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뜨거워진 마음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라나면서 어미 닭이 달걀을 품고 지내는 모습을 보았다. 토마스 에디슨도 관찰한 적이 있었다는 그 모습 말이다. 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토마스 에디슨은 자기가 달걀을 품어 보는 경험도 시도하였다고 하지 않나. 어미 닭 품에 안겨 3주를 지낸 달걀 속에서 병아리가 태어난다. 아침에 학교에 갈 때 까지도 태어나지 않았던 병아리들이 집을 비운 낮 시간에 태어나서 노란 병아리 떼가 어미 닭을 종종 걸음으로 쫓아다니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일정한 온도로 따뜻하게 품어준 유정란에서 일정한 기간이 지나가면 ‘병아리’라고 부르는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어렸을 적 구경거리 중의 하나였다. 영국 웹옷에서 평생토록 영국 교회인 성공회에서 목회하던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에게서 15번째 자녀로 태어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는 35살 때에 영적 체험을 새롭게 하였다. 그는 1738년 5월 24일 수요일의 일기에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썼다. 그 날 밤 8시 45분경에 그는 런던 시내의 올더스케이트 거리에 있는 한 모임의 수요저녁 기도회 자리에 ‘아주 마지 못 해’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그 자리에서 그 시간쯤에 영적 체험을 새롭게 한 것이다. 그가 표현하는 ‘이상하게 뜨거워짐’(strangely warmed)이란 어떤 상태일까. 그날의 그 경험이 오늘 날 ‘세계 감리교회’(world methodist church)의 탄생을 가능케 하는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고전 철학자 헤겔은 “역사란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 뜨거운 마음이 없이 이룰 수 있는 일이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정치, 경제, 과학, 의학, 문학, 음악, 미술, 체육 등등 그 어떤 분야의 그 무슨 일이든 뜨거운 마음이 없이 역사에 공헌한 경우란 없다. 이처럼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그 모든 배후의 동인(動因)은 ‘열정’ 즉 ‘뜨거운 마음’에 기초한다. 요한 웨슬리가 미국의 조지아 주에 위치한 사바나 지역에 동생 찰스와 함께 선교사로 떠나 있던 기간에도 그에게는 사역의 열매가 별로 없었다. 자기 열심이 불붙는 것 같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이루어지는 사역의 열매가 별로 없었다. 그러던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새로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동생 챨스는 형 요한 보다 며칠 먼저 그런 체험을 하였다. 그 같은 해의 5월 21일은 성령 강림 주일이었다. 찰스는 그 날에 영적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챨스는 몸이 아파서 오래도록 누워 지내고 있었는데 그런 영적 체험 후에 몸도 거뜬히 나았다. 그 직후에 “내 방황하는 영혼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라는 찬송을 지었다. 그런 챨스의 형 요한의 마음도 동생처럼 며칠 후에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요한의 그 해 일기에 보면 그는 그해 5월 내내 우울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그는 “나는 슬펐고 매우 답답하였다. 명상이나 찬송이나 기도를 비롯한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고 썼다. 그런 그에게 모라비안 교도였던 피터 뵐러가 편지를 보내 왔다. 뵐러는 요한에게 “불신의 죄를 주의 하십시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아직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였다면 바로 오늘 지금이라도 당장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피터 뵐러는 요한 보다 9살이나 젊은 당시 26살의 젊은이였다. 피터는 프랑크프르트에서 태어났다. 그런 그에게 그의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원하였다. 그러나 피터는 한 여인이 사형에 처해지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신앙적인 죽음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입었다. 그런 그는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모라비안 교의 진젠도르프 백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회심을 체험한 신앙심이 깊은 청년이었다. 웨슬리는 그런 그를 런던에서 만났고 얼마간 지내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피터는 요한이 변화되고 마음에 열정이 불붙여 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 선교지에서의 실패 경험과 아픈 상처와 수치심을 갖고 지내던 요한은 피터 뵐러의 열정적인 신앙에 대하여 매우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삼 개월 정도 동안의 만남이 요한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피터는 5월 초에 미국으로 떠났다. 피터는 신앙이 식어져 있던 냉랭한 상태의 요한에게 “신앙이 생길 때까지 신앙을 선포하라”는 숙제를 주었다. 피터는 나이에 비해서 신앙이 규모 있게 잘 자리 잡고 있던 젊은이였다. 그는 요한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성결과 행복이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하였다. 그 즈음에 요한은 전혀 행복하지 못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몹시 우울한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요한이 회심을 경험하기 한 달쯤 전에 피터는 요한에게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확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덕택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였다. 그런 요한을 하나님은 날마다 주목하고 계셨고 드디어 그 해 5월 24일 밤! 그의 마음이 영적으로 뜨거워지는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요한은 변화되던 그 날도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신약 성경을 조금 읽었다. 그리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낮 시간을 지냈다. 그날 오후에 그는 성 바울 대 성당에 가서 마틴 루터가 좋아 하던 성경 말씀인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는 시편의 말씀에 곡을 붙인 성가대의 성가를 은혜롭게 감상하였다. 그 날 오후 그 찬양 곡의 가사와 곡들은 요한의 마음에 큰 감동을 남겼다. 그 날 저녁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주 마지못해’ 올더 스케이트의 한 곳에서 수요일 밤에 열리고 있는 기도회에 참석하였다. 그 곳에서 한 회중이 읽어 주던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의 내용을 경청하며 예배드리던 중에 그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진 것이다. 요한은 그 날 밤의 체험을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만을 의지한다고 느꼈다. 예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하여 죄를 없게 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1999년 6월 10일은 성령 강림 주일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미국 펜실베니아의 필라델피아 외곽에 자리 잡고 이민 생활하는 벤살렘교회의 담임 목사였다. 24년째 미국 교회의 예배당을 빌려서 주일 오후에 예배를 드리며 지내오던 회중들의 소원 중의 하나는 예배당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그런 저들과 함께 이미 마련한 널따란 잔디 밭 성전 터에 예배당 건축하는 일과 은혜 받는 일을 위하여 저녁 마다 성전터의 한 귀퉁이에 있는 사택의 차고에서 70여명이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그 밤에 적지 않은 무리들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방언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진 교인들이 여럿 탄생하게 되었다. 그 후로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이 순조롭게 되었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여 봉헌 할 수 있었다. 그런 나는 2001년 9월 1일, 성전 건축 마무리 단계 중에 학위 과정 중에 있던 미국의 동료목회자들과 영국을 방문중었고 런던의 웨슬리 채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날 나는 성찬 중에 이상하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영적 체험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주의 은혜이다. 신앙생활이란 개인이든 가족이든 그 어떤 공동체이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열정과 정열이 없이 이루어진 일이란 없다. 최근에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그림 ‘알제의 여인들’을 그린 파블로 피카소는 평생 동안 5만점이 넘는 미술 작품을 남겼다. 계산하여 보라. 그가 92년을 살았다고 하긴 하지만 언제 자고 언제 쉬며 그 많은 작품들을 완성하였겠는가. 남다른 정열과 열심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란 없다.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왕하19:31) 그렇다. 지속적인 열심과 뜨거워진 마음은 역사를 바꾸어가는 동력(動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