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지훈의 시 중에 <승무(僧舞)>가 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대했고 수업을 위해서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불교에 귀의한 여승의 춤을 관찰하고 묘사한 시어(詩語)의 섬세함이 남다른 작품이다. 불교의 용어를 구태어 빌리자면 속세와 피안을 넘나드는 승려의 고뇌가 담긴 춤을 시어로 풀어 낸 걸작 중의 하나이다. 시의 내용 중에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라는 표현이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풀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 최고령자로 올해 89세인 조지 H. W.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1924-) 대통령이 삭발(削髮)을 했다. 그는 1989년부터 4년간 미국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그의 경호원이었던 존의 두 살 난 아들 패트릭이 최근에 백혈병을 앓고 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26명의 경호원 출신 동료들은 패트릭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로 다 같이 삭발하는데 동참하였고 그 삭발한 이들의 단체 사진이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조지 H. W. 부시는 혈관성 파킨슨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제는 연세도 많고 자신의 몸도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가 삭발에 동참한 것은 자신이 백혈병 환자 가족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1953년에 그의 부부는 겨우 네 살이던 딸 로빈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1946년에 태어났고 43대 대통령을 지낸 장남 조지 W 부시에 이어 로빈은 삼년 후인 1949년도에 둘째로 태어난 딸이었다. 조지 H. W. 부시의 부인인 바버라 부시 여사는 손녀인 제나 부시에게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로빈은 금발머리에 얌전한 아이였지. 어느 날 로빈이 기운이 없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백혈병이라고... 2주 정도 더 살 거라 하더구나. 어느 날 아침 아이 머리를 빗기는데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어. 병 진단을 받고 일곱 달 더 산거지.” 부시 여사는 “아이의 짧은 삶이 우리 부부로 하여금 이생에서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가도록 이끈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 “남편이 요즘도 종종 ‘죽으면 가장 먼저 딸 로빈을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고도 전했다. 사진에 보면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 대통령의 무릎에 두 살 난 아이 패트릭이 앉아 있다. 조지 H. W. 부시는 올해로 대통령직에서 물러 난지 20년이 되었다. 그런 그가 세계인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진실한 일상의 미담의 주인공으로 언론 앞에 소개된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 한 사람이 머리만 삭발해도 세계인의 관심거리와 뉴스거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구세주이시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의 인간의 삶을 사시다가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카락을 전부 밀어서 삭발하는 정도의 의식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해서 그의 몸을 로마 병정의 못과 창 앞에 내어 주셨다.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서 골고다 언덕의 높은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다. 나중에는 로마 병정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서 심장의 피와 물 한 방울까지 모두 다 흘러내리는 완전한 죽음을 확인하였다. 예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경에 보면 원래 나실인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기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긴 머리를 삭발하는 때가 있다. 나실인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삶에서 탈선한 경우에 정결케 되는 결례로 행하는 의식 중의 하나가 삭발이다. 원래 결례의 정상적인 기간은 30일이다. 그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에 머리를 깎고 그 기간 중에 철저한 금욕 생활을 하여야 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규례라고 하여 칠 일만에 마치기도 하였다. 그 규례가 끝나는 칠일 째에 머리를 깎고 팔일 째에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게 되어 있다. 성경, 민수기 6장 13절 이하에 보면 결례로 드리는 번제물은 1년 된 수양 한 마리와 속죄제로 1년 된 암양 한 마리 그리고 화목제로 수양 한 마리와 무교병 등을 바치게 되어 있다. 사사기 16장에 보면 삼손은 이방 여인 드릴라 앞에서 머리카락을 잘리고 힘을 잃었다. 삼손의 힘과 권위의 근원은 머리카락에 있었으나 그 머리카락이 잘린 후에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 사사 삼손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했던 대표적인 사사 중의 하나였다. 사무엘 하 10장에 보면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왕자인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다윗은 예전에 나하스 임금과 갖던 좋은 관계를 생각하여 조문사절단을 보냈다. 그러나 하눈 임금의 측근들은 다윗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하려는 것이다.”라고 오해한 것이다. 그 때에 임금 하눈이 조문객들의 수염을 절반씩만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를 잘라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려보내자 다윗은 신복들에게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고 있으라고 하였다. 이는 신복들이 타의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수염이 깎인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 수염이 자랄 때까지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남성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것이 아닌가. 사도행전 21장 24절에 보면 서원(誓願)한 네 사람이 사도 바울과 함께 삭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결례(潔禮)를 행하기 위한 의식 중의 하나가 삭발이다. 삭발식은 로마 가톨릭 교회나 동방정교회에서 하나님께 엄숙한 봉헌의식을 거행할 때 행해졌다. 1973년에 교황 요한 바울 6세가 이것을 폐지할 때까지 이 의식은 어떤 사람이 성직자로 임명될 때에 거행되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이것이 성구(聖句)를 읽는 사람을 임명할 때 거행하는 의식의 일부이기도 하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수도원 생활을 원하는 사람을 수도원에 받아들이는 입회 의식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독교에서 이 의식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리스인과 셈족의 고대 종교관행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 삭발식이 거행되었다. 베드로식이라고 일컫는 로마식 삭발은 가시관을 상징하듯 머리 가장자리를 뺀 머리 전체 혹은 머리 정수리의 둥근 부분을 밀었다. 바울식이라고 말하는 동방교회의 그리스식 삭발은 머리 전체를 미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동방교회의 관행은 머리가 짧을 때에는 그것을 삭발로 간주한다. 요한 식이라고 말하는 켈트식 삭발은 한쪽 귀에서 시작하여 머리 꼭대기를 넘어 다른 쪽 귀까지를 잇는 선 앞쪽의 모든 머리카락을 밀었다. 이같은 삭발 의식은 거의 모든 종교마다 다 있다. 자이나교 수도승들도 세속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수도생활에 들어가는 상징으로 머리를 자르는데 전통적으로 그들은 머리카락을 한 올 씩 뽑아낸다. 자이나교도와 불교도들의 관습은 모두 이론적으로 영원한 생활을 위해 출가(出家)할 때에 머리를 자른다. 불전(佛典)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굳은 결심 끝에 출궁(出宮)하여 아노마 강에 이르렀을 때에 마침 노란 옷을 입은 사냥꾼을 보고는 자신의 옷과 바꿔 입은 뒤 나무 아래서 손수 칼을 빼어 삭발하면서 "지금 수염과 머리카락을 잘라내었으니 바라건대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없애기를 바라노라."고 말했다는 삭발의 유래가 전해진다. 머리를 삭발하느냐 혹은 길게 기르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차라리 삭발할 기도 제목이 있으면 조용히 며칠 간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지 아니할까.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누구나 풍성한 머리카락도 짐처럼 느껴질 수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