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難民) 이야기
시리아 난민인 세 살짜리 사내아이의 시체가 터키 해변에 떠 밀려온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며칠간 세계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 어린이가 평화로웠던 날에 형과 함께 찍은 천진한 모습의 또 다른 사진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아일란 쿠르디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지난 9월 2일(2015년)에 가족과 함께 터키 해안을 떠나 유럽으로 가려던 작은 배가 뒤집히면서 그런 불행한 일을 당하였다. 두 살 위인 그의 형 리틀 갈리프와 그의 엄마도 함께 변을 당하였다. 같은 날 중국은 성대한 전승절 7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제 2차 대전의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하였다. 중국의 전승절(戰勝節)이란 일본의 전권대사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과 미국 측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요코하마 근해에 정박한 미 해군 항공모함인 USS 미주리의 선상에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전승일로 기념하는 날이다. 다음 날 이어진 천안문 광장의 열병식은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신개발 첨단 무기의 위용을 세계에 알리는 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열병식장에서 “세계 평화”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6. 25 당시 1. 4 후퇴 때에 인해전술로 엄청난 침략 군대를 보냈던 나라가 아닌가. 국가 간의 평화란 무엇이며 난민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난민이 발생하는 제 일 원인은 전쟁이다. 최근에 발생하는 난민의 증가는 냉전 이후 구 유고연방과 이라크 등의 중동 지역과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미국이 벌여온 전쟁이 그 원인이다. 2011년 3월에 리비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자 프랑스와 영국은 카다피 정부군의 제공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다. 미국은 그 상황에 가세하여 백여 발의 최첨단 토마호크 미사일로 리비아 방공망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여덟 달 후 카다피는 살해되었다. 그 후로 리비아는 1,700개가 넘는 무장단체가 난립하는 무정부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오늘 날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유럽 각국이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두 달 동안 22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독일의 난민 망명 신청자는 지난 해 20만 명에서 올해는 80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다. 통일 전에 동독에서 목사의 딸로 자라난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시리아 출신 난민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였다. 또한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아이슬란드와 스페인의 일반 시민들도 난민 돕기에 나서고 있다. 5년 째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해외로 탈출한 난민은 43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서 안전하게 어느 나라엔가 정착한 숫자는 불과 30만 명 정도이다. 성경의 역사도 일종의 난민의 역사이다. 모세가 태어나던 때에도 그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던 당시에도 그러하였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애굽에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모조리 죽이는 참극이 임금 바로의 명령으로 자행되었다.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 버려졌던 생후 삼 개월 된 아기가 80년 후에 동족 히브리인을 출애굽 시키는데 쓰임 받는 지도자 모세가 된 것 아닌가. 베들레헴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태어났다는 소문은 그 지역을 통치하던 헤롯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다. 결국 헤롯은 베들레헴 주변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남자아이들을 다 죽였다. 그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남편 될 요셉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애굽으로 피신하면서 난민 생활의 고난을 톡톡히 겪어야만 하였다. 헤롯이 죽은 후에 천사는 애굽에 피신해서 지내던 요셉에게 나타나서 헤롯의 사망 소식을 알렸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헤롯의 대를 이은 아들 아켈라오 왕에 대한 소문을 들은 요셉은 이스라엘 땅으로 가서 사는 것에 대하여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꿈에 다시 나타나셔서 무서워하지 말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요셉은 아내 마리아와 함께 어린 예수를 데리고 나사렛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다. 이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성취되는 일이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도 일흔 다섯 살이 된 나이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고향을 떠난 후에 난민과 같은 나그네 신세의 고독과 그를 외면하는 원주민들로부터의 처절한 천대를 수 없이 이겨 내야만 했다. 갈대아 우르 사람이던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서 살려고 하란 땅에 거하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 보겠다고 나섰던 벧엘 동쪽에서 극심한 기근을 겪게 되었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으나 그 곳에서 아내를 애굽의 임금 바로에게 빼앗기는 위기와 수모를 겪고 다시금 네게브로 올라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금은 풍성하였으나 아들 하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다. 그리고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13:14-15, 17)고 언약하셨다. 아브라함이 늦게 얻은 아들 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원주민들에게 뺏기고 쫓겨 다니는 수모를 계속하여 겪어야만 했다. 이리 쫓겨 다니고 저리로 옮겨 다니던 중에 모처럼 널따란 땅에다 우물을 파고 그 곳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정하였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이 넓혀 주신 땅에서 우리가 번성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다시 또 새로운 곳인 브엘세바로 이주하였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26:24) 이삭의 아들 야곱은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장가들어 고단하고 험악한 처가살이를 이십 년 씩이나 이겨 내야만 하였다. 그런 야곱이 나이 130살이 되었던 노년기에 가나안에 덮친 기근을 피해 국경을 넘어 찾아 간 곳이 애굽이었다. 야곱은 거기서 이미 죽은 줄로 알았던 아들 요셉이 총리가 되어 있는 자랑스런 모습을 만나보게 되었다. 야곱은 그 곳 애굽에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까지 말년의 17년 세월을 낯선 땅 애굽의 고센 지역에서 지내야 하였다. 야곱의 총애를 받던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은 열일곱 살 때에 형들의 미움으로 팔려갔던 땅 애굽에서 노예 생활의 참담한 날들을 뼈 속 깊이 새기며 참아내고 견뎌 내야만 하였다. 그리고 십 삼년 후에 그는 바로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애굽의 탁월한 총리가 되었다. 출애굽 당시에 모세의 지도를 따라 나섰던 청년 여호수아가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벗어나서 광야 생활 사십 년이 지난 후에 요단강을 건너 동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날마다 난민과 같은 생활을 이겨 내야했던 광야 길에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아닌가. 십 수 년을 사울 왕의 창과 칼과 활을 피하여 광야와 동굴에 숨어서 지내야만 했던 다윗 왕의 청년기도 난민과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하기는 바벨론에 끌려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광야에서 약대 털로 몸을 가리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연명하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목청을 높이며 살다가 붙잡혀 헤롯의 칼에 목이 잘려 쟁반에 담겨 나간 세례 요한의 일생도 철저히 하루하루 난민 같은 날들이었다. 이 땅에 영원한 안식과 평화란 없다. 우리는 아주 어려서 누구에게 배운지도 모르는 이런 노래를 동네 아이들과 같이 불렀다. “미국 사람 믿지 말고 소련 사람에게 속지 말라 일본 사람 일어난다....” 대략 이런 가사였다. 이 세상에 영원히 손잡을만한 이웃 나라는 없다. 전쟁과 평화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의 도움은 오직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