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대통령
미국 정부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제적으로는 이라크와 시리아 지역에서 점점 무섭고 강력하게 힘을 키우고 있는 ‘이슬람 정부’(IS)와의 전쟁과 국내적으로는 테러와 총기 사건과 살인과 미 대법원의 동성애법 합법화 등등의 파도처럼 밀려오는 문제의 벽 앞에 서 있다. 그와 같은 미국 사회에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6월 17일, 21살의 백인 청년 딜런 루프는 임마누엘 아프리칸 감리교회에 들어가서 총격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비롯해 9명이 숨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 있는 이 교회는 1816년에 흑인 노예들이 세운 ‘아프리칸 감리교회’(African Methodist Church)로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교회 중의 한 곳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달 26일(2015. 6. 26.)에 찰스턴의 농구 경기장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하여 6,000여명의 참석자들 앞에서 위로의 연설을 하였다. 그가 추모연설을 하던 도중에 말을 멈추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이다. 영어 찬송의 가사는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이렇게 시작된다. 신문에서 뉴스를 접한 나는 동영상을 찾아 그가 하는 연설과 찬송을 부르는 장면을 보았다. 지도자의 진심이 담긴 진지한 그의 남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이 일로 미국 국민들의 그에 대한 지지율이 재임 기간 최고로 높아 졌다고 한다. 어떤 언론은 1963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25만명의 군중 앞에서 한 연설인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연설의 현장을 능가하는 일이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 찬송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노예무역상인이었던 영국의 잔 뉴턴(1725-1807)이 만들었다. 1748년, 노예 무역선 선장이었던 그가 탄 배는 엄청난 폭풍우에 휩쓸려 전복될 지경이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며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배는 기적처럼 폭풍우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위기를 경험한 그는 성공회 사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찬송은 그의 사제 생활 중이던 1772년에 탄생되었다. 한 때 길을 잃고 방황하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지내며 노예무역을 생업으로 하던 죄인이었던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의 가사에 담고 있다. 몇 해 전에는 “노예 12년”이란 실화에 근거한 영화를 통해서 미국 사회가 오늘 날의 미국으로 발전해 오기 이전에 인종 갈등과 흑인들의 비참한 운명이 얼마나 심각하였나를 세상에 알린 적이 있다. 소설 “노예 12년”은 작가인 솔로몬 노섭이 자신의 경험담을 기록한 책이다. 미국은 1808년에 노예 수입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때인 1864년에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까지 거의 50년 동안 노예 제도를 인정하지 않던 주의 흑인들을 납치 해다가 노예 제도를 그대로 보존하던 주로 팔아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솔로몬 노섭은 그런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뉴욕 태생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는 악단의 초청을 받아 워싱턴 D. C를 방문했다가 납치되어 남부 조지아 주로 팔려갔다. 첫 주인을 거쳐서 팔려간 두 번째 주인은 잔인하고 악독한 백인이었다. 그가 주로 인용한 성경 구절은 누가복음 12장 47절이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이라는 구절을 흑인들에게 들이대며 노예 취급하였다. 수 없이 탈출을 시도하던 그에게 캐나다 출신의 백인 노동자인 베스가 도움을 주었다. 12년 만에 드디어 그에게 노예 현장에서 탈출할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흑인이라는 이유 한가지로 짐승처럼 인간사냥을 당하여 참혹한 노예 현장으로 팔리어 가고는 하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와 같은 시대적인 만행을 회개하고 뉘우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찬송가이다. 영국 국회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150여 차례의 의회 투쟁 끝에 1807년에 드디어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1838년에 미국에서는 ‘인디언 이주법’을 제정하여 체로키 인디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3,500㎞가 넘는 이 ‘눈물의 길’(Trail of Tears)에서 희생된 인디언은 5,000명이 넘는다. 그 당시에 체로키 인디언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면서 부르던 곡도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찬송은 그 후로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이나 1960년대의 흑인운동이나 반전운동 시위 때에 많이 불렸다. 저들은 이 찬송을 부르며 하나로 단합된 힘과 저들을 핍박하던 상대방을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과 화합과 치유와 회복의 길을 걸으려고 씨름하고는 하였다.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찬송을 부른 후에 9명의 희생자의 이름을 한명씩 일일이 부르면서 “미국은 희생자의 가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고도 말하며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원망하기 전에 “놀라운 은총”안에서의 용서와 화합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그는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 은총을 통하여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교회가 여전히 존재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슬픔의 장례식은 순식간에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오는 화합의 장이 되었다. 대통령 곁에 둘러 앉아 있던 목사들은 약속한 듯이 다 같이 일어섰고 오르간의 반주 소리가 울려 퍼지며 성가대와 6,000여명의 조문객들은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합창하였다. 이스라엘의 다윗은 노래하는 왕이었다.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던 왕이었다. 다윗의 하나님 사랑은 특심하였다. 그의 하나님 사랑을 대신할 자가 없었다. 그가 타던 악기 연주와 찬양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악신에 사로 잡혀 있던 임금 사울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게 하리만큼 영향력이 컸다. 지도자의 노래 특히 지도자의 찬송은 그 파급력이 크다. 150편의 시편 중에서 73편이 다윗의 작품인 것을 보면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다윗!’ 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청년 다윗의 노래인 찬양은 임금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하던 시절부터 남다르고 구체적이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18:1-3) 역시 다윗은 임금 될 만한 그릇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