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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팔선 이북에서 쓰는 편지 201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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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3-01 21:29 조회 15,869 댓글 0
 
삼팔선 이북에서 쓰는 편지
 
 
김 집사님! 오늘 저는 철월 평야 건너편에 저 만치 바라다 보이는 백마고지 앞에까지 와서 있습니다. 요 며칠 간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 먼지가 심하여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오늘은 전방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집사님은 당시에 제 9사단 예하 부대 소속으로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하셨다가 닷새째 되는 날 포탄의 파면에 눈 위 이마를 다치시고 전곡의 유엔군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셨다고 하셨지요. 그 뒤로 서울과 대구와 부산의 야전 병원으로 연이어 후송 되는 치료의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 제주도의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빨치산 공비 토벌 작전에 참가하시고 5년 4개월 만에 제대하셨다고 하셨지요. 1929년생이시니까 집사님께서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하실 때의 나이가 23살이셨네요. 그 때 포탄의 파편이 5mm만 더 깊이 이마에 스쳐 지나갔어도 생명이 위험 하리 만큼 무서운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하셨으나 잘 치료되고 회복되신 후에 남은 작전 임기를 마치시고 제대 하신 후에 올해 86세가 되시도록 가정을 이루시고 자손들을 보시며 장수 해 오시도록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시지요.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은 백마고지 전투를 기념하는 기념탑이 있는 나지막한 언덕자락입니다. 금주에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교회가 있는 포천군의 연천이란 지역도 지금이야 휴전선 이남이지만 6. 25 이전에는 3.8선 이북에 위치했던 곳입니다. 말로만 듣던 그 참혹했던 백마고지 전투 현장이 저 만치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 당시의 전쟁 참상을 기록한 기록관의 기록과 사진 자료들을 들여 다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6. 25 전쟁 기간이었던 37개월 동안 전국 강토의 처처에서 벌어진 전투 현장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395m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자락을 점령하기 위해서 1952년 10월 6일부터 열흘 동안에 무려 12차례나 밀고 밀리는 전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3. 8선 이북에 위치해 있던 철원 평야의 곡창지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물러서려 하지 않는 소모전을 계속하여 감행하였다는군요. 사료에 보니 불과 열흘 동안의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했던 중공군만도 1만 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있었고 수많은 포로들이 붙잡혔다고 합니다. 국군 제 9사단의 병력도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395m의 산자락에 쏟아 부은 포탄만도 아군 측에서 219,954발, 적군에서 55,000여발 등 자그마치 274,954발 이상을 퍼 부었다고 하니 얼마나 처절한 전투이었는지 가히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백마고지에서 포로로 붙잡힌 중공군들의 증언에 따르면 적군은 병사들에게 60도가 넘는 독한 술인 중국 산 배갈(baigar)을 퍼 마시게 하고 양손에 수류탄만을 들게 한 채로 일본의 가미가제식으로 전투에 참가하도록 독려하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벌어진 후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 내려갔던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15일의 맥아더 장군이 앞장 선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하면서 압록강 변까지 밀고 올라 갈 수 있었다지요. 그러나 100만 명이 넘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두 차례 38선을 넘나드는 밀고 밀리는 전투 끝에 백마고지 전투 현장에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지요.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야산입니다. 전쟁 이전에는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하던 평범한 산자락에 ‘백마고지’란 별명이 붙여진 것은 전쟁 중에 수목이 다 불타고 쓰려져서 앙상해진 산언덕의 형상이 마치도 누워 있는 백마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 편 또 다른 설로는 어느 연대의 부연대장이 전쟁외신기자의 질문에 산 이름을 ‘white horse hill'이라고 대답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여하튼 이후로 이 전투에 참가했던 제 9사단의 사단 애칭이 ‘백마부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제 9사단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은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에게 전투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인 1952년 10월 5일에 “상승 사단이며 무적 사단인 제 9사단 장병들은 불굴의 전투 정신과 타오르는 애국심으로 강철 같은 의지와 인내심을 가지고 반드시 전투에 승리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승리의 순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수양제의 백만 대군을 무찔렀던 을지문덕 장군과 당 태종의 삼십만을 섬멸하였던 연개소문 장군의 용기를 기억하자. 나를 비롯한 사단의 모든 전우들이여 여기에 우리의 뼈를 묻자. 그리하여 우리 9사단의 빛나는 명예를 지키자.”는 내용의 훈시문을 보냈습니다. 김종오 장군은 1921년 생으로 25살에 소위로 임관하고 31살에 제 9사단장으로 전쟁을 지휘한 인물입니다. 6. 25가 끝난 후에 그는 제 1 군단장과 제 5 군단장을 거치고 1961년, 41살 때에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후 몇 해 후에 전역하였고 45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념관 서관에는 노상 이은상 선생께서 쓰신 백마 3 용사를 기리는 ‘추모시’가 걸려 있습니다.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여기 자유의 재단에 피의 재물이 되신 세 군신을 보라 그들의 짧은 인생을 바쳐 조국과 함께 영원히 살았다 거룩한 우리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악랄한 공산도배들 그들과 싸우며 피로 물든 백마고지! 한줌의 성한 흙이 없고 한 덩이의 옹근 바위가 없이 그토록 처절했던 포성과 포연 속에 쓰러진 젊은 혼들이 오히려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울려 하나니 아, 거룩하여라! 아름다워라! 그들의 희생과 높은 뜻이여. 우리의 그 충정 그 신념 본받아 앞날을 바로잡아 천추만대 부끄럼 없는 새 역사를 지으라고.” 백마 3 용사란 강승우 소위와 오귀봉 하사와 안영권 하사가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빗발치는 포탄 속으로 뛰어서 고지 정상까지 도달하였고 적의 기관총 진지를 박살 낸 후에 장렬히 전사한 전투혼을 기린 시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기가 충천해진 제 9사단 장병들은 순식간에 전열을 가다듬고 고지를 탈환하였으며 백마고지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그 후 저들 세 인물은 백마의 삼군신(三軍神)으로 추앙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날은 제 9사단 30연대와 서울 어린이 대 공원 안에 저들을 추모하는 기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백마고지 위령비 뒤 면에는 모윤숙이 쓴 ‘백마의 얼’이란 추모시가 눈길을 끕니다. “풀숲에 누워 그날을 본다. 하늘이 울리고 땅이 갈라지듯 몰려오는 저 산과 강에서 우리는 끓는 피로 용솟음치며 넘어지려는 조국을 감쌌노라. 숨지려는 조국을 불러 일으켰노라. 이 한 몸 초개같이 바치려 숨찬 목소리로 다- 같이 강물을 헤치고, 산을 부수며 달려오는 적들을 막았노라. 수많은 적을 쫓아 소탕하고 조국의 얼로 내달려 떡갈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원수의 고함을 눌러 버렸나니 쓰러지며 죽으면서도 다시 일어나 숨결을 돌리고, 숨지려는 조국을 살렸노라. 나의 조국 영원한 땅이여 만세를 가도록 그 얼은 살았느니 지금도 그 때처럼 귀를 기울이고 저 몰려오는 적을 막고 있노라. 푸르러 푸르러 영원한 젊음우리는 그 품에 안겨 안식하리라. 어머니 조국에 이 혼을 맡기어 후회 없이 더 강하게 앞으로 달려가리라.” 백마고지 전투가 끝나기 삼일 전인 1952년 10월 13일 오후에 이승만 대통령은 밴 플리트 미 8군 사령관과 함께 제 9사단을 방문하고 눈물을 흘리며 장병들을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집사님! 36년간의 일제의 식민지 강점으로 인한 참담했던 지난날과 동족상잔인 6. 25 전쟁의 비극을 겪은 폐허의 땅에 다시 우뚝 일어선 자랑스러운 이 민족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깃들도록 새벽마다 기도하시는 모습을 뵈올 때에 숙연한 마음이 생깁니다. 집사님! 저의 선친도 6. 25 참전용사로 상해를 입으시고 81년을 사시다가 몇 해 전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선친께서 시신을 기증하셨던 의과대학병원 측으로 부터 삼년이 지난 이제야 유해를 인계 받아 여주 호국원에 안장하려고 합니다. 집사님! 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올 봄도 내외분 모두 주님 안에서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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