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 서 말과 누룩
예수의 천국 비유 중에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13:33)는 말씀이 있다. 아마도 이 비유는 천국을 설명하신 내용 중에 가장 짧고 그 교훈이 분명한 것 중의 으뜸이리라.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엿기름이나 누룩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 본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그렇게 직접 마련하여 사용하고는 하였다. 우리나라의 빵집 중에는 작게 시작하였으나 오늘 날은 전국 매장 그리고 국경을 넘어서서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에까지 진출한 빵집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시마다 역사 속에 시민들에게 좋은 입 소문으로 알려지며 잘 자리 잡은 빵집들이 처처마다에 있다. 대전에 가면 ‘성심당’이란 빵집이 그런 곳 중의 하나이다. ‘성심’(聖心)이란 ‘거룩한 마음’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주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성심당은 6.25 전쟁이 끝난 지 몇 해 후인 1956년에 대전역 앞에서 자그마하게 시작되었다. 그 후 대전 대흥동 성당 맞은편의 은행동 빵집은 아는 이들은 모두 다 아는 명소가 되었고 대전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 알려진 빵집이 되었다. 몇 해 전에는 대전역사 안에도 지점이 생겼다. 기차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성심당의 명물인 소보로 빵을 사려는 장면은 구경거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기다리는 긴 줄만 보아도 군침이 돌게 하고 그 줄에 끼어 서고 싶게 만드는 유혹의 빵집이 되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는 성경적인 경영 철학을 갖고 시작한 곳이 성심당이라고 한다. 그 성심당의 빵 봉지에 보면 한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우리는 화학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천연적인 방법으로 발효시킨 누룩만을 사용합니다.”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성심당은 정직한 재료를 사용하여 정직한 빵을 만든다는 경영 철학이 분명하다. 홈 피에 들어 가 보면 “맛있고 건강을 생각한 성심당의 건강빵은 프랑스에서 온 T65 밀, 독일의 크라프트 곡물가루, 유기농 통밀, 청정지역 호주의 유기농 밀, 안데스 산맥의 소금을 사용합니다.”는 안내문도 있다. 밀은 벼농사와 함께 인류가 농사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친근하게 재배하여 온 곡물 중의 대표이다. 요즘은 밀가루 음식 적게 먹기 운동을 벌이기도 하기는 하지만 밀에는 단백질과 지방질과 항산화작용을 하는 비타민 E가 풍부하다. 그리고 코레스테롤 수치를 떨어트려 주는 리놀레산의 함유량이 많아서 동맥경화증을 예방하는데도 효과적인 곡물로 알려져 있다. 빵이든 떡이든 밥이든 죽이든 인간은 최소한의 먹을거리를 통하여 육체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너무 폭식을 해서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130kg의 비둔한 몸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며 백성들은 굶든지 죽든지 상관을 하지 않는 독재자의 모습에서는 소박한 식탁의 감사가 사라진지 오랜듯하다. 독일 출신의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작품 중에 ‘기도하는 손’이란 그림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뒤러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금세공업자였다. 화가의 꿈을 안고 이탈리아로 떠난 뒤러는 32살 때에 같은 꿈을 가진 친구 한스(Hans )를 만나 같은 작업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기도 하였고 경제적으로 그의 도움을 많이 입었다. 그 당시에 한스의 기도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도하는 손’이다. 뒤러는 친구 한스의 기도하는 손을 그린 후에 “기도하는 손은 가장 깨끗한 손이요, 가장 위대한 손이며, 기도하는 자리는 가장 큰 자리이며, 가장 높은 자리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도 남겼다. 뒤러의 ‘기도하는 손’은 오늘 날 독일의 뉴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뒤러의 ‘아담과 이브’, ‘동방 박사의 경배’, ‘요한 묵시록’ 같은 작품은 유명하다. 그는 특히 목판화에 남다르게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1498년에 완성한 목판 연작 ‘요한 묵시록’은 뒤러 자신도 자랑스럽게 여길 뿐만 아니라 유럽 목판화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 받아 오고 있다.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16점의 연작들은 매 작품마다 고도의 섬세한 기술적 완성과 탁월한 화면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네 사람의 기사’는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오래도록 받아 오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성도라면 이 세상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 그 가는 길과 분야가 어떠하든 말이다. 음악, 미술, 문학, 영화, 연극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의 각계 각층에서 정치, 경제, 사회, 외교, 국방, 교육, 자연과학, 의학, 철학뿐만 아니라 땀을 흘려 일하는 바다와 땅과 산과 들과 공장을 비롯하여 시장 한 가운데서와 어린 아기를 낳아 양육하는 집안에서 까지 우리는 누룩과 같은 인생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놓인 말구유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의 떡 덩이가 되신 것처럼 말이다. 예수는 제자들과의 작별을 준비하던 유월절 식사 자리에서 빵을 가져다가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26:26)고 하셨다. 물론 그 빵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 즉 ‘무교병’(無酵餠)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서 말의 가루 속에 넣은 누룩과 같이 복음이 번져 가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전도자의 삶을 분부하셨다. 이 복음은 이천년 전에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능력으로 인하여 권능을 받은 사도들과 전도자들로 말미암아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번져 나갔다. 복음에는 누룩처럼 번져 나가는 확장의 힘이 있다. 마태는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 비유들 가운데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서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의 비유 바로 앞에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13:31-32)는 교훈으로 말씀하셨다. 천국 복음을 깨달아 알고 믿는 복음의 사람이라면 자신이 살아가는 가정과 일터와 세상 중에서 누룩처럼 가만히 부풀어 가게 하는 성령의 능력을 지녀야만 할 것이다. “왜 부풀어지지 않는가. 왜 부풀려지지 못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찾아 나가야만 할 것이다. 과연 누룩이라면 가루 속에서 부풀려져야만 한다. 부풀려 지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적인 것이다. 미국 풋볼 팀 최고의 플레이어인 팀 티보(Tim Tebow,1987-)는 터치다운의 순간 마다 그라운드에 한 쪽 무릎을 꿇고 한 쪽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세리모니를 펼치고는 한다. 그의 신앙 고백은 분명하다. “그의 책, <거침없이, 주를 향해>(Through my eyes)는 기쁨이나 슬픔이나, 성공이나 좌절이나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감사의 세리모니를 올려드리는 복음의 열정 넘쳐나는 청년 팀 티보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그는 뉴욕 제츠(New York Jets)팀의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오늘도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는 필리핀 선교사였던 어머니 뱃속의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던 아기로 자라났다. 그의 눈 밑에 그려 넣은 검정색 패치 위에는 흰색의 ‘John3:16’(요3:16)이라는 성경구절 표식이 선명하다. 그의 부모는 어린 그에게 가르쳤다. “사람은 누구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방향으로 사용할 책임이 있다.” 그 후 그는 성장하여 “나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큰 그림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일은 온전히 나의 소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는 필리핀에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워 후원하고 있다. 그렇다. 오늘 날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이 무어라고 하든 상관없이 주눅 들지 말고 이 시대의 누룩처럼 부풀어 올라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의 교훈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