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보고 길 찾기
지도(地圖)는 실제의 크기를 축약한 지형의 그림을 보고 방향과 거리를 측정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 공간의 별 자리와 땅과 바다의 표면과 바다 속의 그림을 그려서 생활에 활용하여 왔다. 인류는 땅의 지도 보다 하늘의 지도를 더 먼저 그리기 시작하였다. 사료에 따르면 기원전 16,500년경에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베가, 데네브, 알타이르의 별 그림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된 지도이다. 에스파냐의 엘카스틸로 동굴에서는 기원전 12,0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쪽왕관자리의 천문도가 발견되었다. 동서고금의 인류는 제 각기의 문명을 발전시켜 오면서 끝없이 새롭고 정교한 지도를 그려 왔다. 요즘이야 최첨단의 과학 발전에 따른 네비게이션이 건물과 골목길 까지도 구석구석마다 컬러 입체로 사진을 보듯이 안내 하지 않나. 서양의 경우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의 학자들은 지구는 둥글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기하학적으로 구체(球體)가 가장 완벽한 형태이며 지구도 그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적 근거와 물리적인 증거를 추가하여 이를 지지하였다. 이후 여러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둘레와 직경의 측정을 시도하였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다가마 등에 의해 새로운 항로가 개척되면서 지리 정보의 수요가 급격이 늘어나 지도제작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특히 금속활자와 동판 인쇄는 이전의 목판 인쇄보다 훨씬 정교한 지도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유럽의 지도 제작기술은 식민지 개척과 함께 빠르게 발전 하였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지도를 그려 왔으나 기록이 별로 없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지리지와 벽화 등을 통해 당시 지도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정도이다. 평양 부근에서 발굴된 4세기경의 고구려 벽화속의 지도로 미루어 당시에 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1861년의 완성본이니 한 참 후대의 일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지도의 발전사는 다양하다. 초등학교 시절에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가 지도였다. 인간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본 듯이 잘 그려낸 지도를 보면 인간의 입체적이고 섬세한 관찰과 측량과 그 업적이 참으로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던 어렸을 적 기억이 새롭다. 연신내 지하철역에서 전도를 하고 있는데 70대 초반의 부부가 어디를 찾으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저기 저 지도를 보면 되지 않겠어요.” 하고 말하며 대형 안내지도 판 앞으로 다가 가고 그의 남편이 뒤 따라 가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지도 보기에 앞서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라서 눈길을 끌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을 찾아 가는 방법 중에 누구에게 물어 보는 방법도 있고 지도를 들여 다 보고 직접 찾아 갈 수도 있다. 히브리서 1장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라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성경은 조상들 대대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다. 성경에 반복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뜻이 무엇인가. 저들 신앙의 조상 대대로 그 당시마다 역사하신 하나님의 현존(現存)을 증거 하는 말씀이 성경의 큰 분량을 차지하지 않나. 신명기에 보면 반복하여 “조상의 하나님”(the God of your fathers)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마치도 성경은 지도와 같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조상 대대로 어떻게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셔서 인간의 범사를 다스려 오셨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에녹과 노아,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열 두 아들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되짚어 볼 수 있다. 성경을 대하다 보면 지도를 따라서 인류의 역사를 기행 하는듯한 신비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신앙의 선조들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성서의 흔적들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시대의 문화, 풍습, 언어, 음식, 동식물, 기후, 자연의 변화, 전쟁을 비롯하여 개인과 가족, 족속과 지파,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면모들을 입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홍수 시대의 노아, 신앙의 조상으로 부름을 받았던 4천 년 전의 아브라함, 히브리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 살이 하던 시대에 호렙 산에서 부름을 받은 모세, 가나안 정복 시대의 여호수아, 사사 시대의 기드온과 삼손, 왕정기를 열어 가던 사사 시대 말기의 사무엘, 평범한 이방의 젊은 모압 과부 룻이 보아스를 만나 다윗의 증조모가 된 이야기, 임금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걸출한 선지자들의 일화 등은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의 손 길 안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한 장의 지도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그러므로 성경은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한 권의 고문서(古文書)가 아니다. 성경은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살아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진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남달랐다. 물론 이렇게 주장하면 4대강 문명을 중심으로 인류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주장은 서로 엇갈릴 것이지만 말이다. 최소한 기독교 역사관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그 앞에 하나도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고 하였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피하지 못한 인류는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던 대상이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이외의 저들은 인생의 지도 보기에 실패한 자들이었다. 성경에는 그와 같은 안타까운 기록들이 적지 않다. 아브라함을 따라 나섰으나 나중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의 풍성함만 좋아하고 갈 길을 선택하였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롯, 뒤를 돌아 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처,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고 모압과 암몬 조상의 첫 씨를 낳은 롯의 패륜(悖倫)한 두 딸들,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언약의 길을 걷지 못했던 야곱의 형 에서의 이야기, 재물에 눈이 가려 져서 언약을 성취해 가던 거룩한 전쟁인 아이성 전투 중에 몰살당한 아간의 가족 이야기, 대단한 사사였으나 나중이 불행해진 사사 삼손,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었으나 40년 왕정기의 마지막을 참담한 불행의 내리 막 길로 치달았던 사울 임금과 세 왕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블레셋의 전쟁 승리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저들은 신앙의 눈으로 인생의 지도 보기에 실패한 이들이 아닌가. 2010년 남미 칠레의 광부 33명이 69일 만에 갇혀 있던 지하 700미터 깊이의 갱도에서 구조 되었다. 그런 일을 성공적으로 해결 해 내는 땅 속 갱도 찾기 기술은 700미터 거리에서 파리를 쏘아 맞추는 정도의 확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구명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 그와 같은 기술 또한 땅 속의 지도 보기와 같은 첨단 과학의 열매가 아닌가. 사람들은 “어떻게 2천 년 전에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에 죽은 예수가 나를 구원 할 수 있느냐”고 항변한다. 의심하는 이들에게는 대답이 없다. 그러나 예수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인생의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지도와 같은 분이다. 그 분은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는 말씀 속에 인생이 영원한 본향 집을 향하여 찾아가는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지도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