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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201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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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5-03-07 23:33 조회 13,707 댓글 0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인간이 칼을 만들어 사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다. 석기 시대에는 동물의 뼈나 돌을 갈아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철기 문명이 발전하면서 각양 다양한 용도의 칼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칼의 용도가 다양하긴 하지만 전쟁의 역사를 겪어 온 인류는 공격용 무기로서의 칼을 발전시켜 왔다. 성경, 이사야 2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끝 날인 말일(末日)에 그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은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고 말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열방 사이에 많은 백성들을 판단하시는 여호와이시다. 열방을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는 분명하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날은 평화의 시대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그 어느 때라도 그런 평화가 이 땅에 완전하게 이루어 진 때란 거의 없었다. 인류는 항상 불안정한 상황에서 평화를 목말라 하면서 살아 왔다. 하나님은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2:4)고 선포하셨다. 칼이나 창이나 보습이나 낫이나 그 재료는 같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칼이나 창을 좋아 하지 아니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보습과 낫을 사용하여 땀을 흘려 일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가며 서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은 칼로 서로를 치거나 전쟁을 연습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언제나 주변과의 세력 다툼 가운데 잡아먹거나 혹은 잡아먹히는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이 같은 원리는 동식물의 세계나 인간의 삶에 공존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H. (Edward H. Carr, 1892-1982)는 그의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극동 아시아의 평화로운 백의민족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는 주변 열강의 침탈의 각축장이 된지 오래다. 근현대사 뿐만 아니라 한반도는 오래도록 주변 국가들이 탐내는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런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버티어 내야만 하였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은 그 날에는...포도나무가 있던 곳에 찔레와 가시가 날것이라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7:23-25)라고 예언하셨다. 하나님은 평화의 보존이 쉽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하나님을 떠난 자에 대한 심판의 경고가 없지 않다. 요엘서에 보면 이사야를 통하여 칼과 창으로 보습과 낫을 만들 것이라고 말씀하시던 평화의 하나님께서 전혀 반대의 명령을 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과 심판을 선포하신 내용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며 병사로 더 가까이 나아오게 하라.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3:9-10)라고 명령하셨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요즘처럼 친북 혹은 종북론자들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때에 이와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이들의 의견은 분분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다. 금번에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1973-)주한미국대사를 식칼로 찔러 테러한 김기종 같은 이가 활보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는 27년 전인 1988년 이후 줄곧 폭행이나 공무 집행 등의 혐의로 이미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자다. 그 동안의 솜 방망이식 처벌이 오늘날의 화를 부르고 만 것이다. 그는 북한에 여덟 번이나 다녀온 종북 성향의 극단주의자이다. 그런 그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에 민주 평통 위원과 통일부 통일교육 위원 자리에 임명한 바 있다고 하니 혀를 찰 일이다. 범인 김기종은 어느 날 갑가지 출현한 괴한이 아니라 지나 온 역사가 그를 키워 온 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적성(利敵性)이 있다고 경찰이 주목하고 있는 단체가 61개이고, 그 회원 수가 2만 명도 넘는다고 한다. 저들은 처처의 촛불집회나 폭력 시위 현장에 단골로 등장한다. 저들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죽창이나 죽봉이나 쇠파이프나 화염병 사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극동아시아의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남북한이 휴전선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는 분단국가이다. 북한과 휴전선으로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수교를 맺은 것은 1882522일이다. 그날 제물포 화도진(花島鎭)에서 조선 전권대신 신헌(申櫶), 부대신 김홍집(金弘集)과 미국 전권공사 슈펠트 사이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주한 미국 대사(Chief of Mission Ambassador in Korea)는 한미 관계의 주한 대사관의 수장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인 마크 리퍼트 대사는 지난 해 10월에 최초의 한국인 출신 대사로 임기를 마친 성 김(Sung Kim, 1960-) 대사의 후임으로 부임한 젊은 친한파 인사이다. 한국과 미국의 수교 이후의 발전사를 뒤 돌아 보면 오늘 날 친북 혹은 종북 운운하는 이들의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극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청나라였던 중국은 우리보다 38년 빠른 1844년에 미청조약(美淸條約)을 맺었고 일본은 1854년에 미일조약을 맺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18668월에 일어난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호 사건 이후 미국은 조선을 개항하는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다. 이에 1867년에 미국 전권 공사인 슈펠트(R. W. Shufeldt)는 탐문 항해을 단행하여 거문도(巨文島)의 해군기지건설과 조선개항계획을 수립하였다. 몇 해 후인 18715월에 미국 정부는 포함외교(砲艦外交)로써 조선의 개항을 강제로 성취하려고 조선원정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1876년에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고 그 이태 후에 미국의 상원의원 사전트(A. A. Sargent)가 조선개항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조선을 개항하면 경제적으로는 대()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구현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할 수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조선의 개화운동을 도와줄 수 있다.”는 세 가지를 강조하였다. 이로써 미국 정부는 무력에 의한 포함외교(砲艦外交)정책을 자제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섭을 벌이며 일본을 앞장 세워서 조선개항을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대한정책의 최고 책임자였던 중국의 이홍장은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직후부터 나름대로 조선개항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홍장은 조선을 조약 체제(treaty system)에 편입시켜 북으로는 러시아의 남침을, 남으로는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해 보려는 연미론(聯美論)을 구상하였다. 연미론의 기본노선은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여 러시아와 일본 세력을 견제할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한종주권(對韓宗主權)을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었다. 당시, 미등의 세력 각축장으로 풍전등화와 같던 우리나라가 오늘 날과 같이 번영하는 나라가 된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이 당시에 자국의 이익을 내심 추구하고 있었다고 하여도 오늘 날의 번영은 감사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배후에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예언은 다시 반복된다.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4:3) 이 땅에 그런 평화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역사를 칼로 발전시켜 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새벽,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칼로 쳐 내린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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