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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일이 계속되는 세상 201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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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7-20 19:20 조회 14,290 댓글 0
 
악한 일이 계속되는 세상
 
 
세상이 참으로 악하다. 지난 18일, 승객 298명을 태우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던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가 러시아 국경 근처 우크라이나에서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탑승객 298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그 중에는 국제에이즈학회 회장을 역임한 네덜란드의 저명한 인간면역결핍유전자(HIV) 연구자 욥 랑게 박사를 비롯한 저명한 에이즈 연구자와 의료계 종사자를 비롯한 에이즈 퇴치 활동가 등 100여 명이 함께 탑승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25일 멜버른에서 열리는 국제에이즈학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욥 랑게 박사는 에이즈 연구 분야에 있어서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항공 여객기 피격 지역은 우크라이나 반군이 통제하고 있는 내전 중인 충돌 지역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담화를 통하여 친 러시아계의 우크라이나 반군 세력이 저지른 만행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다시 냉전이 시작되는 것 같다. 역사 속에 이와 같은 만행이 처음 일어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인간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악의 뿌리에 대하여 경악하게 된다. 동서고금에 이와 같은 악한 일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 경우는 허다하다.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 일본의 히로히토, 리비아의 카타피, 에집트의 무바라크,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 북한의 김일성 등 저들의 악행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다. 지난 2001년 9월 11일, 911사태로 기억되는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남부에 있던 세계무역센터(WTC)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를 받은 사건의 배후에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같은 잔악한 인물이 있었다. 그 같은 날 아침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국방성인 펜타곤도 같은 테러 조직에 의하여 비행기 테러를 당하였다. 이 사건으로 2,974명의 무고한 인명과 19명의 공중납치범들이 사망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 무함마드 빈라덴은 사우디아라비의 왕족과 가깝게 지내던 사업가였다. 그가 열 번째 부인을 통하여 낳은 아들이 오사마 빈 라덴이다. 그는 2미터 가까운 큰 키였던 그의 어머니를 닮아서 193cm의 장신이었다. 공부도 잘했고 시를 쓰거나 독서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축구도 좋아 하였다. 그는 주변 동료들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는 온화한 성품의 청년기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악을 계획하고 감행하였을까. 이슬람의 종교적인 신념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그는 샤리아를 회복하는 것만이 무슬림 세계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었다. 샤리아(Shari'ah)란 8-9세기에 성문화된 이슬람의 성법(聖法)이다. 그는 샤리아만이 이슬람 세계에서 “범아랍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른바 지하드라고 선언된 폭력을 바탕으로 하는 이러한 믿음은 흔히 사이드 쿠트브가 주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쿠트비즘이라고 불린다. 그는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끌었던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이야말로 “유일한 이슬람 국가”라고 믿었다. 그는 미국이나 다른 이슬람권이 아닌 다른 국가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동반한 지하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특히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반드시 축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결국 그 끔찍한 911 테러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사건이 지난 10년 후에 그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체포 작전 명령을 받고 투입된 요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유해는 수습되어 생명 안면 인식 시험과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그의 시체는 땅에 매장할 경우 추종세력들이 그 곳을 성지로 정하고 테러활동을 계속하려는 의도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아라비아 해에 수장되었다. 물론 하루를 살아도 빛과 어둠이 있다. 낮의 광명이 지나면 밤의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들고, 반면에 그 깊은 어둠이 지나고 나면 눈부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새날이 시작된다. 역사에는 이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완전한 창조의 동산인 에덴에도 악은 있었다. 창세기 3장 1절에 보면,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하니라”고 하였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은 그와 같은 악한 존재를 왜 에덴에 만드셨나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의 고유한 영역일 뿐이다. 선과 악, 의와 불의, 참과 거짓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와 같은 질문을 제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여러 명의 작가에 의하여 편집된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라는 책에 보면 동서양 석학들의 90가지의 질문과 그 내용을 나열하고 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바로 그들은 주변이나 남들을 비판하기에 앞서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즐겨한다. 인간은 누구나 어려운 결정 앞에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습관적인 생활 속에 갇혀서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각 분야마다에서 최고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지를 엿보게 하는 책이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라. “요즘과 같은 악한 일들과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때에 나는 스스로에게 무슨 질문을 하며 살아가는가?”하고 말이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범죄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부끄러운 곳을 가리고 내외간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아담에게 찾아 오셔서 물으셨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세월은 흘러갔고 아담과 하와에게서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다. 저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이미 가인은 일을 저지르기 전부터 동생 아벨에 대하여 몹시 분해하고 안색이 변해 있었다. 하나님도 그런 가인의 심경의 변화를 아셨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는 경고의 말씀을 먼저 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동생을 쳐 죽이는 악을 행하고 말았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후에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징이 있다.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도 그랬고, 아이 성 전투 현장에서의 아간도 그랬고,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그랬고, 예수의 제자 가롯 유다도 그랬다. 악을 조장하는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도록 인간의 귀를 막아 버리고 인간의 양심이 화인 맞은 것처럼 마비되게 해 버린다. 압살롬이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나날을 살아가는 제 정신이었다면 어찌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부친 다윗의 왕권을 찬탈하고 아버지의 열 명의 후궁들을 제 품에 안는 패륜한 짓을 져지를 수 있었겠는가. 천국의 상급은 물론 이지만 만약 지옥의 심판이 없다면 인생사가 참으로 불공평할 것이다. 여성 교도소 안에 갇혀 지내는 수형자 들 중에서 살인을 저지른 여성들의 거의 다가 근친 살해라고 한다. 그렇다. 사람이 낯 설은 대륙에 건너가서 살인하는 것이 아니다. 내 곁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에 대하여 원한을 삭히지 못하고 살다 보면 ‘욱’하는 격정이 불행을 부르는 것이다. 악은 악을 낳는다.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의 싸움은...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다”(엡6:12)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인간을 해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8:2)뿐이다. 이 땅에 그 분의 은혜가 임해야 만 서로가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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