있어서 십자 바위라고 부른다. 신앙의 선조들은 거룩한 곳이 더럽혀지거나 성전이 유린당했을 때에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꼭대기에 올라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고는 하였다. 그러므로 산으로 도망하는 것은 절대로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의 자리를 찾아 가는 신앙 회복의 처소가 산(山)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땅에 40일 간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신 곳도 감람산이었다. 제자들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