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년 전에 모 유명 의과대학의 남녀학생들이 MT에 갔다가 술에 취한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한 남학생은 디지털 카메라로 여학생을 21차례 알몸촬영하고 또 다른 동료 학생은 핸드 폰 카메라로 동영상을 두 차례 촬영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학교에서 제적되는 사건이 있었다. 올 해 5월 30일(2013년), 육군사관학교의 남녀 생도 20여명이 영관급 장교인 교수 10여명과 ‘생도의 날’을 맞아 낮에 음주 회식 중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일명 ‘폭탄주’에 취한 생도들 중에서 2학년 여생도 한명이 구토를 반복하였다. 그녀를 도와준다던 4학년 남자 생도는 만취상태의 후배 여자 생도를 자기 방으로 데려 가서 성폭행하였다. 이 사실을 비밀에 붙이려던 학교는 사건 내용이 세상에 알려 지면서 사관학교 교장인 박남수 중장이 사표를 내고 전역 의사를 밝혔다. 교장이 옷을 벗는 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지 않는가. “장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술을 마시는 것은 괜찮고 생도들끼리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규정도 상식적이지 않다. 언젠가 TV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인간극장’에 보니까 10여 남매를 낳아 키우는 어느 가정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 내용 중에 아버지가 10대 후반이 된 딸에게 소주를 따라 주면서 “이젠 너도 성인이 되어 가니 술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어떤 가정은 젊은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저녁 식탁에서 술을 마시도록 권하였다. 한 잔 두 잔 받아 마시던 며느리는 잔뜩 술에 취한 채로 시어머니에게 ‘야! 어서 더 따라’하면서 반말을 하였다.
술이 문제다. 롱펠로는 “더 이상 술잔에 손을 대지 마라. 술은 가슴 속속들이 병들게 한다. 술의 향기는 죽음의 사자의 입김이요, 술잔 속에 나타나는 빛은 죽음의 사자의 흉한 눈초리다. 조심하라, 질병과 슬픔과 근심은 모두 술잔 속에 있나니”라는 교훈적인 말을 남겼다. 유대인들의 교훈서인 탈무드에는 “아침 늦게 일어나고 낮에는 술을 마시며, 저녁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인간의 일생은 간단히 헛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한 잔의 술을 마시는 것이 퍽 좋은 듯하나, 두 잔의 술이 인간의 품위를 떨어트리고, 세 잔의 술은 인간을 부도덕하게 하며, 네 잔의 술은 인간을 자멸하게 한다.”는 교훈도 탈무드에서 나온 말이다. 불교의 법화경에서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경고하였다. 글래드 스턴은 “전쟁과 흉년과 전염병-이 세 가지를 합쳐도 술이 끼치는 해악에 비교할 수는 없다.”고 까지 술의 위험을 고발하였다. T. 풀러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였다. 매우 예외적인 인물이 있기는 했다. 독일의 히틀러와 싸워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어 낸 전쟁 영웅인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수상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평생 담배와 술을 멀리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모습을 담은 역사적인 사진들마다 입에 물고 있는 굵은 시가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의 날마다 점심때에는 맥주를, 저녁때에는 차(茶)에다가 위스키를 타서 마시거나 샴페인을 즐겨 마셨다. 전쟁의 격동기에 나라를 통치하던 그는 평생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던 우울증 증세로 고생하면서 술 마시기를 즐겼다. 그러나 워낙 술에 센 그는 거의 취한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90년을 살았다. 그는 “나는 알코올이 나에게서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술로부터 얻었다.”(I have taken more from alcohol than it has taken from me.)는 말을 남겼다. 이런 예화를 읽으면서 “그것 보아라. 술이 무슨 문제란 말이냐”하고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처칠은 정치적 역량 외에도 유화를 즐겨 그리는 미술 활동과 문학 등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여 각종 기고문, 소설, 자서전, 회고록, 역사 기록물 등의 저술에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1953년에 완성한 그의 대표작인 6권의 <제 2차 세계 대전>(The Second World War)은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타는 영예를 안겨 주었다. 술의 위험을 이야기 하다가 말고 애주가였던 처칠 이야기로 지면을 채운다고 다행스럽게 여기며 자신의 술 습관을 비호하려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하나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성결한 사람을 쓰신다. 성결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아 알고 믿으며 거듭난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술에 취하지 않고 사명에 취하고, 성령에 취하고, 하늘로부터 덧입혀지는 능력에 취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신다. 왜 술에 취하지 말라고 할까. 가령 창세기의 노아를 보라. 동시대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비중 있게 들으려 하지 않던 시대에 백 년 세월을 묵묵하게 산꼭대기에 방주를 건설하던 주인공이 노아가 아닌가. 시작된 홍수 심판 앞에 아내와 세 아들 내외를 포함한 여덟 식구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인물이 노아였다. 그는 홍수로 인한 인류 심판과 역사 재창조의 격동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구원 받은 역사적인 주인공이다. 그런 노아가 홍수 심판 후에 포도나무 농사를 하였고 포도주를 담가 마시고 취한 상태로 하체를 드러낸 채 잠이 든 적이 있었다. 결국 둘째 아들인 함에게 부끄러움을 보이고 말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던 경건한 삶의 표상이었던 노아를 넘어 트린 것은 결국은 술이었다. 그러므로 술이 문제가 아닌가. 술에는 사람을 넘어 트리고,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죽게 하는 악이 숨어 있다.
미국의 제 35대 대통령을 지낸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17-1963)의 아버지인 조지 F. 케네디는 양조장을 경영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자녀들을 대학에 입학 시켰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고와 죽음이 끊이지 않는 가문이 되어 가고 있었다. 혹자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가정에 임하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존 F. 케네디의 형인 조지프 케네디는 1944년에 미국 해군 조종사로 입대하였다가 피격되어 시체도 찾자 못하였다. 여동생 캐슬린은 1948년도에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1961년에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아버지의 정치 입장을 따라 1962년도에 반(反)기독교 정책을 펼쳤다.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공립학교의 성경 공부와 기도를 폐지하고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게 하였다. 다음 해인 1963년도에 그는 달라스에서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2세는 1999년 야간 개인 비행 중에 추락하여 죽었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할 정도였다. 1968년에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LA에서 대통령 후보 입후보 연설을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갔다가 총에 맞아 암살당했다.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데이비드는 1984년에 약물 과다 복용 상태로 한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그의 동생인 마이클은 술에 취한 채 스키를 타다가 나무에 부딪혀서 죽었다. 이처럼 온 가정에 사고와 죽음이 끊이지 않자 조지 F. 케네디는 “내가 수십 년 동안 술장사를 해서 많은 가정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사랑과 안정을 빼앗았더니 그 보응을 이제 받는구나.”하고 탄식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렇다. 세상을 막 살면 안 된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다. 선을 심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더 큰 악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생의 이치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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