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이보다 더 큰 사랑 2015. 12. 27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5-12-26 21:03 조회 14,338 댓글 0
 

이보다 더 큰 사랑

 

 

계모가 두 살 난 여자 아이를 학대하여 죽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 계모는 20년 형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친 아버지와 동거녀가 11살 난 딸을 2년 동안 집안에 가둔 채 제대로 먹을 것도 주지 않고 방치한 비정한 소식이 송년의 때에 온 국민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지난 해 일 년 동안의 국내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15,000건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미담도 전해졌다. 43살의 탈북 여성이 27살의 간경화로 사경을 헤매던 같은 탈북 여성 후배에게 자신의 간 70%를 이식해 주어서 목숨을 건져 냈다. 세상은 이처럼 언제 어디에서나 어둠과 빛이 공존한다.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가정의 기초는 사랑이다. 가족은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보다 먼저 가정을 만드셨다. 에덴의 아담과 하와로 이루어진 부부가 가정의 출발이다. 저들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 하와와 아담의 불순종, 가인이 동생을 죽인 살인 등 인간의 역사는 죄 가운데서 출발하고 말았다. 이 첫 아담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오신 둘째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도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나사렛의 성장기를 보내셨다. 예수의 아우들은 맏형이신 예수의 보호와 사랑 가운데서 자라났다. 그 아우들 중에 야고보나 유다 같은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셨다. 이처럼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속(救贖)하시는 사랑의 완성이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평화와 화목과 치유와 일치가 이루어졌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증거이다. 사랑은 어둠과 죽음까지도 이기는 능력이 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 남의 생명을 구하려 하겠는가.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3-14)고 하셨다. 자기 간의 70%를 제공한 그 탈북 여성은 수술 4시간을 앞두고 SNS에 올린 글에서 하나님 아버지, 아무 탈 없이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되도록 도와주세요. 간경화 걸린 저 애, 모든 걱정 털어버리고 일어서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두어 주 전에는 탈북자 인터넷 사이트에 두렵고 떨렸다. 무서웠다. 그러나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목숨 걸고 힘들게 찾아온 생명이 촛불처럼 스러져갔을 거였다.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내 간밖에 없는 게 괴롭다.”는 솔직한 심경도 밝혔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이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사람이 이웃에게 떡 한 덩어리나 물 한 대접이나 옷 한 벌을 나누며 살 수 있다. 혹은 병든 이를 돌아보거나 옥에 갇힌 이를 찾아가 위로 할 수 있다. 예수께서도 그런 사랑의 실천을 귀하게 여겨 칭찬하셨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 비유의 내용에 보면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고 교훈해 주셨다. 예수는 선행하지 않은 자들은 영벌에, 사랑을 실천한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25:45-46)고 경고하셨다. 물론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 알고 믿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춘향전에 보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먹던 변 사또를 책망하는 암행어사 이몽룡이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시민루락 가성고처원성고)라는 시를 읊었다. 그 뜻은 금 항아리 안에 담긴 좋은 술은 천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고혈이라. 촛농 떨어질 때 백성눈물 떨어지고, 가무소리가 들리는 곳에 원성도 높더라.”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춘향전의 남자주인공 이몽룡은 조선조의 광해, 인조 때의 실존인물인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동서고금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에나 탐관오리(貪官汚吏)는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뿌리 째 뽑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죽이고 빼앗고 도둑질 하는 세상보다 나누고 돌보고 베푸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페이스 북의 창업자이고 최고 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1984년생이니까 올해 31살이다. 그는 최근에 딸에게 쓰는 편지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아빠가 페이스 북 CEO로 일하기는 하겠지만 이런 문제들은 너무도 중요해서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단다. 다음 세대 모든 어린이들의 잠재력과 평등 증진을 위해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Chan Juckerberg Initiative)를 만들어 교육 증진, 질병치료, 보다 강한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자신과 아내 프리실라 챈이 갖고 있는 페이스 북 주식 99%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규모는 우리 돈으로 52조에 해당한다. 귀한 일이다. 이처럼 모은 재물로 좋은 일을 하고, 자기의 경험이나 지식이나 전문적인 기술을 통해서 남에게 선한 봉사를 하며 이웃을 섬기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중에서도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이웃에게 나누거나 생명을 바쳐서 남의 목숨을 건져 내는 일은 얼마나 엄숙하고 숭고한 일인가.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는 복음과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순교자(殉敎者)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기철, 손양원 같은 분들처럼 말이다. 나라가 위기를 겪게 되면 순국자(殉國者)가 나오고, 직장이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기업을 되살려 보려는 충성된 사원들의 미담이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1997, IMF 금융 위기를 맞았을 때에 온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앞장섰었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에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태안 앞 바다 기름 유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100여 만 명의 힘은 한민족의 독특한 하나 됨을 드러내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노벨상 후보 운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5년 성탄일 밤에 보았던 보름달은 럭키 문(Lucky Moon)이라고 한다. 올해 보았던 럭키문은 1977년 크리스마스 이후 38년만이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총은 세상 사람들의 럭키 문에 대한 기대와 비교 할 수 없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구속(救贖)받은 신자들에게 임하는 영원한 행복의 원천이며 만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아의 오심을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였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10:8)고 예언하였다. 양떼를 불러 모으는 목자의 휘파람 소리처럼 하나님은 휘파람으로 불러 모으셔서 열방에 흩어진 채로 고난당하는 유다의 자손들과 요셉의 족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각처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거할 곳이 부족하리 만큼 창성하게 하시겠다고 언약해 주셨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9:16)는 약속도 해 주셨다. 노아의 때나 소돔과 고모라처럼 패역하게 사악해져가는 이 세상에서 죄와 악을 거부하고 피와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미담들이 가득한 세상을 가꾸어 가야 하겠다. 성탄의 은혜를 입은 우리라고 하면 주님의 말씀들이 손끝으로 행해지고 발끝으로 실천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체의 일부를 나누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의 이야기가 어디선가 또 다시 들려지도록 말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염려와 감사(마6:2..최고관리자
"감사해"최고관리자
"바울의 소식"최고관리자
"염려와 감사"최고관리자
"누군가 널 위해 기..최고관리자
자손에게 가르치라(신..최고관리자
"하나님의 열심"최고관리자
"나는 비록 약하나"최고관리자
"자손에게 가르치라"최고관리자
"너 예수께 조용히 ..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