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밴드에 공유
예수사랑교회
복음 인재를 양성하여,열방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칼럼    |  지성래목사  | 칼럼
죽이고 죽임 당하고... 1215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으로 보내기
  • 밴드로 보내기
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3-12-14 20:30 조회 14,699 댓글 0
 
“살인하지 말라.” 이는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이다. 하나님은 살인을 계명으로 금하셨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죽이고 죽임 당하는 피 흘림과 보복으로 점철되어 왔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형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제사가 응답되지 않은 화풀이로 몹시 분하여 하고 안색이 변해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형 가인은 동생과 함께 들판에 있을 때에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 막상 동생을 죽이고 나니 가인의 마음속에 찾아 드는 불안을 견딜 길이 없었다. 그 후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찾아 오셔서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 때에 가인은 착잡하게 대답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그 얼마 후에 가인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고민을 털어 놓았다.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이는 살인의 결과로 자신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심리적 불안정과 죄책으로 인한 중압감을 너무나도 잘 설명한 심리학적 반증이다. 이 사건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로 에덴에서 추방된 후에 일어난 인류 최초의 가정 참극이 아닌가. 며칠 전에 북한의 김정은은 제 2인자였던 장성택을 총살시켰다. 장성택은 누구인가. 김일성의 사위이고 김정일의 매제이며 김정은의 고모부이다. 1946년생이며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김일성 가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오늘 날까지 북한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1992년에는 북한 최고의 영예인 김일성훈장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2년 전인 2011년 12월 17일, 69살에 세상을 떠난 김정일의 빈자리에 김정은을 북한 권력의 중심인물로 책봉하는데 최고의 힘을 발휘한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일순간에 북한 역사의 중심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는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는 부모형제나 친인척 그 누구라도 제거할 수 있다는 공산정권의 극악한 실상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枪杆子里面出政权).” 이는 중국 공산당 역사의 핵심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던 모택동이 한 말이다. 1927년 8월 7일, 한커우(漢口)에서 열린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은 천두슈(陳獨秀)의 우경 투항주의의 잘못을 지적하며 이처럼 농민 중심의 무장투쟁을 역설하였다. 군사력이 약해서 국민당에게 끊임없이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던 공산당의 절박한 현실을 무장투쟁의 길로 전환시켰던 모택동은 결국에는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무력으로 승리함으로써 1949년에 정권을 수립할 수 있었다. 통계에 의하면 독일의 히틀러는 600여만 명 이상의 유태인을 학살하였고, 소련의 스탈린은 1000만 명 이상의 양민(良民)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모택동에 의하여 학살된 숫자는 자그마치 7500만 명이 넘는다. 문제는 이런 모택동을 중국 역사의 핵심 권력자들은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폴 포트(Pol Pot)로 알려져 있는 샐로스 사르(Saloth Sar,1925-1998)는 캄보디아의 사회주의 혁명가였다. 그는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정당이었던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였고 1976년부터 1979년까지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의 총리였다. 폴 포트는 영어의 ‘Political Potential’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의 집권 기간 중 지주와 자본주의자들과 반대파 200만 명 이상이 숙청되었다. 비참하게 죽인 것이다. 그 외에도 통계가 정확하지 않은 국민 다수가 가난 속에 굶어 죽었다. 그는 집단 농업화 정책을 강제로 시행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많은 국민을 심문과 고문으로 죽게 한 소위 킬링필드의 주인공이다. 1979년에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고 북측 국경 밀림 지대로 달아나 게릴라전을 전개하다 체포 된 후 1998년 가택 연금 상태에서 죽고 말았다. 이 땅에 영원한 권력자란 없다. 성경에도 인간이 인간을 서로 죽이고 죽임 당하는 비극적인 내용은 넘쳐 난다. 그러므로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해석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아브라함의 손자 에서는 쌍둥이 형제였던 동생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20년 동안 400명의 무장 세력을 늘 훈련시키며 지냈다.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얍복 강 저편에서 밤새워 기도하던 야곱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형 에서가 보복의 칼을 내려놓고 동생 야곱과 전격적인 화해를 이루도록 역사를 바꾸어 가셨다. 훗날 야곱의 배 다른 열 명의 아들들은 11번째 배 다른 동생인 요셉을 너무나도 미워하던 차에 양을 치던 광야에서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에 개입하셔서 죽을 뻔한 요셉을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리어 가게 하셨고 13년 후에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높여 주셨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20년 후에 연세 많은 아버지 야곱과 70명이 넘는 형들의 가족들을 가나안의 흉년의 때에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시켜 먹여 살리는 가족의 구원주로 사용하셨다. 임금 사울은 평생 사위 다윗을 죽여 없애려고 하였으나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목숨을 보존하셨고 나중에 40년간을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으로 붙들어 높이 존귀하게 사용하셨다. 그런 다윗인데도 다윗은 패망한 사울 왕가의 유일한 생존자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 겸상하게 하리만큼 너그럽게 대하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심으로 인간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죽음을 이기는 영생의 길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그와 같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인류의 역사에도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살인이 계속되어 왔다. 가령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가 탄생하던 시절의 애굽왕 바로의 학정을 보라. 그는 애굽에서 태어나는 히브리 남자 아이들은 무조건 다 죽이라는 유아살해명령을 감행한 악한 왕이었다. 그런 난세에 태어나서 120년을 목숨을 연명하며 동족을 출애굽하게 하는 선봉에 서서 쓰임 받았던 모세의 생애를 보면 한 개인의 삶과 죽음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권력의 탄생과 유지를 위해서는 다윗 때에도 피 흘림은 있었고 솔로몬의 때에는 그 심각성이 더 하였다.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베들레헴에서의 탄생 소식은 천하 만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으신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왕이 탄생했다는 소식에 놀라워하고 당황해한 헤롯왕은 베들레헴 지경에서 탄생한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찾아내어 죽이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와 같이 복잡한 인간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을 어찌 짧은 필설(筆舌)로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으랴. 인간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 안에 달려 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선언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존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삼라만상 중에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시대에 인간의 패역한 타락상을 경고하시면서 하늘의 새와 땅의 기고 달리는 모든 생명체를 홍수 가운데 수장하시는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까지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말씀을 준행하는 인생으로 변화되길 기대하신 적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준행하는 삶을 살던 노아와 그의 여덟 식구가 방주 안으로 들어 간 후에 사십 주야의 홍수 심판으로 이 땅의 모든 생명과 방주 밖의 인간을 모두 다 진멸하고 인류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신 역사의 섭리자이시다. 인류 구원을 위하여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때에 다시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시편 1편은, 하나님은 의인들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누구나 죽음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러므로 권력자의 총구만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이고 죽임 당하는 그 모든 운명이 전능하신 그 분,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손길 안에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지성래목사
담임목사소개
설교문
세미나글
사역일지
출판도서소개
언론관련 글과 영상
활동사진
동영상
상담코너
사역동향

교회소개

교회연혁

주일설교

성가대찬양

교회앨범

이달의행사

행사동영상

선교지현황

섬기는분들
전체 최신글
2024 추수감사주일..최고관리자
2024 추수감사주일..최고관리자
2024 추수감사주일..최고관리자
2024 추수감사주일..최고관리자
영원한 왕이신 예수 ..최고관리자
"내 영혼이 은총 입..최고관리자
"에벤에셀 하나님"최고관리자
"영원한 왕이신 예수..최고관리자
"내가 천사의 말을 ..최고관리자
꿈 꾸는 것 같은 날..최고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