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집에서 교회에 까지 십여 분 동안 걸어가는 길 가에 온갖 봄꽃들이 만발하였다. 기도하러 가는 새벽 길가의 꽃향기가 그 어떤 향수로도 대신하지 못하리만큼 은은하다. 새벽 향기는 지나치지 않고 은근하여 더욱 좋다. 벚꽃과 매화꽃과 살구꽃과 목련과 싸리나무 꽃과 붓꽃, 민들레꽃과 개나리와 진달래꽃이 동산과 길가에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그 향기를 마음껏 발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향기 즉 저마다의 독특한 냄새가 있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에게도 냄새가 있다. 어렸을 적에 시골집에서 늘 대하던 짐승들도 각기 자기의 냄새를 갖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돼지우리에 가면 돼지 냄새가 나고 닭장에 가면 닭 냄새가 났다. 외양간에 가면 소 냄새가 나고 강아지를 품에 안아 보면 강아지 냄새가 났다. 개울가에서 헤엄을 치는 송사리 떼에도 저들만의 비릿한 냄새가 있다. 붕어 냄새가 다르고 가재 냄새가 다르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사꾼의 몸 냄새가 다르고 엄마 품에서 잠이든 어린 아기에게서 나는 냄새가 다르다. 젖먹이 어린 아기의 냄새는 냄새라기보다는 향기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이다. 어려서 자라나던 시골 마을을 생각하면 아카시아 꽃향기, 싸리 꽃향기, 밤 꽃 향기 등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 세상은 이처럼 별의 별 향기와 냄새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향기와 냄새 중에서 사람 냄새처럼 독특한 것도 없으리라. 한국 사람에게서는 김치와 마늘 냄새를 감출 수 없듯이 인도 사람들에게서는 카레 냄새가 난다. 역사적으로는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와 송재 서재필과 도산 안창호와 남강 이승훈과 월남 이상재 등의 향기가 각기 다르고 이완용이나 안두희 같은 사람의 냄새가 다르다. 사람이 재물을 지나치게 탐하면 그 재물의 냄새가 악취가 되기도 하고, 무리하게 권력을 쫓다가 보면 그 권력욕이 독한 냄새가 되어 코를 찌르기도 한다. 보리 고개를 지내야만 하던 시절의 햇감자는 참으로 반가운 먹을거리였지만 장마철에 헛간에서 썩어가는 감자 썩는 냄새는 인분 냄새 이상으로 지독하다. 성경에도 그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인생들의 일화가 적나라하게 소개되어 있다. 욕망에 눈이 가려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완전한 동산인 에덴에서도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고 말았다. 삼손은 사사였지만 그랬고, 아간은 아이 성 전투에 모병된 특수부대 요원이었지만 그랬다. 사울이나 아합은 왕인데도 그랬고, 가롯 유다는 예수님께 선택 받은 제자였는데도 그랬다. 인간이 탐심에 눈이 가리어지고 이성이 마비되고 나면 별의별 범죄에 다 연루되어서 악취를 풍기고 만다. 그러므로 향기 나는 인생으로 살아가려면 평생토록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하였다. 인간이 창조주 앞에서 존재론적으로 살아가야지 소유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초라해 지고 만다. 사람이 소유를 쫓다 보면 탐심의 노예가 되고 탐욕으로 인하여 자기 관리에 실패하면 그 나중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심한 악취가 나고 만다. 가롯 유다는 삼년 동안 잘 나가던 예수 그리스도의 측근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마귀의 지배를 받아 불행한 선택을 하였을 때에 ‘피밭’이라고 이름 붙여진 ‘아겔다마’라는 밭에 곤두박질하여 비참하게 생을 마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말지 않았나. 올해는 성회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 이어진 사순절 말씀 묵상의 주제를 ‘예수 본받기’로 정하고 봄을 맞이하였다. 사울이 한 때는 그렇게 모가 났던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딤전1:13)이었으나 다메섹 체험 이후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초대 교회의 위협이 되던 악취가 나는 인물에서 향기로운 이방의 존귀한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간증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1:14)고 고백하였다. 옛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나니 그렇게 교만하고 살기등등하던 사울이 엄청나게 겸손해졌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고 선언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보면 가장 여러 차례 반복해서 다루는 주제가 ‘겸손’에 관한 묵상이다. 사람이 겸손하면 제 분수를 알게 된다. 물론 노력하고 발전하고 성장하고 무한경쟁사회에서 우수한 삶을 가꾸어 가야 하겠으나 아무리 지위가 올라가고 역할이 커져도 그 바탕은 ‘겸손함’에 근거하여야만 한다. 그래야 그 인생이 향기로울 수 있게 된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앞의 책, 제 1권 제 6장에서 “욕망을 다스림에 대하여”라는 주제의 묵상을 전하여 준다. 그는 “사람이 어떤 일을 지나치게 바랄 때에는 그로 인하여 불안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교만하고 탐욕이 강한 사람은 결코 평온할 수 없다. 세속적인 사람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 그 평화는 신령한 일에 충실하려는 사람의 마음에만 깃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신 동안에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도다.”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런 무소유의 삶을 살아 가셨다. 그러나 지난 이천년의 교회 역사에 예수는 그를 생명의 구주로 믿고 따르며 마음속에 그 분을 구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을 통하여 영원히 그 영롱하고 아름다운 향기가 마르지 않는 향기의 근원이 되셨다.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과 4세기의 성자인 어거스틴과 얀 후스와 중세의 종교 개혁가인 마틴 루터와 쟌 칼뱅과 영국의 요한 웨슬리와 죠지 뮬러와 찰스 스펄전과 스코틀랜드의 쟌 낙스와 미국 교회사의 조나단 에드워드와 필립 브룩스와 한국 교회사의 주기철, 손양원, 유관순, 윤동주 같은 이들에게서 전해지는 그런 향기 말이다. 세익스피어와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의 문학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미술 세계 속에 그리고 헨델과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 가운데서 풍겨나는 그런 예수의 향기처럼 말이다. 26살의 짧은 생을 조선 땅에서 마쳤으나 “내게 천개의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모든 생명을 조선을 위해 바치리라”(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고 마지막 편지를 남겼던 루비 켄드릭(Ruby Rachel Kendrick,1883-1908)선교사 같은 이의 선교의 열정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은 후대에 얼마나 그 삶의 향기가 고매하고 숭고한가. 그녀가 언제 손톱에 메니큐어 한번 제대로 칠해 보았겠는가. 발톱에 페티큐어 한 번 발라 보았겠는가. 그녀가 언제 체중 줄이고 몸매 염려하며 그런 청년기를 지냈겠는가. 그는 1900년대 초의 조선 땅, 그 열악한 환경에서 일본에 국권이 기울어 가던 조선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를 전해 주려고 씨름하던 꽃다운 젊음을 고스란히 남의 나라에 바치고 간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 그런 향기 나는 인생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지 않나. 그녀의 편지를 받아 읽은 미국 텍사스 엡윗 청년회의 연합 선교 대회에 참석했던 청년들은 그 다음 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悲報)를 전해 들었다. 그런 저들 가운데 선교사로 자원한 이들이 20명이나 되었다. 그 이후로 텍사스 엡윗 청년회에서는 해마다 특별 선교 헌금을 하여 조선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사역을 지원하였다. 루비 켄드릭은 죽기 전에 “내가 죽거든 텍사스 청년회원들에게 가서 열 명 씩, 스무 명 씩, 오십 명 씩 한국으로 오라고 일러 주세요”라고 유언하였다. 이단과 사이비의 미혹이 극심해 져 가는 이 때에 복음을 복음 되게 하는 선교의 사람들이 처처에 세워져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하는 복음의 푸르른 계절이 오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사도 바울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고 편지하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