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인생
방산 비리와 관련하여 7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해군의 예비역 참모총장이 구속되고 그와 관련된 혐의에 대하여 수사를 받아 오던 예비역 해군 소장이 행주대교에서 한강에 투신하여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사십대 초반의 앞날이 창창한 판사가 2억 7천 여 만원의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대표가 8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이와 유사한 비리의 사건 소식이 끊임이 없다. 최근에 라디오 방송에 소개되는 공익 광고 중에“내가 하는 부탁(付託)이 남이 보면 청탁(請託)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선물(膳物)이 남이 보면 뇌물(賂物)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단합(團合)이 남이 보면 담합(談合)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할 땐 정의(正義)와 의리(義理)이지만 남이 볼 땐 부정(不正)과 비리(非理)일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자주 듣게 된다. 사람이 한 평생을 돈, 이성, 명예 등의 집착으로부터 구설수에 오르지 않고 깨끗하게 살다가 한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최근에 많은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영화‘국제 사장’의 마지막 대사인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덕수가 6. 25 전쟁 중에 육로의 피난길이 차단된 당혹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흥남부두의 철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하여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그 개인의 삶을 다룬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내용은 곧 우리나라의 불운했던 현대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지리도 가난하고 어지간히도 못살던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된 배후에는 묵묵하게 자기 가정을 지키며 나라 안팎의 생활전선에서 적은 소득과 박봉을 받아 들고 검소하고 성실하게 묵묵히 살아온 적지 않은 그와 같은 소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쉽게 벌어 치부하고 떵떵거리며 살려는 졸부들이 늘어나는 것이 시대적인 현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자수성가한 그 누군가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바쁘고 고가 미술품이나 골동품 사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사회와 국가를 향하여 부를 순환하려는 마음이 없는 이들을 대할 때에 미국의 앤드류 카네기나 잔 와나메이커나 잔 록펠러나 오늘 날의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같은 대 부호들이 그들을 무어라고 평가할까. 가령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에 대하여 현장의 노동자들이 평가하는 목소리를 들어 보면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역사가 인정하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나. 그가 건축하여 기부한 공공도서관만도 3천개에 이르고, 교회음악에 대한 관심이 깊어 7천 대가 넘는 파이프 오르간을 교회에 기증했다. 또 미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카네기 멜론대학의 전신인 카네기 과학연구원과 기술원을 설립했다. 시카고 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 단과대학을 지어 사회에 기증했다. 그 외에도 각종 문화예술 분야에 거액을 쾌척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의 90%가량인 3억 6,500만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였다. 그는 예순 다섯 살 때에 발간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라는 책에서 부유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모든 수입을 공동체의 선을 위해 써야 할 ‘신탁 자금’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책은 그가 1886년부터 13년간 언론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것이었다. 그 책에서 그는 개인적 부는 공공의 축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통장에 많은 돈을 남기고 죽는 것처럼 치욕적인 인생은 없다. 인생의 3분의 1은 교육에, 3분의 1은 돈 버는 일에, 나머지 3분의 1은 가치 있는 대의를 위해 써라.”는 등의 인생관을 갖고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난한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3살 때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 슬럼가에 정착했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그는 18살 때에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해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기 시작했다. 그는 28살 때에 키스톤 교량 회사를 공동 설립함으로써 철강 분야에 처음으로 뛰어든 뒤에 유니온 제철소와 루시 용광로 회사를 연이어 설립하며 사업의 폭을 넓혔다. 나중에 카네기 철강회사의 제철 생산량은 연간 300만 톤에 이르렀고 이는 미국 전체 생산량의 삼분의 일에 이르렀다. 1901년 J. P. 모건사에 회사를 매각할 당시의 금액은 당시 일본의 국가 예산의 네 배반에 이르는 거대한 기업이었다. 그는 그 자금으로 다음 해에 사회사업 재단인 ‘카네기재단’을 만들고 쌓아 온 부의 사회 환원에 심혈을 기울였다. 초등학교 4년 교육이 학업 기회의 전부였던 그는 꾸준히 노력하여 자기 발전에 힘썼고 영국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등의 학자를 사부로 모실 정도로 학문의 연구에서 힘썼고 8권의 책을 남기기까지 하였다. 그는 1889년 6월 <노스아메리칸리뷰>에 기고한 ‘부(Wealth)’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선에 대하여 “죽음을 앞두고 공공 기증을 하는 것, 가족에게 유산을 남기는 것, 그리고 평생에 걸쳐 박애를 실현하는 것.”의 세 가지 의견을 밝혔다. 그는 처음 두 가지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세 번째 방식의 실천에 힘썼다. 그는 기업경영에 성공한 사람은 자선사업도 직접 나서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실천하며 살았다. 깨끗한 부자로 살면서 선을 실천할 수 있다면 이것처럼 아름다운 일이 그 어디에 또 있을까. 성경인 잠언에 보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연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잠23:1, 3, 4, 5)고 하였다. 창세기의 청년 노예 요셉이 여 주인의 날마다의 유혹 앞에 두 눈을 딱 감고 그 유혹의 늪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면 그가 노예 생활하던 애굽에서 바로 왕 앞에 발탁되고 총리가 되는 길이 열릴 수 있었을까. 광야와 동굴로 피신하던 긴긴 세월 동안의 다윗이 들판에서 산적 노릇이나 하며 지냈다면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는 길로 인도하여 주셨을까. 아간은 여호수아 때의 아이 성 전투 현장에 뽑혔던 삼천 명의 특공대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전투 수칙을 잘 지키고 용감한 병사로 전쟁을 마쳤다면 나중에 가나안 점령이 끝난 후에 군대의 요직을 거쳐서 사회생활의 앞날에 서광이 비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군 생활 초기부터 재물에 눈이 멀었고 더군다나 전쟁 중에도 탐심에 마음을 빼앗기는 바람에 가족이 몰살당하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다. 아이 성 전투란 여리고 성 전투 후에 이어진 가나안 공략의 역사적인 전쟁이 아니었던가. 그런 시대적으로 중차대한 전쟁의 현장에서 승리는커녕 순식간에 36명의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고 전쟁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전쟁에서 퇴각한 백성들의 마음은 물같이 녹아 내렸고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여호와의 괘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해가 저물도록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쟁 실패의 원인을 밝혀 낸 것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은 “범죄하였다, 나의 언약을 어겼다, 도둑질 하였다, 속였다”고 지탄하시면서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여호수아는 앞장서서 문제의 요인을 찾아내었고 시날 산의 외투와 은과 금 덩어리를 감추었던 아간은 끌려 나가 돌로 치고 불사르는 무서운 심판대 앞에 서야만 했다. 아간의 자녀들과 짐승들까지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쌓인 돌무더기에 가리어 진채로 아골 골짜기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탐심은 피할 수 없는 불행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