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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사흘 밤을 20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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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6-16 02:34 조회 16,176 댓글 0
 
여수에서 사흘 밤을
 
 
지난주에 여수에서 사흘 밤을 묵었다. 그 곳은 질곡 많은 역사의 회한이 배어 있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 땅이기도 하다. 여수에는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 때에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하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 중의 한 곳인 ‘선소’(船所)라는 곳이 있다. 그림 같은 바닷가의 자그마한 만(灣)에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당시에 거북선을 해안가에 끌어 당겨 매던 돌기둥도 망부석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부터 전쟁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거북선을 건조하였고 각종 병기를 점검하고 수군(水軍)을 훈련시키는 등 분주한 날들을 보냈다. 여수 해안가에 복원되어 있는 거북선의 내부를 자세하게 둘러보고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은 그 시대에 보냄 받은 구국의 영웅이었다. 여러 해 전에 그 곳 지방의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기는 한데 이번에 여수광양지방의 26교회가 모여 집회하는 웨슬리 성회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시 방문한 도시인 여수는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다. 남해안의 여러 마을과 도시들이 거의 다 그러하지만 특히 ‘여수’(麗水)는 그 지명처럼이나 설명으로 다 할 수 없는 풍광과 매력을 품고 있다. 통영이나 남해에 가면 그 곳대로, 진해나 순천이나 목포나 군산, 대천 등에 가면 거기대로 얼마나 좋은가. 참으로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천혜의 자연을 가진 반도 국가이다. 하늘에서 쏟아 부은 듯이 점점이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은 실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산과 들과 바다로 연접한 자연의 혜택과 섬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첩첩이 묻어나는 땅이 여수이다. 여수를 상징하는 새는 갈매기라고 한다. 그 곳을 상징하는 꽃과 나무는 동백꽃과 그 나무이다. 오동도의 동백나무 숲을 둘러보면 그럴 만도 하다. 금 번에는 시간이 마땅치 못하여 오동도에 가 볼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역사적으로는 선사시대와 고대의 흔적들도 물론 발굴 되어 보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삼국 시대의 백제와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배를 거쳐서 고려와 조선 시대를 지나 현대의 역사가 전개된 아픈 사연을 적지 않게 품고 있는 곳이 여수이다.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을 비롯한 수 없는 국난을 겪어 왔던 곳이기도 하다. 왜군들은 평화롭던 조선 땅에 쳐들어 와서 곡물과 열매를 비롯한 모든 생산물을 수탈해 갔고 부녀자들을 납치 하거나 겁간(劫姦) 하였다. 섬과 육지에 처절하고 쓰라린 상처가 처처에 배어 있는 땅이 그곳이다. 조선의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도의 좌수영과 우수영이 방어력을 잃어 버렸고 국토의 대부분을 일본군이 점령하였다. 그러나 전라좌수영이 설치되었던 여수 지역은 이순신 장군이 앞장 선 수군(水軍)과 황득중(黃得中)을 비롯한 지역민들의 항전으로 전라도 지역을 지키게 되었다. 여수 지역에서의 승리는 조선의 군대가 전열을 정비하고 명나라의 원조를 받아 전세를 역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임진왜란 중에는 여수 흥국사에서 수행에 정진하던 승려 400여명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승수군(義僧水軍)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수군과 손잡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 대표적인 승려가 삼혜(三惠)와 의능(義能)이다. 이처럼 죽기를 각오한 희생의 대가로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대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으셨지만 말이다. 1598년에는 여수에 삼도수군통제영인 ‘진남관’(鎭南館)이 건축되었다. 그 곳은 이순신 장군 때에 왜침을 물리치던 7년 여 간의 항일 전쟁의 지휘 본부였다. 이순신은 1593년, 전쟁 중에도 여수의 송현 마을에 팔순의 어머니 변씨를 가까이 모실 정도로 효심이 지극하였다. 돌산 앞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곳은 이순신 장군 때에 전라, 경상, 충청도의 수군을 통제하던 지휘 본부인 ‘진해루’가 있던 자리이다. 진남관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주춧돌로 하여 68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240평 규모의 기와를 얹은 단청이 고운 웅장한 목조건물이다. 정유재란 때를 비롯하여 두 차례 불 탄 적이 있다고 하나 다시 잘 복원되어 역사의 교훈을 전해 주고 있다. 그 곳 진남관을 버티고 있는 소나무 기둥들은 둘레가 자그마치 평균 2. 4m에 이르는 거의 500여년 씩 된 금강송으로 지어져 있다. 세월이 흐르며 19세기 중엽의 조선 땅은 일본과 청나라와 러시아와 영국의 세력 각축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부동항(不凍港) 확보를 위해 남하하던 러시아 군대는 이미 블라디보스톡을 선점하고 함경도의 영흥만과 제주도와 일본의 대마도 까지 점령할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에 영국은 러시아의 동남아 진출을 방어 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1884년에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러시아는 함경도의 영흥만을 점령하려는 야욕을 갖고 있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국제적인 명분을 앞세우고 조선 점령에 야심을 불태우던 나라는 중국과 일본과 영국이었다. 결국 영국은 청나라가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1885년 4월 15일, 군함 6척과 어선 2척을 앞세우고 거문도를 점령한 후에 영국 국기를 높게 게양하기에 이르렀다. 그날은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선교를 목적으로 첫 발을 디딘 부활절인 4월 5일이 지난 열흘 후였다. 거문도는 한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대한해협의 문호이며 전략적 요충지이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해밀턴 항’(Port Hamilton)이라고 부르며 병영을 세우고 포대를 쌓는 등 영구적인 주둔 의지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던 청나라의 이홍장은 2년 여간 영국과의 협상을 통하여 러시아는 더 이상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받아 냈고 이러한 사실을 영국에 통보하였다. 결국 고종 24년인 1887년 2월 27일, 영국군은 거문도를 점령한지 22개월 만에 철수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 청나라는 조선을 배제한 채 열강 사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였고 청나라는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려는 야심을 점점 공고하게 해 나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 주도권 싸움은 1910년 8월 22일, 일본이 한국 통치를 시작하는 경술국치인 한일합방까지하게 되었다. 슬프고 처절한 식민지 세월의 아픈 날들을 뒤로하고 해방이 되었으나 1948년 10월, 이승만 정권하에서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좌익과 우익 간에 유혈 충돌을 불러 왔고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을 당하는 참극을 낳았다. 6. 25 발발 한 달 여 만인 7월 하순에 전남 광주를 점령한 북한 인민군 6사단은 목포, 보성, 순천, 하동, 여수 등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같은 전쟁의 과정에 유엔군의 반격을 받고 퇴각하던 인민군들은 우익 인사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9월부터 애양원의 원장이요 담당 전도사로 부임한 손양원(1902-1950)목사는 여순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을 인민군의 손에 잃고 말았다. 그 인민군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일화는 이미 역사 속에 널리 알려 져 있다. 손양원 목사는 6. 25가 발발한 뒤에도 주위의 피난 권유를 뿌리치고 애양원의 나환자들을 섬기던 중 공산당들에게 끌려갔고 온갖 어려움을 당하던 중에 9월 28일 여수의 미평과수원에서 48살 나이로 순교 당하고 말았다. 휴전 이후 오늘 날 이 땅의 처처에 모처럼 평화가 찾아 왔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닌가. 오늘 날 우리나라는 잘 사는 나라요 세계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 한 나라로 발전해 왔다. 가는 곳마다 예배당도 많고 하나님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왜 국가적으로 부끄럽고 민망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일까. 이제 잘 살기 운동은 그만하고 제대로 진실하게 살기 운동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예레미야 5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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