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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종과 하나님의 종 201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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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4-03-08 21:03 조회 14,358 댓글 0
 
죄의 종과 하나님의 종
 
 
‘종’은 다른 말로하면 ‘노예’(奴隸)이다. 종과 노예는 그 역할의 정도나 의미 전달이 좀 다르게 느껴진다. 주인에게 예속되어 허드렛일을 하며 잔심부름을 하는 정도를 ‘하인’, ‘하녀’ 혹은 ‘종’이라고 부른다면 ‘노예’란 기본 권리를 박탈당한채로 몹시 심하게 학대를 당하며 중노동을 강요받는 경우를 말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도 과거에는 종의 제도가 있었다. 종을 ‘머슴’ 혹은 ‘노비’(奴婢)라고 하였는데 ‘노’는 사내종을, ‘비’는 계집종을 일컫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현대판 노예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남 신안군 외딴섬 염전에 장애인 두 명을 감금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구타를 일삼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직업소개소 직원과 염전 주인이 형사 입건되었다. 장애인 채 씨는 지난 2008년 목포의 직업소개소 직원에 의하여 신안군의 외딴 섬에 있는 염전으로 팔려갔다. 채 씨는 5 년간 하루 평균 5시간도 잠을 자지 못하면서 염전 일은 물론 벼농사와 건물 짓기 등 각종 잡일을 노예처럼 해야만 했다. 그리고도 그 동안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채 씨는 주인의 감시를 피해 5년 만에 어머니에게 구해달라는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면서 구조 되었다. 인도에는 출신 성분을 구분하는 카스트 제도가 엄격하여 태어난 그 가족 배경과 신분을 벗어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은 제도적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인 나렌드라 자디브(1953-)의 <신도 버린 사람들>이란 책에 보면 그와 같은 인도의 제도적 악조건의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인도에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즉 ‘달리트’ 제도가 있다. 그들은 천민보다 못한 천민으로서 다른 신분의 사람과 몸이 닿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평생을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저들의 삶은 참담하다. 인도에서 오래도록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그러한 불가촉천민의 신분으로 태어나서 세계적인 경제계의 지도자가 된 저자의 자유와 희망에 대한 사실 보고서인 논픽션이다. 3,500여 년이나 묵은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서 불가촉천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투쟁한 불가촉천민의 아버지 ‘암베드카르'를 추종하던 부모의 결심으로 교육을 받게 된 저자는 전 세계가 미래의 인도 대통령으로 거론할 정도이다. 그가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이 되기까지의 애절한 이야기가 책 속에 가득하다. 1953년에 태어난 그는 인도 뭄바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여러 국제무대에서 인도를 대표하던 그는 인도중앙은행 수석 경제보좌관으로 근무했고 국제통화기금과 이디오피아와 아프가니스탄의 중앙은행 자문관 등 국제기구에서 활발한 활약을 했다. 또한 대중 연설가이며 사회 활동가인 그는 현재 인도 최상위 랭킹 대학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은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이들에 의하여 발전해온 기독교 청교도 신앙인들의 개척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래도록 아프리카 흑인들을 동물처럼 사들여다가 거의 강제노동 수준의 인간 이하 취급을 강요하며 노예 제도 아래 흑인들을 학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1860년대에는 무려 400만 명 이상이 노예화 되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백인과 유색인종 간의 갈등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케냐 출신 흑인 유학생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종인 민주당 출신의 바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재선된 통치권을 가질 정도이니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극장가에 개봉된 수입 영화중의 한 작품인 <노예 12년>은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 <노예 12년>(12 Years a Slave)을 영화한 작품이다. 저자인 솔로몬 노섭(Solomon Northup)은 1808년, 노예 제도가 폐지된 지역이었던 뉴욕 주 미네르바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그는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단란한 가정의 세 남매의 아버지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1841년, 일자리를 찾으러 워싱턴에 갔다가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노예를 학대하기로 악명 높았던 미국 남부의 루이지애나 주 농장에 노예로 팔리어 가고 말았다. 참담하고 끔찍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학대를 당하며 엄청난 고생을 하던 12년간 끊임없이 탈출의 기회를 엿보던 그에게 꿈과 같은 구조의 날이 찾아 왔다. 구조 받던 해인 1853년에 발표한 책, <노예 12년>은 저자가 직접 겪은 노예 생활이야기라는 점에서 세간에 큰 충격을 던져 주며 주목을 받았고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책에서 노예 제도의 잔혹성과 그 심각성 그리고 흑인 노예의 고통스러운 삶의 실상을 자세하게 감동적으로 써 내려감으로 본격적인 흑인문학의 원천을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1852년인 한 해 먼저 출간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함께 노예 해방의 도화선이 된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기도 하였다. 자유를 되찾은 후 솔로몬 노섭은 자신을 팔아넘긴 노예 상인들을 고소했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강연과 연설을 통해 노예 제도의 야만성을 세상에 알리는 데 열의를 다하였고 틈틈이 탈주 노예를 캐나다로 도피시키는 비밀 조직인 ‘지하철도’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몇 해만인 1857년 이후 그의 행방은 끊기고 말았다. 전해지는 추측으로는 다시 노예 상인들에게 다시 납치되어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20세기에 이르러서 그는 흑인문학의 선구자라는 호평을 받았고 1984년에는 그의 책이 <솔로몬 노섭의 오디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적도 있다. 지난해인 2013년에는 흑인 감독인 스티브 맥퀸이 <노예 12년>이란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서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솔로몬 노섭이 자유인의 삶을 누렸던 뉴욕 주 사라토가에서는 매년 7월 셋째 주 토요일을 ‘솔로몬 노섭의 날’로 지정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오고 있다. 같은 인간끼리 누군가를 종이나 노예로 부리는 주인은 신분으로는 주인이지만 그 마음의 상태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 해 말에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간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1918-2013)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는 유명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무엇엔가 혹은 그 누구에겐가 결박되어 살아가는 종의 상태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술과 마약과 도박과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는 중독자가 6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술과 죄에 결박된 종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음란, 사기, 도둑질, 횡령, 밀수 등의 타락한 성생활이나 부정한 경제생활에 결박되어 불의를 반복하는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 또 어떤 이들은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심과 부와 명예와 권력과 출세와 인기에 대한 집착과 외모 지상주의의 종이 되어 살아간다. 최근에 서울의 수천억 원 대의 부동산 재벌 송 모씨(67살)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가족과 외식 한번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오직 부동산 증식에만 혈안이 되어 지내 왔다고 한다. 재물의 종이 되어 살아 온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사저의 건축비에 1,000억이 넘는 돈을 들였다고 한다. 탐욕의 화신이었던 그의 대형차고 안에는 롤스로이스를 비롯한 70여대의 빈티지 클래식 외제차와 값비싼 모터사이클이 줄줄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그만을 위한 개인 동물원에는 타조와 공작새가 뛰놀고 있었고 황금으로 화장실을 꾸미고 살던 그가 결국은 지금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고 수배 당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변화된 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의의 종’이며 ‘하나님의 종’(딛1:1)이라고 고백하였다.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보라. 당신은 지금 탐욕의 늪에서 허덕이는 죄의 종인가 아니면 깨달은 복음(福音)의 진리(眞理) 안에서 참 자유(自由)를 구가하는 하나님의 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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