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하는 진리
미국에는 개인을 기념하는 두 번의 국경일이 있다. 그 하나는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 기념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기념일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에 미국 의회는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기념일로 정하였다. 그러면 미국 역사에 있어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누구이기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일까. 1963년 8월 28일, 미국은 노예 해방 100주년을 맞아 워싱턴 D. C의 아브라함 링컨 기념관 앞에 수많은 유색인종들이 몰려들었다. 그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연설하였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치는 그의 연설은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하게 하는 불을 지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명의 자녀들을 비롯하여 이 땅의 후손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닌 품성에 따라서 평가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꿈 말입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목사였던 그는 25살에 담임 목회를 시작하였고 보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주목 받던 인물이었다. 1963년, 나이 34살 때의 그의 연설은 모든 미국 민들을 감동 시켰다. 그는 적절한 성경 구절의 인용과 독립 선언서와 헌법의 내용을 거론해 가며 힘차게 연설하였다. 그의 신념에 가득 찬 자유를 향한 연설은 노예 해방 후에도 1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막혀 있던 흑백차별의 벽을 허물어가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 다음해에 그에게 평화상을 수여하였다. 그가 앞장 선 1965년의 평화 대행진은 미국의 유색 인종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하게 하였다. 1967년에는 베트남 참전 반대 시위에 앞장섰다. 그 다음 해인 1968년,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탄에 맞아 39살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가 죽임을 당하던 그 날도 그는 부당하게 차별 대우를 받던 흑인 미화원들의 파업 현장에 나섰던 길이었다. 세월은 흘러갔고 2009년,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유색 인종 출신의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세웠고 그는 4년 후에 재선(再選)되었다.
기독교 복음의 힘은 자유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인간의 삶에 자유를 선물한다. 기독교의 복음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개인과 가정과 부족과 국가와 민족 안에는 진리의 자유가 강처럼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 무엇엔가 결박되어 살아가는 불행한 이들이 적지 않다. 결박의 원인이 외부적인 압력이나 핍박에 의한 것이든 혹은 내부적인 갈등에 의한 것이든 그 피해와 악의 영향은 심각하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독재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기에 평생 불행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가기도 한다. 쉽게 청산되지 않는 제도적인 압박과 불평등과 시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어떤 경우에는 종교적인 무지와 어리석음에 결박당해서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져있는 ‘자유로운 삶’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불쌍한 이들도 있다. 자폭 테러와 상대방의 목을 참수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 IS의 모습은 인간의 탈을 쓴 악의 집단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 같은 경우를 보라. 인도의 천대 받는 수드라 계급의 백성들과 불가촉천민은 2억 5천만 명에 이른다. 저들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서 평생토록 그 억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 순환 속에 갇혀서 불행한 나날을 살아간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브라만교에서 영향을 받았다. 인도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가지 계급이 있고 그 아래에 최 하위계급으로 ‘달리트’ 혹은 ‘파리아’라고 지칭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계급이 있다. ‘카스트’(caste)라는 말은 포르투칼어로 가문이나 소속을 의미하는 ‘순수한 혈통’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카스트’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인도를 점령한 영국에 의해서이다. 그 이전에는 색상을 의미하는 ‘바르나’(varna)라는 제도가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의 반상제도를 비롯하여 백정이나 갖바치에 대한 천대는 심각하였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에 큰 차이가 없었다. 유럽에도 오랜 기간 동안 봉건신분제도가 득세했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1940년대에 법으로 금지되었으나 실상은 그 악습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신분간의 이동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나마 타 계급 간의 결혼률은 5%정도이다. 계급 간의 담을 넘으면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중에서도 불가촉천민 출신의 암베드카르(Ambedkar, 1891-1956)는 독립한 인도의 초대 법무장관까지 지냈다.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해 영국 런던 정경대에서 법학박사를 받고 그런 지위에 올랐었다. 그 후로 인도 10대 대통령(1997-2002)을 지낸 라만 나라야난(Raman Narayanan, 1920-2005)도 불가촉천민 출신이다. 그는 인도 서남부의 케랄라주(州) 출신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의 영향에 의해서 비교적 신분 차별이 덜 심한 곳이었기에 그런 인물의 배출이 가능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정치적으로 어쩌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가촉천민에 대한 인도인들의 편견은 제도적으로 그 골이 깊다.
역사적으로는 브라만교를 믿는 아리아인이 인도를 침략하면서 힌두교와 불교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아리아인은 B. C 2,000년 이전에 지금의 중앙러시아남부와 카자흐스탄 등의 지역인 흑해와 카스피 해 북쪽에 살았다. 그들은 인도의 원주민인 드라비다에 비해 혈색이 백인에 가까웠다. 그래서 브라만계급의 상징이 백색이다. 즉, 백인 계열의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침략하여 상류층을 장악하기 위하여 만든 제도가 카스트제도로 자리 잡은 것이다. B. C 1,300년경에 브라만교를 믿는 아리아인들이 인도 북부를 차지하였다. 브라만교는 현생은 단지 순간일 뿐이며 바르게 살지 못하면 내세에 돼지 같은 천한 짐승으로 환생(還生)한다고 믿었다. 결국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브라만교를 믿는 침략자가 상위계급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하층민으로 지배하기 위한 계급제도로 자리 잡았다. 아리아인은 유목민족이었고 드라비다인은 농경민족이었기 때문에 브라만교를 믿게 하여 계급에 복종하게 하고 드라비다인들의 생산물을 착취하였다. 인도 카스트제도의 최상위 브라만계급은 신을 대하는 사제와 학자들이고 그 다음의 크샤트리아는 왕, 귀족, 무사들이며 바이샤는 농사, 수공업자들이고 수드라는 하인 등의 천한 일에 종사하는 육체노동자로 형성되어 있다. 16%의 불가촉천민을 포함한 수드라의 인구 비례는 무려 77%에 이른다. 저들은 상위 계급 민들과 우물조차 같이 쓸 수 없으며 길에서 상위계급의 사람과 피부만 스쳐도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불가촉천민은 남의 집 화장실의 배설물을 퍼내거나 시체를 다루는 일 같은 가장 더럽고 험한 일을 도맡아하면서도 매우 적은 박봉을 받아 몹시 궁핍하게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풍성한 자유를 잃어버린 채로 악한 습관이나 무질서한 생활이나 과욕이나 탐심으로 인해서 마땅히 매 순간 누리며 살아야 할 축복의 기회를 놓치고 불행의 늪에 빠져 들어가기도 한다. 술, 담배, 마약, 놀음, 동성애, 음란 등 방탕한 생활 습관 등의 해악이 인간의 자유를 좀 먹어 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하게 선포하였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그렇다. 사람에게 완전하고 영원한 자유를 공급하는 힘은 복음(福音)의 진리(眞理)이다. 진리란 곧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체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원하고 행복한 진리의 샘이 흘러넘치게 된다. 그것이 구원과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