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자
지난주에 경상북도에 있는 교도소에 다녀왔다. 수형자 세례식에 참석하여 두 명의 수형자에게 세례를 행하였다. 삼십년이 넘게 목회하면서 수형자에게 세례를 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6만 명이 전국 50여 곳의 교도소에 갇혀 있고 그 중에 5천여 명은 여성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국가의 법 체제는 공의가 불의를 판단하여 악을 행한 그 누군가를 옥에 가두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서는 불의한 세력의 강압에 의하여 의로운 양심을 지닌 이들이 갇히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대통령의 경우이다. 그는 집권 국민당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대항하다가 반역죄로 기소되어 1964년 6월 11일에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케이프타운 앞바다의 로벤 섬 교도소와 삼엄한 경비로 악명 높은 폴스무어 교도소에 감금되었는데 결핵 치료를 위하여 입원한 적도 있었다. 마침내 1990년 2월 11일에 F. W. 데 클레르크 정부는 그를 27년 만에 석방하였다. 석방된 그는 ANC(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부의장에 선출되었고, 다음 해에는 의장에 취임했다. 인종차별을 불식한 민주헌법의 제정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3년에 데 클레르크 총리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4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다민족 총선거에서 ANC는 승리하였고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의 생애는 불의한 자들의 압제 앞에 굴하지 않고 평생을 버텨 온 의로운 자의 승리 그 자체였다. 세상에는 항상 열려 있는 공간과 항상 닫혀 있는 갇힌 공간이 공존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은 항상 열려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닫혀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2:17)고 말씀하신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에덴동산에 유일하게 닫힌 상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하와와 아담의 범죄는 에덴에서 추방되는 닫힌 공간에 갇혀서 살게 되었다. 에덴에서 추방된 인간에게 이마에서 땀을 흘려야만 하는 수고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뱀과 아담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뱀과 아담은 저주에 갇힌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과 대속(代贖)의 은총에 의하여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허락받는 열린 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인류 역사에 갇힌 자의 경험을 가진 이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성경의 역사로만 하여도 그러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나님을 몰라서 평생을 우상 숭배에 갇혀 살았다. 그런 그의 장남인 아브람이 일흔 다섯 살 때에 그를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브람을 우상 숭배의 어리석은 갇힌 영의 세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새로운 영의 사람으로 불러 내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갇혀 살 때에 인생의 참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아브람은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그 곳에서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에 갇히고 말았다. 하마터면 아내 사래를 애굽의 왕 바로에게 빼앗길 번한 적도 있었다. 아브람의 비겁한 처세로는 아내 사래를 바로 왕의 탐심에서 건져 낼만한 능력이 없었다. 하나님은 장차 믿음의 조상이 될 아브람의 아내이며 열국의 어미인 사라라고 개명하여 불리어질 여인 사래를 보호하기 위하여 바로와 그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창12:17)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며 오직 성공과 축복 일변도의 삶을 향하여 치달아 가던 인물이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이다. 그는 앞이 잘 보이지 않던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 기도를 받았다. 그 사건 후에 동생을 죽이려 하는 형 에서의 손길을 피하여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신하여 거기서 외사촌 여동생들인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루고 이십년 세월을 처가살이하며 장인 집에 갇혀서 지내야 했다. 집요한 성격과 기질의 야곱은 거의 평생을 그런 자신의 성향에 갇혀 지내야 하였다. 베고 잠을 청하던 돌을 기둥 삼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던 루스 광야에서의 영적 체험과 고향으로 되돌아가던 얍복강 저편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던 그런 밤을 제외하고는 야곱은 언제나 탐심과 성공과 출세를 향한 집착과 번영 일변도의 삶을 추구하던 갇힌 자의 인생이었다. 400명의 무장 세력을 앞장세우고 동생 야곱을 죽인다고 달려들던 형 에서와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이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의 세겜 성읍에 일정한 대가를 주고 마련한 땅에서 장막을 치고 살아갔다. 그 곳 세겜에서 야곱은 외동 딸 디나가 원주민 추장 세겜에게 겁탈을 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겪게 되었다. 이 사건 후에 야곱의 아들들은 히위 족속의 남자들에게 할례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할례를 행한지 삼 일 후에 디나의 두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나서서 히위 족속의 모든 남자들과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까지 모조리 다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왔다. 그 밤에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시체가 널려 있는 성읍을 드나들며 자녀들과 아내들과 온갖 좋은 것들을 노략질 하였다. 순식간에 야곱의 집안에는 두려움의 먹구름이 뒤 덥히는 흑암에 갇힌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얼마간의 착잡하고 뒤숭숭한 세월이 흘러가고 어느 날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셨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35:1)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는 언약을 새롭게 하셨다. 그 날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축복을 재확인해 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창35:11-12) 그 후손 중에 요셉은 13년간 애굽의 노예 생활에 갇혀 지내야 했고 그 중의 나중 두 해는 누명을 쓰고 실제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모세는 사십 년 간이나 미디안의 광야에서 양치기로 노년기를 맞기 까지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런 요셉을 하나님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모세를 앞장 세워 출애굽을 이룩하는 민족의 지도자요 언약을 받는 말씀의 사람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셨다. 에스더는 고아의 처지에 고독하게 갇혀 성장하였으나 이방 나라의 왕비가 되었다. 다니엘은 포로의 땅에 갇혀 지내며 나중에는 사자 굴에 던져진 채 갇힌 공간에서 맹수의 먹잇감이 될 것 같은 불운한 운명의 순간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평소보도 일곱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 지는 악형의 불길 속에 갇힌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그 위기의 때마다 건져 내셔서 역사적인 간증의 사람들이 되게 하셨다. 갇힌 자의 경험을 이야기 하라면 예레미야도 빼어 놓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은 갇혀 있던 옥중에서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베드로와 사도들도 갇힌 적이 있고 사도 바울은 갇힌 감옥에서 에베소서와 빌립보서와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와 같은 서신을 썼다.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1522년에 옥중에서 독일어로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였다. 영국의 침례교 목사였던 존 버니언은 12년 간 갇혀 있던 옥중에서 ‘천로역정’과 같은 역사적인 작품을 완성하였다. 독일 히틀러 정권에 저항하던 순교자 본 훼퍼의 ‘옥중 서신’은 기독교의 고전 중에서 으뜸이다. 미움과 증오와 보복심에 갇히면 점점 더 불행해 지고 사랑과 화해와 용서에 갇히면 점점 더 존귀해 지는 법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