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이 멈춰버린 SOS
SOS란 “무선통신에 의한 선박이나 항공기의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일컫는 국제 공용어이다. 오늘 날의 해양경비안전본부의 전신인 해양경찰청은 2012년부터 정부 예산 340억 원을 들여 어선마다 위치발신장치(V-PASS)의 설치를 의무화하였다. 해경이 2013년부터 어선에 보급한 위치발신장치에는 원래 선체가 일정 각도 이상 기울면 이상을 감지해 자동으로 구조 신호인 ‘SOS’를 가까운 해경 안전센터로 보내는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시범 운영을 해보니 악천후 때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 수시로 SOS 알람이 작동했다. 해경은 조난 상황이 아닌데도 출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계속되자 ‘세계 최초’의 SOS 자동 발신 기능이라고 자랑하던 그 기능을 슬그머니 차단해버렸다. 당시 해경은 서울 청사에서 열린 ‘행정제도 개선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SOS 신호 자동 발신 기능을 중점적으로 소개하여 대통령상도 받았다. 당시 해경은 “최단 시간 내 구조단이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는 세계 최초 기술”이라고 홍보했었다. 지난 9월 5일에 전복된 돌고래 호 사고현장에서 지나가던 어선에 의해 구조된 어느 생존자는 “선장이 출항하면서 승객들에게 ‘사고가 나도 해양경비안전본부에서 곧바로 알고 구조하러 오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고래호 선장이 말한 SOS 자동 발신 기능은 해경이 소프트웨어 제어를 통해 이미 2014년 5월부터 차단해놓아 무용지물이 된 상태였다. 언제나 바다는 위험한 생존의 현장이다. 그러하다 보니 어민들과 낚시꾼들과 선원들과 승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밤잠을 설쳐 가며 애쓰고 수고하는 이들은 해경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의 인사 사고는 연이어 일어나고는 한다.
선조들은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였다. 그렇다. 인생살이 자체가 무섭고 사납고 위험하고 두려운 바닷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神)을 믿어 왔다. 우리나라로 하면 고려시대의 불교, 조선 시대의 유교 이전의 민속 신앙은 조상 제사와 더불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었다. 이 무속(巫俗) 신앙을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한민족의 샤머니즘 신앙의 뿌리는 몽골, 만주, 일본 등에 골고루 퍼져 있다. 우리의 샤머니즘의 역사는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되어 살아온 반 만 년의 역사와 그 연대를 같이하며 그 생명력과 수용력이 뛰어나다. 타 종교에 관대할 뿐만 아니라 배타적이지 않다. 그리고 오늘 날과 같은 최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샤머니즘에 바탕을 둔 미신적인 신앙관에 붙들려서 살아가는 의식구조와 신앙 양태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에서 비와 이슬을 내려 주고 열매를 풍성하게 하는 분은 ‘하느님’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정작 열매를 거두고 나면 바다의 신, 산의 신, 조상 신, 집의 신(家神), 땅의 신 등에게 제사하는 특이한 현상을 보여 오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믿어 온 신관(神觀)은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이며 다령숭배(多靈崇拜, Poly–demonism)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굿은 샤머니즘의 일종의 예배의식이다. 그리고 굿의 중심은 무당(巫堂)이다. 오늘 날과 같은 최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판을 치는 무속인들의 활동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종교 성향을 대변하는 것이다. 가령 굿을 의뢰한 사람은 무당에게 모든 것을 위임한다. 심지어는 무당이 시키는 대로 맹종한다. 사람들은 무당이 신을 불러오고 달래주고 또 악신을 쫓아내 주기를 기대한다. 무속신앙을 가진 이들은 무당이 신적 대리인이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무당을 통해서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하며 장래사를 점쳐서 예언해 주기를 바란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던 어민들은 바다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용왕(龍王)에게 제사를 드리고 바닷길의 안전을 기원하고는 하였다. 무속에서 ‘용왕’이란 용신(龍神)이라고 하며 바다와 강과 우물의 물을 관장하는 신이라고 믿고 있다. 마을입구에는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고목이 신적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산허리에는 성황당(城隍堂)을 만들어 놓고 그 곳에 절하기도 하고 제사한다. 성황(城隍)은 서낭의 한자어로 한국 전래의 천신(天神)과 산신(山神)이 복합된 것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신앙이 융합된 것으로 성황은 마을을 수호하고 액운을 퇴치하며 소원을 성취해 준다고 믿는다. 성황신앙은 중국의 송나라 때 이후로 보편화 된 신앙으로 성읍의 둘레에 못을 파놓고 그 못에 깃든 신(神)이 성읍을 지켜준다고 믿는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성경 이야기를 좀 하자. 엘리야는 주전 9세기 후반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던 시대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다. 당시에 북 왕국을 22년간 통치하였던 아합 왕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방 사람들이 풍요의 신이라고 여기며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 섬겼다. 아합은 하나님을 모르는 시돈의 왕 엣 바알의 딸 이세벨이란 여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 왕과 왕비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를 바라보는 선지자 엘리야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에는 삼년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었다. 임금 아합은 그 원인이 엘리야에게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엘리야를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엘리야를 미워하고 못마땅하게 여기기는 왕후 이세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이 일 후에 엘리야는 임금 아합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 때에 엘리야는 임금을 향하여 “이스라엘에 임한 괴로움은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당신이 바알을 따랐기 때문이다.”(왕상 18:18)라고 일갈(一喝)하였다. 그리고 엘리야는 갈멜 산꼭대기에서 바알을 신으로 섬기는 선지자 400명과 아세라를 섬기는 숭배자 450명과 만나기를 제안하였다. 임금 아합은 기세등등하게 전국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을 불러 모았다. 엘리야는 나무 단 위에 송아지 한 마리의 각을 떠서 제물로 준비하고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며 살아 있는 신(神)임을 증명하자고 제안하였다. 저들은 한 나절을 바알과 아세라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몸에 피가 나게 하며 바알과 아세라를 불렀다. 성경은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며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왕상18:29)고 하였다. 그렇다. 죽은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SOS가 무엇인가. “응답하라. 응답하라”고 교신할 때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당혹스러워하는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 앞에서 엘리야가 모든 백성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내게로 가까이 오라.” 그리고 엘리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수대로 열두 돌로 단을 쌓았다. 그리고 돌아가며 도랑을 팠다.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올려놓았다. 그 후에 열 두 통의 물을 길어다가 나무와 제물 위에 흠뻑 부었다. 물은 제물과 나무를 적셨고 도랑에 가득 차게 되었다. 저녁 소제 드릴 시간 즈음에 엘리야는 제단 앞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18:36) 그 순간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제물 위에 임하였다. 여호와의 불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모두 다 핥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백성들이 제단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 그렇다. 여호와는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