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이야기
‘대강절’(待降節)은 ‘대림절’(待臨節) 혹은 ‘강림절’(降臨節)이라고도 한다. ‘가까이 다가간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그 이름이 시작되었고 영어로는 ‘Advent’라고 한다. 성탄일이 다가 오는 네 주간이 대강절 기간이다. 대강절은 주후 507년에 투르 공의회에서 제정하여 지켜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탄절 이전 40일을 지켰으나 나중에는 네 주간을 지키게 되었다. 대강절 기간은 자신을 돌이켜 보며 회개하고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때이다. 그래서 대강절 기간을 “겨울철의 사순절”(Winter Lent)이라고도 말한다. 대강절과 사순절의 상징색은 같은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슬픔과 참회와 소망’을 상징한다. 대강절에는 네 가지 색깔의 양초에 불을 차례대로 밝힌다. 이는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이다. 네 개의 양초는 “예언의 초, 베들레헴의 초, 목자의 초, 그리고 천사들의 초”라고 부른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장차 오실 영광의 재림 주를 기다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네 가지 양초의 색깔인 “진보라, 연보라, 분홍, 백색”은 각기 다른 상징을 담고 있다. “진보라 색은 세상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종말과 대림을 의미한다. 연보라색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한 세례 요한을 상징한다. 분홍색은 그리스도의 탄생이 임박한 것을 준비하는 기쁨을 의미한다. 마지막 백색은 마리아를 통해서 수태한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을 기뻐하는 의미이다.” 혹자는 네 가지 양초의 불을 밝히는 것에 대하여 “소망, 평화, 사랑, 기쁨”의 성경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정확하지 않다. 성탄절 관련 사료에 따르면 겨울이 깊어가고 새로운 한해를 준비하는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해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였다. 동지는 한해의 전환기로 봄을 기다리며 새로운 날을 준비할 뿐 아니라 로마인들의 태양신 ‘미도라’ 숭배와 24일 농사의 신 ‘사순’ 제사가 성행했으므로 기독교회에서는 일부러 그 날을 택하여 성탄절로 지켰다고 한다. 한편 현재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12월 25일, 희랍정교에서는 1월 6일 그리고 알메니아 교회에서는 1월 19일을 성탄절로 지킨다. 전통적인 풍습을 따라서 12월 17-24일까지 즐거운 절기로 지켰으며 이 기간에는 학교들도 쉬고 형벌도 중지했다. 우스운 옷을 입기도 하고 지위와 신분도 잠시 잊고 지냈으며 종들은 상전과 한 자리에서 먹고 마실 뿐만 아니라 상전들이 종들의 시중을 들기도 했다. 서로 예물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에게는 진흙으로 만든 인형을 선물해 주었다. 방에는 촛불을 밝게 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 먹었으며 밖에 나갈 때에는 자유인을 뜻하는 뾰족한 모자를 쓰고 화려한 옷을 입는 등 성탄 절기를 풍성하게 축하하며 보냈다. 구라파의 북쪽에서는 튜톤 족의 성탄절 습관을 따라서 북쪽 가까운 지방에서는 40일 만에 해가 나타날 때, 스칸디나비아 남쪽과 독일에서는 동지에 ‘거룩한 밤’을 지켰다. 성탄절을 일 년 중 가장 캄캄할 때인 동지 때에 지켰으니 이는 그 때를 묵은해의 끝이며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대개 그들은 겨울 한 고비에 '풍년과 태평’을 기원하는 토속 신앙이 있었다. 성탄절 트리는 1605년 독일 스트라스부크에서 시작하여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성탄절 저녁에 북쪽 나라에서썰매를 끌고 온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으로 내려와 아이들의 양말에 선물을 넣어두고 가는 것은 성 니콜라우스(Nicholaus, 270-345)의 자선사업에서 유래한 것이다. 니콜라우스는 270년에 소아시아의 리키아 지방의 파타라에서 태어났다. 매우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는 부모를 일찍 잃은 후에 자신에게 막대한 유산이 돌아오자 그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사용하였다. 기독교를 믿은 후 신부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키아 지방의 도시인 뮈라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당시 뮈라의 주교가 죽고 그 후계자로 마땅한 신부가 없자 다른 지방의 주교들이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하늘에서 “내일 아침 제일 먼저 교회에 들어오는 자를 주교로 삼아라.”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때마침 그 날 뮈라에 도착한 니콜라우스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제일 먼저 교회에 들어와 참배하였고 그로 인하여 주교에 임명 받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303년에 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투옥되어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무사히 석방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쇄신과 선교 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도 참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파 성직자를 때린 죄로 투옥되었다. 그런데 밤중에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 성경을 건네주어 밤새도록 성경을 읽고 있었다. 아침에 이 광경을 목격한 경비병은 소문을 내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의 앞에 사과하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그는 가난한 이웃과 어려움 당하는 이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너무 가난하여 사창가로 팔리어 가게 된 어느 가정의 세 딸들의 소문을 들었다. 시집갈 만한 가치가 있는 황금 덩어리 세 개가 담긴 자루를 그 집 창문 안으로 던져 넣고 지나간 니콜라우스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 외에도 사형 직전의 죄수를 구명하기도 하고 배가 난파되어 겨우 목숨만 구한 이들의 생활 안정을 돕는 등의 자선 활동에 앞장서고는 하였다. 성탄절 카드는 1864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시작한 것이고 독일의 성탄절 민요가 제11세기 이래로 펴졌으며 성탄절 캐럴은 제13세기 이후에 널리 전래 되어 왔다. 요즘처럼 성탄절이 다가오면 신자들이 대강절기를 지내며 기다리는 기다림처럼이나 누구에게나 기다림은 있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 사라의 요구를 따라 몸종 하갈을 통하여 아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언약을 따라서 아내인 사라에게서 태어날 아들을 기다려야 했으나 아브라함의 조급함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야곱도 긴 세월의 기다림 끝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하여 요셉이 태어났다. 그 요셉이 나중에 애굽으로 피난 간 흉년기의 아버지 야곱과 70명의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하였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후에 13년을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갔다.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던 모세가 하나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동족 구원의 선봉에서 쓰임 받은 것은 그의 미디안 처가살이 40년을 다 채운 기다림의 열매였다. 모세의 시종으로 광야 생활을 시작했던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길이 열린 것은 모세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 간 후의 일이었다. 그 이전의 여호수아는 늘 모세의 곁을 지키는 2인자였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말씀하셨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그렇다. 기다림이 분명한 사람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워만 하지는 않는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향한 기다림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소망 중에 즐거워한다. 이런 기다림 가운데 살아가기는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엘리야, 세례 요한을 비롯하여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27년 동안 독방에 갇혀 있던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아들을 낳아서 안고 그를 찾아 온 딸에게 외손자의 이름을 ‘희망’ 즉 ‘HOPE’라고 지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런 희망이 성취되는 기다림의 순간을 마음에 품고 감옥의 고난과 외로움을 이기며 살았다. 대강절은 이 땅의 구세주인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