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과 인륜
이슬람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의 대원인 21살, 알리 사크르는 지난 1월 7일 IS가 점령한 시리아 락까에서 어머니 레나 알-카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했다. 45살인 어머니가 근무하던 우체국 건물 인근에서 그런 일을 자행하였다. 어머니는 “미군 주도 연합군의 공습이 IS를 쓸어버릴 수 있다.”면서 아들에게 탈출을 권했다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 말을 IS에 그대로 전했고 IS는 공개 처형을 명령했다. 최근에 한 젊은 여성은 IS 점령 아래서의 도시 생활을 담은 글을 썼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았다.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한 2014년 이후 ‘동성애’와 ‘배교’(背敎)등으로 살해된 사람이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가 후배를 30여 분간 무참하게 폭행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또한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교사 곁에 몰려든 학생들이 빗자루로 때리거나 머리를 밀치고 욕설을 퍼 붓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세상이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다. 한 마디로 윤리가 무너진 패륜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패륜’(悖倫)이란 국어사전의 정의를 빌리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이라고 하였다. 동서고금의 그 어느 나라백성이든지 인륜(人倫)이란 것이 있지 않나. 아무리 야만적인 문명이라도 그 부족들만이 지켜 가는 생활 윤리가 있을 것이다. 구태여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말하면 식상해져 버린 세상이 슬프게 보여진다. 과거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권위를 한 선상에 놓고 대하던 시절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점점 그런 권위가 무너지고 질서가 인정되지 않는 세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돈이면 다 되고 성공, 출세, 권력, 명예, 풍요, 부, 화려함과 사치, 명품, 외모 지상주의뿐만 아니라 ‘웰 빙, 웰 빙’하며 나 하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져만 가고 있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지 내 자식만 성공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의 탐욕이 무서운 독버섯처럼 번져 가고 있다. 우리가 성장하던 어린 시절의 농촌에는 이웃 간에 도란도란 살아가는 정스러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의 도심 생활은 얼마나 점점 삭막해져 가는가. 이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성이 더욱 극악해져 가고 있다. 그런 패륜한 일이 종교적인 신념에 붙잡히고 나니 심지어는 자기 어머니라도 살해하는 참극이 벌어진 것 아닌가. 또한 예전 같으면 그림자라도 밟지 않는다던 자기 스승을 때리거나 조롱하는 일을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성경에도 패륜적인 사건들은 적지 않게 기록되어 있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저들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을 보라. 창세기 6장 이후의 홍수 심판 사건은 그 당시 인간의 타락상이 얼마나 심각하였나를 실감나게 증거하고 있다. 그 때의 인간상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성경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으로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창6:6-7)라고 까지 기록해 놓았다.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실망을 이보다 더 처절하게 기록한 성경 구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과 인간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그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 것을 보셨다. 그리고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6:3)고 탄식하셨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이삭’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소돔과 고모라 성을 벗어난 롯의 두 딸들이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여 모압과 암몬의 조상들을 낳은 사건, 야곱이 형 ‘에서’를 따돌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며 축복 기도를 받은 사건, 야곱의 배 다른 10명의 아들들이 작당하여 들판에서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의 장사꾼들에게 팔아 버린 사건, 요셉을 팔아 버린 10 명의 형제들이 20여 년 간 아버지 야곱을 감쪽같이 속이고도 시치미를 떼고 한 장막에서 살던 세월,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창기처럼 대하고 그녀를 통하여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은 일, 히위 족속의 추장 세겜이 야곱의 외동딸 디나를 강간한 사건, 야곱의 큰 아들 루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사건, 히브리 노예의 아들들인 또래들이 죽어 갈 때에 어떻게 살아남아서 애굽의 바로 왕궁에서 성장한 모세가 40살에 왕궁 밖에 나갔다가 동족과 싸우던 애굽 사람을 처 죽인 사건, 가나안 정복의 엄숙한 점령 전쟁의 때에 전쟁 명령을 어기고 금과 은과 시날 산의 외투를 감추었다가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고 돌에 맞아 불태워 죽임을 당한 아간의 범죄사건, 삼손의 타락 사건, 임금 다윗이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전쟁의 일선에 보내서 죽게 한 사건, 지혜의 왕으로 출발했던 솔로몬이 나중에 이방의 처첩을 맞아 들여 하나님을 떠난 사건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가 아닌가.
패륜한 사건의 절정은 예수의 때에 일어났다. 제자로 불러서 삼 년 간이나 살림살이를 맡겼던 가롯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말았다. 결국 예수께서는 로마의 병정들에게 끌려가서 심문 받고, 재판 받은 후에 십자가에 죽고 말았다. 만약에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땅에 기독교의 복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패륜한 사건 중에 또한 빼어 놓을 수 없는 일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께 대하여 등을 돌린 배반 사건이 아닐까. 베드로가 누구인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라는 신앙고백을 했던 주인공이 아닌가.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는 얼마나 엄청난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나. “너는 베드로라 내가 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8-19) 그런 대단한 축복의 말씀을 받았던 베드로인데 예수를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도망가 버린 적이 있었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죽으시던 현장에 평소에 큰 소리 치던 베드로는 없었다. 그는 그 날 그 시간에 어딘가로 도망가서 불안에 떨며 숨어 있었다. 그런 그를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 주셨다.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베드로가 예수의 승천 후에 기도하던 무리들 가운데서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 복음을 증거 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성령 받은 베드로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2, 38)라고 복음을 전하였다. 여기에 대답이 있다. 패륜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세상을 치유하는 길은 오직 성령을 받는 길 뿐이다. 성령을 받아야 인륜을 회복하게 되고 성령이 임해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성을 회복하게 된다. 이러한 성령의 바람이 국경 너머에도 불고 타종교의 담 너머에도 불어야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선포하셨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