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가정, 그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아기이든 귀하고 복되지 않은 탄생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이번 2013년 7월 22일에 영국 왕실의 왕위 서열 제 3위로 윌리엄과 캐서린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의 탄생 소식은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다. 국내 일간지들도 한 아기의 탄생 사실과 함께 아기 사진을 큼직하게 1면 기사로 다루었다. 이번에 태어난 남자 아기는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증손자이며 왕위 계승 서열 제 3위의 막강한 권력을 승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태어났다. 영국의 국가(國歌)는 “하나님, 국왕(여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King/Queen)라는 가사로 시작하여 6절까지의 내용이 한 결 같다. “하나님이 여왕/왕을 지키시고 축복하셔서 나라가 안정되고 외침으로부터 영국을 보호해 주소서”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용이 그러하다 보니 국가가 연주 되는 시간에 여왕 혹은 왕은 국가를 함께 부르지 않고 침묵하며 국가의 내용이 이루어지는 나라와 민족으로 살아가길 기원하는 예를 표한다. 가령 1절 전문을 보자. “하나님, 저희의 자비로우신 여왕/국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고귀하신 저희의 여왕/국왕 폐하를 만수무강케 하사, 하나님, 여왕/국왕 폐하를 지켜 주소서. 여왕/국왕 폐하께 승리와 복(福)과 영광을 주소서. 저희 위에 길이 군림케 하소서. 하나님, 폐하를 지켜 주소서.”(God save our gracious Queen/King, Long live our noble Queen/King, God save the Queen/King! Send her/him victorious, Happy and glorious, Long to reign over us; God save the Queen/King!) 이쯤 되면 국가(國歌)라기보다는 왕을 칭송하는 찬가(讚歌) 수준이 아닌가. 영국 사람들은 이토록 여왕/왕을 귀하게 여기며 이 국가를 개편 찬송가 70장에서 만나게 되는 ‘피난처 있으니’라는 찬송의 곡조를 붙여 부른다. 영국이 이런 내용의 국가를 제정하여 부르게 된 배경은 1797년에 제정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국가인 “하나님, 프란츠 황제 폐하를 지켜 주소서”(Gott erhalte franz den kaiser)라는 가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영국의 군주제(君主制)는 적어도 1,100년 전에 시작되었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주후 829년 잉글랜드를 통일한 에그버트 왕의 직계 후손이다. 군주제의 역할은 수백 년을 내려오면서 변화되었다. 초기 군주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이는 의회와 사법부의 발달로 축소되었다. 왕과 의회의 권력 투쟁으로 1689년에 제한된 입헌 군주제가 자리 잡았다. 근대적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확립과 함께 19세기 말에는 왕의 정치적인 역할이 최소화되었다. 오늘날의 군주로서 현재 여왕/왕은 국가의 중립적 수반의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 여왕/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반이고 전군 최고 사령관이며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의 수장으로서 의회에서 제출한 성직자 후보명단에 근거하여 성직자를 임명하는 권한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각료들이 내린다. 영국은 여왕/왕의 이름하에 왕국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여왕/왕은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 정부의 몇 가지 역할을 아직 수행하고 있다. 여왕/왕은 의회를 소집하고 해산하며 법안을 재가한다. 또 총리와 각료들을 포함한 주요 관리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군주제의 한 가지 특징은 공식적인 면과 비공식적인 면이 결합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의식은 오늘날도 중시된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은 국가적인 행사이다. 6월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여왕 탄신 기념식 때에는 여왕 근위병의 열병식인 군기 분열식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외국의 국왕이나 국가 원수가 영국을 방문하면 여왕/왕의 주재 하에 공식 연회가 베풀어지며 작위나 훈장 수여식은 버킹엄 궁전과 스코틀랜드 홀리루드 궁전에서 열린다. 이 처럼 영국의 여왕/왕 제도는 상징적인 면이 몹시 강조 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 한 아기의 탄생으로 역사의 기원을 B. C(Before Christ) 와 A. D(Anno Domini)로 구분하게 된 주인공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생명의 탄생은 신의 선물이다. 성경은 아기의 탄생이 사람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임을 무척 강조한다. 아브라함이 나이 백세에 구십 세 된 아내 사라를 통하여 이삭을 낳는 장면을 보라. 이는 한나가 사무엘을 낳는 장면이나 연세 많던 제사장 사가랴가 나이 많던 아내 엘리사벳을 통하여 세례 요한을 낳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저들 가정에 한 아기로 태어난 아들 이삭, 사무엘 혹은 세례 요한의 탄생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인 것을 선언해 준다. 이는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가 남편 될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서 조신(操身)하는 날들을 지내며 결혼할 날을 준비하고 있던 그 어느 날 그녀를 찾아 온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통하여 절정에 이른다. 이를 가장 실감나게 기록한 복음서는 누가복음이다. 그 내용의 상세함이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이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1-33) 마리아의 남편 될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 장차 아내 될 마리아의 수태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깊은 고민에 빠졌고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날마다 고민하며 지내던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 왔다. 그리고 말하기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0-21)고 하였다.
마태는 이사야 7장 14절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성과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고 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 세례 요한을 낳은 엘리사벳이 위대하지만 마리아에 비교할 수 없다. 예수를 수태한 마리아는 유대의 산골 마을에 사는 친척인 사가랴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때에 성령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은 큰 소리로 마리아를 영접하면서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마1:42)하고 축복하였다. 그렇다. 나중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인 주인공으로서의 탄생이었다. 인류의 역사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보다 더 위대하고 더 복되고 더 소중하고 더 의미 있는 탄생이 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구주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시편 2편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실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아기로서의 탄생은 인간과 인간에 의한 탄생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친히 인류의 역사 한 가운데서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낳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한 아기의 탄생으로 인류는 흑암 중에 비추이는 광명하고 영원한 구원의 빛을 보게 되었다. 왜 한 아기의 탄생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온 인류가 주목해 왔는가. A. D 1517년에 종교를 개혁한 마틴 루터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면서 말해야 한다.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라는 고백을 남겼다. 찰스 맬릭은 “모든 문명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위대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기독교 묵상가는 “예수께서 오시면 그림자는 사라진다.”고 고백하였다. 그렇다. 이천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능력은 개인과 인류의 역사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온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 아기의 탄생으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